"상다리 휘던 차례상 없앴다"..허례허식 사라진 코로나 명절

이우림 2021. 2.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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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바꾼 명절 풍경
4명 중 3명 귀향 계획無
차례상 없애고 음식 간소화
민족대명절 설 연휴를 앞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이번 설에는 귀성을 포기했다. 부모님도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고 얼마 전 사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도 발생해 안 내려가겠단 생각을 굳혔다.”
제주도가 고향인 4년 차 직장인 김모(28)씨는 연휴 동안 서울 집에서 머물 예정이다. 매년 설이면 10여명의 가족이 제주에 모여 차례를 지냈지만 이번 명절엔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족 모임도, 차례상도 없앴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27)씨도 충주에 계신 조부모님 댁에 방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번 친척들과 함께 만두를 빚었는데 이번엔 각자 조촐하게 지내기로 했다”며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 다 70대 고령이셔서 모이기가 겁이 난다. 나중에 부모님이 따로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인 이상 금지 조치 후 첫 명절

민족대명절 설 연휴를 앞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이 제수용품을 구매하기 위한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11일부터 시작된 설 연휴는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 속에 맞는 첫 명절이다. 지난 추석 때는 권고 사항이던 ‘고향 방문 자제’가 이번엔 강제 조치로 바뀌게 됐다. 직계 가족이라고 해도 주거지가 다를 경우 단속 대상이 된다. 위반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친인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세배하는 모습을 이번 설에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다가오는 설에 성인남녀 4명 중 1명(27.5%)만 귀향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알바앱 알바콜이 지난 2~3일 전국 성인남녀 9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2018년 추석(46.7%) ▶2019년 구정(46.9%), 추석(44.9%) ▶2020년 구정(50.6%), 추석(40.1%)과 비교하면 최저치다. 귀향 계획이 없는 이유에 대해선 코로나 시국 및 방역지침에 따라’(56.5%)가 과반을 차지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던 차례상 없애”

제수 음식.

정부 방역 지침에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지만 일각에선 “허례허식이나 불필요한 노동을 없앨 기회”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직장인 이모(30)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씨는 “보통 설이면 일가친척 50여명이 큰댁에 모여 차례를 지냈다. 설 며칠 전부터 고향에 내려가 음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직계 가족끼리 따로 모여 각자 소규모로 지내기로 했다”며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만 만들기로 해 비용이나 노동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지민(26)씨의 가족은 이번 설에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86세인 할머니 건강을 염려해서다. 김씨는 “매년 차례상을 상다리 부러지게 꼬박꼬박 차렸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안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명절 때마다 온몸에 기름 냄새가 밸 정도로 전을 부쳤던 김씨도 짐을 덜었다. 김씨는 “코로나가 이런 변화를 만들 줄 몰랐다”며 “앞으로도 부담이 없어지면 명절이 싫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전통 차례상엔 5가지만

설 차례상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일 차례상에 음식을 많이 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례 문화 지침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설날은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인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차 같은 간단한 음식만 올리기에 제사(祭祀)가 아닌 차례(茶禮)라고 부른다. 예법에선 다섯 가지 음식 정도만 올린다. 사례로 제시한 경북 안동의 퇴계 이황 종가의 차례상을 보면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이 전부다.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인 김도일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누군가의 희생을 강조하는 건 유교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의식과 맞지 않는다. 이번 설을 계기로 가족 구성원 일부가 부당하게 고생하는 구조 없이 상호 간 존중하는 문화가 마련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거리두기와 관련해선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면서도 “지나치게 편의성 중심으로 흐르거나 각자도생의 삶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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