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내줄테니 와라" 부모님의 요구 따라야 하는 걸까?
[현혜영 기자]
▲ 설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유료입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경기 성남 분당구 궁내동 서울톨게이트 전광판에 설 연휴(11일~13일) 간 고속도로 통행료 정상 수납 안내문이 표시되고 있다. 정부는 명절 때마다 3일간 면제했던 고속도로 통행료를 유료로 전환하고, 해당 기간의 통행료 수입은 코로나19 방역 활동 등에 쓸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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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엘 갔다. 며칠 전 월요일엔 아이들이 모처럼 등교를 한 틈을 타 동네 엄마 둘과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명절을 앞두고 있다보니 시댁이나 친정에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남'의 얘기들이 들려온다. 누구네는 시아버지가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시댁에 가기로 했다고 하고, 또 누구네는 형제들이 날짜별로 혹은 오전 오후 시간대로 나누어 부모님댁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이번엔 자신의 친정집에도 안 가기로 했다고 말하니 시어머니가 잘됐다면서 와서 며칠 있다 가라고 한다. 어떤 남편은 이번엔 제사를 생략하자는 아내에게 어머니 성질 모르냐며 얘기조차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고 한다. 또 누군가의 어머니는 걸리면 벌금 내줄테니 꼭 오라고 하신단다. 단독 주택의 집앞에 차가 두 대 이상 주차되어 있으면 신고 당할 위험이 있으니 주차 장소를 물색해야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되돌아 보는 기회
내 귓등으로 들려오는 이런 이야기들이 단지 코로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어르신들만의 문제일까? 부모님이 고집하시니 어쩔 수 없이 갔다 와야지라며 포기해버리는 자식들에겐 그 책임은 없는 것일까? 오랜만에 자식들의 얼굴 보고 따뜻한 밥 한끼 같이 먹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 못할 자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길이 집에 오라는 부모님의 고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 밖엔 없는 것일까?
조금 과장해서 생각해보면, 명절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닐 때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고 서로 대화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거나 혹은 쉽게 풀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이 기회에 부모님과의 관계도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서로가 자주 드나들었거나 혹 멀리있더라도 그 관계를 성실히 챙겼다면 이런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서로가 좀더 배려를 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절이 아니어도 곧 다시 볼 거라는 희망이 있을테니 어른들도 잠시의 서운함을 내려 놓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또한, 우리네 부모님들이 용돈 한푼이라도 쥐어 주고픈 손주들이 다섯 명 이상 모여버린 할머니집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며칠 전 오후에 내 딸의 친구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A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 B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고 내 딸에게 그리로 오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딸은 자기도 가고 싶다며 나를 조르기 시작했고 나는 코로나를 이유로 집으로 가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B의 집에 가진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B의 집에 못간 건 내가 허락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A가 그녀와 통화를 하는 사이에 B가 A를 말렸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엔 A와 B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친구 한 명과 B의 부모님 한 분이 있었다. B는 내 딸이 오면 다섯 명이 넘어버리니 오지 말라고 한 거였다. 딸이 전화를 받은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해 서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날 B가 내 딸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해 했고 그 바람에 내 딸은 서운함을 풀 수 있었다. 열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명절에 부모님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최소한 3대는 모이게 되어 있다. 아무리 식구가 적다고 해도 5명은 훌쩍 넘기기 마련이다. 3대의 끝세대들이 2세대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 '엄마도 안 오려고 했는데 네 할머니가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단다'라고 답할 것인가? 혹 이보다 더 그럴싸한 답이 있다고 한들 그 끝세대들이 눈으로 보는 건 결국 나같은 2세대들의 판단과 결정과 행동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구나' 하는 걸 배운다. 내 판단의 책임을 내가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운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내 사정을 이유로 지켜야 할 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운다. 융통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을 유예시켜도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2세대들의 몫
그래서, 이번 명절엔 나 같은 2세대들의 몫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부모님과 언쟁을 벌일 수도 있고 부부가 다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언쟁은 사실상 논리의 대결이 아니라 감정의 충돌이다. 그러니 이런 감정적 손실은 우선 피하고도 싶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덜 소모적인 결정-집에 오라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따르는 것-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엔 그 덜 소모적인 결정이 가장 위험한 결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버린 게 문제다.
그러나 최소한, 나의 결정과 행동의 이유를 1세대의 고집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명절에 5인 이상의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정부의 방책이 불합리한 이유를 설명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방역 수칙을 따르자고 말하고 싶다. 원초적으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기성 사회의 중심인 나같은 2세대들이 1세대와 3세대 사이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음을 이번 기회에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떤 맘카페엔 며느리들끼리 품앗이 신고를 하자는 웃픈 얘기들이 오간다고 한다. 심지어, 신고는 시댁 가기 싫은 며느리들이 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등장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건 이 세상 며느리들을 한데 묶어 한 구석으로 밀어 붙이는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이다. 게다 이 문제를 완고한 시어머니와 제 할말 못해 분통터지는 며느리들의 대결로 축소시켜 논점을 흐린다. 이건 우리가 그토록 원하지 않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전통적인 대립각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물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해야할 건, 엄마 성질 모르냐며 아내의 말을 되받아치거나 혹은 신고당할 상황을 걱정해 주차장소를 물색해야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인 동시에 부모의 자리에 있는 우리(대략 30대 중반에서 50대)가 한 사회 내 공유된 룰을 지키기 위해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한번쯤은 되짚어 고민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방역을 위해 제안된 조치 하나가 우리의 명절 문화와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하는 '적절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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