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곳 전화해도 "무조건 안된다"..갈 곳 없는 코로나 완치 노인
100곳이 넘는 요양병원에 전화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해요.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서울에 사는 이모(50·여)는 아버지(81)가 입원할 요양병원을 찾느라 속이 까맣게 탔다며 이같이 털어봤다. 아버지 이씨는 지난해 1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있었던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환자였다. 코로나19 확진 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지난달 격리 해제 판정을 받았지만, 퇴원 후가 더 문제였다. 받아준다는 요양병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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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알기에 모른 척할 수 없다”
이씨 아들·딸 3명이 일주일간 전국을 뒤져 경기도 오산시 내 오산메디컬재활요양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이 병원은 전체 195개 병상 가운데 50개 병상(25%)을 코로나19에서 격리 해제된 환자 등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씨 가족은 “하다 하다 제주도에 있는 요양병원에도 연락해 봤다”며 “‘아버지를 안 받아주면 행정명령 위반으로 신고하겠다’는 말까지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선뜻 병상을 내준 오산 병원 측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산메디컬재활요양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를 겪었다. 당시 음성이 나온 환자들을 옮기려고 50여곳 이상을 알아봤으나 받아주는 요양병원은 없었다”며 “병원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보니 그 고통과 서러움을 알기에 요양병원 환자와 그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있었던 수도권 일대 요양병원이나 코로나19 전담병원과도 소통하며 환자를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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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해제 후…갈 곳 없는 노인들
최근 코로나19 격리해제 판정을 받은 노인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곤란에 빠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미 완치한 환자를 빨리 전원(轉院) 조치해 새 환자를 받아야 하는 감염병 전담병원과 기존 환자·간병인의 불안 때문에 완치 환자를 받기 꺼리는 요양병원 사이 ‘낀’ 신세가 됐다.
올해 101세인 A씨(여)도 격리해제 후 입원할 요양병원을 찾지 못해 이틀을 대기하다 지난 3일 부천의 한 요양병원으로 겨우 옮길 수 있었다. A씨의 코로나19 치료를 담당한 가천대 길병원의 엄중식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격리해제 판정받은 지 일주일이 지난 환자의 전원을 거부하는 요양병원을 경험하며 답답함을 느꼈다”고 적었다. 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A씨는 겨우 전원할 곳을 찾아 퇴원했지만,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들은 대다수가 치료를 마친 뒤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야 한다. 고령에 기저질환(지병)이 있다 보니 가정 내 돌봄이 어려워서다. A씨의 70대 아들은 “어머니 건강 상태가 워낙 안 좋다. 형제들도 모두 고령이라 우리가 보살필 형편도 안 된다”며 “옮길 요양병원을 찾지 못해 걱정이 컸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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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는 요양병원…방역 당국도 대책 마련
요양병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기존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 등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무작정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민간 요양병원은 집단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것”이라며 “환자와 그 가족 입장에서는 코로나19에 걸렸던 사람이 들어오면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노인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도 60세 이상이 대부분”이라며 “간병인들은 ‘건강이 곧 재산’이기 때문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1%의 재발 우려가 있는 이상 전원 조치를 꺼린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어느 요양병원이나 간병인 인력이 부족한데 코로나19 완치 환자를 받으면 ‘관두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기존 환자와 보호자, 병원 직원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2인실을 따로 마련해 2주 정도 자가격리를 하고 자체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는 경우만 다인실로 옮긴다”며 “2인실이 있는 요양병원은 다행이지만 다인실만 있는 경우 대책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지방자치단체에 전원을 거부하는 요양병원을 파악하도록 하고, 추가 지원금 지급 등 혜택을 줘 자진 전원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중수본 관계자는 “의료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지만, 요양병원에 강제 적용하는 부분은 검토가 필요한 만큼 건강보험 수가를 통해 보상하는 인센티브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대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100병상 이상인 요양병원에 공문을 보내 전체 병상의 1%를 코로나19 격리해제자 입원 병상으로 의무 확보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태윤·채혜선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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