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人들]"소는 내 운명".. 권환흥 수의사의 소소로운 행복
제가 소띠에 황소자리, 별명도 ‘소’ 랍니다. 평생 소를 치료하며 살 운명인가 봐요
대동물 수의사는 소, 돼지, 말 등 주로 가축을 진료한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다르게 농장으로 직접 아픈 동물들을 찾아 나선다. 신축년 소띠 해 설을 일주일 앞두고 경북 군위군에서 소 전담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권환흥 수의사의 진료 현장에 동행했다.
지난 4일은 인공수정 시술 의뢰가 들어온 날. 권 수의사는 현장에 도착하자 먼저 안전을 위해 암소를 단단히 묵었다. 자칫 소가 요동을 치면 다칠 수가 있다. 먼저 소의 상태를 살피고 초음파와 직장검사 등을 진행한다. 이때 소 엉덩이 뒤에서 왼팔을 길게 직장으로 넣어야 하는 대동물 수의사의 숙명과도 같은 포즈가 연출된다. 인공수정, 진단 등 검진을 위해서는 직장검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검사결과 모두 이상무. 이어 급속냉동된 수소의 정액을 자신의 체온으로 녹여 암소의 자궁에 주입해 수정을 시킨다. 약 280일 후 건강한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날 것이다.
'이동'은 소 진료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군위 지역에서 권 수의사가 담당하는 소는 5000두에 달하는데 대부분의 농장이 병원에서 먼 곳에 있어 1년 주행거리가 8만 Km가 넘는다. 진료시간도 농촌의 시계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해 뜨면 진료를 시작합니다. 다만 퇴근은 일정치 않아요. 새벽에도 난산 상황이 많이 발생해 5분 대기조거든요” 대동물 수의사가 극한 직업인 이유다.
“소 눈만 봐도 압니다. 눈 주변이 움푹 들어가며 ‘뻐끔’해 지거든요. 말 못하는 짐승이라 어디가 아픈지 빠르게 찾아내는 게 중요하죠” 아픈 소들의 첫 증상은 대부분 밥을 먹지 않는다. “‘뭐가 불편해서 밥을 안 먹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후 청진과 육안으로 관찰하며 폐렴, 식체, 염증, 생식기 질환 등을 염두에 두고 개월령에 따라 병명을 찾아냅니다”
권 수의사는 송아지 치료가 가장 조심스러우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송아지는 특히 브루셀라병과 결핵병에 취약하다. 감염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부분이라고도 했다. 어미 소에게 밟혀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다. “제 손으로 받은 송아지가 하루걸러 다리 세 개가 부러졌어요. 농장주가 보조기구를 만들어줘서 안간힘을 쓰며 걸으며 살려는 의지가 강한 녀석이었는데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죠. 그럴 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소를 기르는 건 산업의 한 분야다. 진료에 있어서 아쉬움과 미안함이 공존한다. 치료비가 소 값을 넘어서면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권 수의사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 잘 지낼 수 있게 돕는 게 대동물 수의사의 임무입니다. 아프지 않게,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게, 잘 놀 수 있도록. 그리고 예쁜 말 한 번이라도 더 해주고 싶습니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ka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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