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개판이네, 정말"..일당 73000원 배송 초짜들이 몰렸다
"오늘 개판이네. 나는 모르겠다, 정말…"
10일 오전 7시 30분쯤 경기 용인의 한 물류센터.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류센터의 젊은 남성 직원이 동료에게 속삭였다. 평소보다 혼잡하고 '초짜'들이 많아 우왕좌왕한다는 의미였다.
이곳은 설 연휴를 맞아 일감이 폭주하는 대형 물류업체. 냉장·냉동 보관이 필요한 식품들이 이 신선 물류센터를 거쳐 전국으로 배송된다. 기자는 이날 오전 6시 서울에서 이 업체가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반가량이 걸려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설 연휴를 맞아 청년들이 몰린다는 하루짜리 일용직 물류 노동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생생한 현장 체험을 위해 업체에는 기자의 근무를 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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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치열, 3일만에 결원 자리 얻어
예상보다 일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명절을 맞아 일감이 몰려서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고 알려졌는데, 현실은 달랐다. 지난 7~9일 새벽 배송을 하는 대형 물류업체의 '알바' 공고를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지원이 많은 관계로 근무모집은 마감되었습니다"는 문자가 계속 전송됐다. 그러다 "결원이 생겨 내일 오전조로 원하면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물류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을 통해 출근 체크를 한 뒤 줄을 서서 바코드를 발급받았다. 안내 직원은 "앱에 나온 근로계약서 등 서명란에 동의하고 입장하라"고 재촉했다. 노동 시간과 하루 급여(약 7만3000원)만 스치듯 확인하고 지시에 따랐다. 꼼꼼히 살펴 볼 여유는 없었다. 동의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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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20~30대, 여성이 더 많아
업체가 제공하는 방한복과 안전화를 신었다. 이후 안전 교육을 받았다. 처음 온 사람들이 교육 대상인데, 30명가량이었다. 남자는 7~8명이었고, 나머지는 여성이었다. 대부분이 20~30대로 보였다. 최악의 청년 실업, 여성 일자리 감소를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여성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59만7000명 줄었다. 38만5000명이 줄어든 남성보다 1.5배 많다.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7.2%로 1월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이다.
안전 교육은 30분가량 진행됐다. "뛰지 마라"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해라" "여성들은 머리를 묶어라" "거리 간격을 유지해라"는 내용이었다. "간혹 음식을 먹거나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물류센터 업무는 크게 입고와 출고, 재고관리와 상차, 검품 등으로 나뉘었다. 이날 오전조 대부분은 입고와 재고 관리의 일을 했다. 입고 업무를 배정받고 나왔지만, 재고관리팀으로 배치됐다. 재고관리팀은 영하 18도의 냉동 창고에서 일한다. 창고 안 각종 냉장·냉동식품, 빵과 떡 등이 시스템에 입력된 재고와 일치하는지 박스와 상품을 옮겨가며 숫자를 맞춰 지급받은 단말기에 입력해야 한다.
8명가량이 한 조로 담당 냉동창고 앞에 섰다. 담당 직원이 "자 손목 발목 이렇게 해보실까요"라고 말했다. 준비 운동을 하나보다 싶은 찰나 관리 직원은 "사진만 찍고 바로 들어갑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시행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대한 규칙' 제563조에 따르면 한랭작업을 할 경우 사업주는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기 위한 운동지도를 하고, 체온 유지를 위해 더운 물을 준비할 것, 젖은 작업복 등은 즉시 갈아입도록 할 것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지난 1월 새벽 경기도 동탄의 한 물류센터에서는 야간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 A씨가 근무를 마치고 화장실에 갔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자 생계를 유지하고자 단기로 출근하다 사고를 당했다. 동료들은 "쉬는 시간이 없는 살인적 노동강도와 환기와 난방이 되지 않는 열악한 시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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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도 지원 줄이어…심야 근무가 더 인기
목장갑과 핫팩을 받았지만, 냉동창고 안의 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30분 냉동창고에서 일하고 10분간 밖에서 휴식을 반복하며 진행됐다. 휴식 시간은 잘 보장됐지만, 의자 수가 부족해 맨바닥에 앉아 쉬어야 했다. 30분간 냉동창고에서 박스를 옮기고 단말기에 숫자를 입력하다 보면 오른손 검지 마디마디가 아프고 쑤셨다. 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달려가 따뜻한 물에 손가락을 녹였다.
일용직이 아닌 계약직 사원 A씨는 "오늘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연휴 기간에도 꽤 많은 사람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4시 50분쯤 업무를 마쳤다. 오후 5시, 앱을 통해 퇴근 체크를 했다.
그 무렵 업무를 이어받을 오후 근무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20~30대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고 여성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 오후 조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심야조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근무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지만, 오후조와 심야조는 오전조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운 시간대다. 오전에 다른 일을 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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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코로나19 방역 신경 써"
이날 처음 일한 최모(22)씨는 "오늘 입고를 맡아 각 지방으로 내려갈 물건들을 분류했다. 휴식은 오전 오후 15분씩 있었고 생각보다 업체가 안전과 방역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다음에 다시 올지 고민을 좀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후조로 출근한 20대 남성 B씨는 "내일도, 13일도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연휴 기간 가족끼리 명절을 보내지 않고,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어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일 배송, 새벽 배송을 위한 노동과 야간 노동이 건강을 담보로 이뤄지는 위험한 노동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하지만, 많은 20~30대들은 그 일에 줄을 서고 있다. 비대면 시대로 초호황을 맞은 물류 시스템이 제공하는 하루짜리 노동을 얻기 위해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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