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모인 집, 가족들 오싹하게 만든 할머니의 한마디

장혜령 2021. 2. 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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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명절, 가족에 권하고픈 OO]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

어느덧 2021년이 밝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우린 과거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로 인해 설 연휴에도 가족들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랜선명절, 가족에게 권하고픈 OO'에선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할 수 있는 작품(영화, 드라마, 예능)을 소개합니다. 그럼,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연락할 준비 되셨나요? <편집자말>

[장혜령 기자]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 포스터
ⓒ 왓챠
 
코로나19 시대에 벌써 명절을 두 번이나 보냈다.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전염병 탓에 명절도 '비대면'이 우선이다. 특히 정부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지침으로 모처럼 가족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던 이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이번 명절에도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조상님을 모셔야 할까.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얼굴들인데 화상통화로 대신해야 할까. 코로나19는 오랜 민족의 관습마저 바꿔놓고 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부모·형제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드라마가 떠올랐다. 바로 BBC와 HBO 합작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원제: Years & Years)다. 우리나라에서는 왓챠에서 독점으로 스트리밍 중이다.

넷플릭스에 <블랙 미러>가 있다면 왓챠에는 <이어즈 & 이어즈>가 있다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이야기로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가 기술 발전이 불러올 미래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면, <이어즈 & 이어즈>는 사회 전반의 변화가 도미도처럼 이어지는 '연결성'에 주목한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을 바라보며 이 가족이 겪는 일상의 변화를 통해 국가와 세계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현실성있는 드라마다.

영국 가족 삼대가 겪은 '15년'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 스틸컷
ⓒ 왓챠
 
<이어즈 & 이어즈>는 엠마 톰슨, 로리 키니어, 러셀 토비 등 영국을 대표하는 신구 배우가 총출동한 작품이다. 이들이 할머니-부모-아들, 딸 등 삼대로 묶여 한 가족을 이루었다. 시대 배경은 브렉시트 이후인 2019년부터 2034년까지의 근미래다. 성격과 가치관, 정치적 성향도 다른 이 가족 구성원은 일종의 AI 기기인 시뇨르로 통화하고 정보를 검색하며, 대소사까지 결정한다. 

해를 거듭할 수록 이 가족이 겪는 일이 드라마틱하다. 드라마는 이들이 겪는 15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가족 간 화해와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정치사회적 풍자도 시도한다. 정치, 과학기술, 사회, 환경, 성정체성, 장애, 긱워크, 난민 문제, 빅브라더 등 다양한 소재가 담긴 SF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라이언 가(家)' 삼대가 겪는 현실과 미래는 대한민국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드라마엔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예견한 것 같은 장면도 나오는데, 이 놀라운 현실감에 오싹함마저 들 정도다. 그래서 극 중 할머니인 뮤리엘(앤 리드)의 호통이 뼈 때리는 일침으로 다가온다. 그는 100년 가까이 이 가족을 지켜봤고 영국 사회를 살아온 상징적 인물이다.

"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온종일 소파에 앉아서 정부 탓, 경제 탓, 유럽 탓 등 남 탓하며 행동하지 않고 투덜거리다가 영국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염병 팬데믹이 닥치고, 혐오를 일삼는 신인 정치인이 권력을 얻어 난민을 학대하는 정책을 펴고, 금융권이 마비되다시피 해 순식간에 주식 및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는 현상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분석이다.

심지어 할머니의 생일을 맞아 한 자리에 모인 라이언 가족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레임덕을 벗어나고자 쏘아 올린 핵폭격의 여파를 목격한다. 중국령의 인공섬 훙샤다오(가상의 인공섬)에 명중한 핵폭탄은 영국 사회를 크게 흔든다. 드라마는 3차 세계대전 직전의 위급한 분위기를 묘사하다가 다행히 중국이 한발 물러서는 선택을 하는 장면을 보이는데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만든 결과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 포스터
ⓒ 왓챠
 
<이어즈 & 이어즈>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면면을 보자. 급진적 사회운동가 이디스(제시카 하인스), 금융전문가 스티븐(로리 키니어), 스티븐의 아내이자 회계사 셀레스트(트니아 밀러), 게이 주택 관리 공무원 대니얼(러셀 토비), 장애가 있는 미혼모 로지(루스 매들리) 등이다. 스티븐과 셀레스트의 자식인 베서니(리디아 웨스트)는 트랜스 휴먼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모든 정신을 데이터화 하고 싶어 한다.

한편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자 '빌런'은 다음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세대, 이와중에 대중적 혐오를 기반으로 정치인이 된 기업가 출신의 비비언 룩(엠마 톰슨)이다. 그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앞서 언급한 혼란의 주역이 된다. 

비비언 룩이 내놓은 정책들은 이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우선, 로지가 사는 지역이 우범지대라는 이유로 통제구역이 된다. 야간 출입이 극히 제한되면서 로지네 가족과 이웃들은 내 집 드나들기가 국경을 넘는 것처럼 힘들어진다. 난민 배척 정책은 이 가족과 상관 없어보였지만 대니얼이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 빅토르와 사랑에 빠지며 상황이 급변한다. 신변을 위협당하는 빅토르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영국을 떠났던 대니얼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AI 기술의 보편화로 회계사인 셀레스트는 실직한다. 잘 나가던 금융전문가 스티븐도 마찬가지다. 스티븐은 한국의 배송 노동자 격인 자전거 배달 노동자인 긱워커를 비롯해 몇 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게 된다. 할머니와 이혼한 후 다른 살림을 차린 할아버지는 항생제 남용 등으로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음에도 패혈증이 심해져 사망하고 만다.

비비언 룩은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될 대로 되라며 승승장구한다. 그를 보고 있으면 현실 속 도널드 트럼프가 겹쳐지는데, 비상식적인 행동과 발언, 극명한 혐오와 적대적인 태도, 무자비한 난민 정책, 친기업 성향 등을 일관하면서도 비비언은 독하게 살아남는다.

비비언 룩은 우리 주변의 괴물을 상징한다. 할머니 뮤리엘은 비비언 룩 같은 사람을 두고 연륜이 묻어나는 충고를 날린다.

"저런 농담꾼, 사기꾼, 광대 놈들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를 웃기면서 지옥으로 이끌어 갈 거야. 또 나타날 거다. 괴물 하나를 없앴다는 건, 또 다른 괴물이 깨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니까."

그렇다. 괴물 하나 사라졌다고 해서 세상이 깨끗해질 리 없다. 더구나 또 다른 괴물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변이를 거듭해 훨씬 막강한 괴물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런 괴물의 탄생을 막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향한 관심을 멈추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무관심, 눈앞의 불편함만 투덜거리는 습관에 젖어 넘겨 버리는 사소한 날갯짓이 나와 가족, 미래를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허리케인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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