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농산물발 인플레이션..설 이후에도 밥상물가 오를듯
"필요시 농업계 지원금 확대·금리 인하·할당관세 적용"
[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정부가 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 관리에 들어갔지만 설 이후에도 상승세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으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필요시 농업계 지원자금 확대와 금리 인하, 일부 품목의 긴급 할당관세 적용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열고 주요 원자재 가격동향 및 대응방향을 발표했다. 자급도가 낮은 밀·콩·옥수수 등 수입 곡물 수급대책을 세웠다.
홍 부총리는 "자급도가 낮은 밀·콩 등 수입 곡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지난달부터 해외 곡물사업 진출기업의 융자금리를 2%에서 1.5%로 낮추는 등 금융지원을 확대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기별로 열던 곡물 등 원자재 민관합동협의체 회의를 수시로 열도록 하고 가격 점검 및 기관 간 정보공유를 강화할 것"이라며 "내년까지 원자재 조기경보시스템을 개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곡물 가격 관리에 나선 이유는 계란·과일 등 설 성수품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설 연휴 이후 곡류·유지류·육류 등 주요 품목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밀·콩·옥수수는 식용·축산물 사료용으로 모두 쓰여 밥상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다. 국내 자급률이 극히 낮은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수입 강낭콩 가격은 1kg당 972원으로 분석 기간(1월14월~2월3일) 대비 12.2% 올랐다. 옥수수는 5.6% 오른 279원, 제분용 밀은 0.5% 오른 307원을 기록했다.
반면 국내 밀 자급률은 0.7%, 콩은 26.7%, 옥수수는 3.5%다. 우리나라는 연 1700만t을 수입 중이다. 해외에서 우리 기업이 직접 만들어 국내로 보내는 양은 수입량의 0.6%인 11만t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콩·옥수수 생산지인 남미에서 가뭄과 라니냐 등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적도 지역에서 저수온 현상이 5개월 이상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생산성은 코로나19 여파로 낮아지고 있다. 브라질은 하루 코로나19 확진자가 5만명이 넘고, 아르헨티나의 파업 장기화로 수출이 끊겼다.
수요 측면에선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육류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콩·옥수수·밀 등 사료용 곡물 수요도 늘고 있다.
정부가 국제 곡물 선물가격 조기경보지수를 '안정'에서 '주의' 단계로 올릴 가능성도 있다. '주의'로 올릴 경우 관련 지수를 만든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이렇게 되면 기재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는 국가 필수선박 및 주요 곡물 국내 신속통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지수는 -0.23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7년 곡물 파동(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때의 가격을 '1'로 잡고 0.0 이하는 안정, 0.0~0.5는 주의, 0.5~1.0는 경계, 1.0 이상은 심각 단계를 발령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업계에서 국내에 도착하는 수입 곡물의 국내 통관을 신속 처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해당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며 "국제 곡물 가격이 추가로 오르면 업계·농가에 지원하는 정책자금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거나, 일부 품목의 긴급 할당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계에선 장기적으로 곡류·유지류·육류 등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농산물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코로나19 1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후인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연속으로 올랐다.
정부는 세계의 식량가격지수가 오른 것은 수급 불안이 아니라 투자심리가 강화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달 남미의 작황 수치와 미국의 파종면적이 공개돼 전반적인 공급 수준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며 "실제 공급 관련 수치가 확인되고, 중국발 수요도 진정세로 접어들면 우려했던 만큼 큰 지수 급등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주요 곡물 자급 능력을 강화해 '식량 안보'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곡물소비량의 34%(38kg)가 밀·콩이다.
김완배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00% 식량 자급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품종·종자 재배 기술을 개발해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국제 곡물 반입을 늘릴 수 있도록 장기저리융자 지원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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