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쟁 완패' SK의 60일, 3조짜리 美공장 운명 달렸다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의 평행선을 달리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승부의 무게가 LG쪽으로 기울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019년 4월 이 소송을 접수한 뒤 약 22개월만인 10일(현지시간) LG 측 손을 들어주면서다.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한 LG는 한국 경찰에 SK를 고소하기 한 달 전 ITC에 먼저 소송을 냈다. ITC 재판 절차는 당사자들이 제시한 증거를 위주로 다투는 일반 민사소송과 달리, ITC가 의심하는 사안에 대해 직접 조사를 수행할 수 있다. 소송을 제기한 측이 피해를 입증할 물증을 제시 못하더라도, 그 역할 일부를 ITC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ITC는 LG측 요청을 받아들여 2019년 10월 SK 측 디지털 장비에 대한 포렌식(forensic)을 실시했다. 포렌식은 보관 자료를 분석하고 삭제된 기록을 복구해 사실 정황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후 증거 훼손 등을 발견한 ITC는 2020년 2월 SK에 대한 조기패소 결정(Default Judgment)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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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 연기 뒤 LG 승
ITC는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 날짜를 2020년 10월로 통보했다. 업계에선 조기패소 결정을 근거로 양측에 합의를 권하는 ITC의 메시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두 회사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LG 측은 3조원 가까운 합의금을 요구하는 반면 SK는 수천억원을 제시해 간극이 컸다. 또 LG가 요구하는 SK의 공개 사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G는 앞으로 세계적 배터리 경쟁 환경에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봐주기식’ 합의는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동안 ITC의 최종 결정은 3차례 연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ITC 내 대면 회의 등 절차 지연, 미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무적 연기설, 두 회사간 합의 유도설 등이 난무했다. 그사이 조지아와 테네시주의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12월 두 회사에 합의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SK 패소가 확정돼 영업 제재를 받으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조지아엔 SK 배터리 공장이 있고, 테네시엔 SK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폴크스바겐 전기차 공장이 있다. 국내에선 지난달 정세균 국무총리가 “두 회사간 다툼은 남(다른 나라 회사) 좋은 일만 시킨다. 빨리 해결하시라”며 두 회사 합의를 권했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SK에게 남은 기간은 60일이다. 이 기간 SK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심의(Presidential Review) 뒤 판결 거부 결정을 하는 것이다. 또 LG와 합의를 하는 방법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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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미국 이익에 영향”
SK는 판결 직후 “SK 배터리와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의 친환경차 산업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 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공식입장을 냈다. 공식입장에 ‘합의’라는 말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는 표현을 써 여지를 남겼다. SK 내부에선 연방항소법원에 불복 절차를 제기한 뒤 추가 소송과 함께 합의를 도모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LG도 보도자료를 통해 “피고(SK)가 공탁금(Bond)을 내면 해당 명령의 효력이 일시 중단되고, 이 기간 중에 합의가 이뤄지면 공장 가동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공탁금이란 잠재적 합의금을 법원에 일시적으로 맡겨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합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게 된다.
다만 LG는 영업비밀을 침해한 SK가 먼저 파격적인 합의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LG는 “2010년 이후 ITC 결정이 항소로 뒤집힌 사례가 없었다”며 “ITC 최종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부합하는 제안을 해 하루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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