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명암①] 가짜뉴스 빌미로 언론에 재갈 물리나
보궐·대선 앞두고 언론개혁법 강행 논란
징벌적 손해배상제, 언론·포털까지 적용
민주당 "늦어도 3월 임시국회 안에 처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개혁을 두고 '재갈 물리기'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다수의 언론·시민단체는 현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은 △허위사실 명예훼손 시 3배 손해배상 △정정보도 크기 2분의1 의무화 △인터넷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언론중재위원 증원 △출판물 명예훼손 규정에 방송을 포함 △악성댓글 피해자의 게시판 운영 중단 요청권 등을 6대 언론개혁 입법 과제로 선정했다.
특히 쟁점이 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 대상과 관련해선 유튜브 등 인터넷 이용자뿐 아니라 기성언론, 네이버·다음·구글 등 포털까지 확대하기로 정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보도는 피해자와 공동체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늦어도 3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말해 속도전을 예고했다.
민주, 불리한 보도엔 가짜뉴스 딱지
보수정권 괴담 횡행할 땐 '자유' 강조
여권발 가짜뉴스 수두룩한데 제재無
그러나 '가짜뉴스'의 기준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민주당은 그간 불리한 의혹 보도가 나오면 일단 가짜뉴스 딱지부터 붙여왔다. 또 현행법상 민·형사상 소송과 처벌이 가능한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논란도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미네르바 사건,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등 보수정권 시절의 괴담이 횡행할 때 '언론과 표현의 자유' 편에 섰던 이들이 정권을 잡자 처벌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을 두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나아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제기한 검찰의 계좌 사찰 의혹, 방송인 김어준씨가 주장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배후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주장한 북한 원전건설 문건의 박근혜 정부 작성론 등 여권발 가짜뉴스부터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 3단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역시 성명서에서 "민주당이 통과시키겠다는 6개 법안은 갈아엎어야 하는 밭은 놔두고 잡초를 뽑겠다며 알곡까지 죽일 제초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언론개혁 추진하는 '진짜' 이유에 의구심
선거 앞두고 언론 통제·이낙연 입법 성과
전문가 "끊임없이 '적' 만들어 지지층 결집"
이러한 논란에도 민주당, 특히 이낙연 대표와 노웅래 최고위원 등 언론인 출신 인사들이 언론개혁을 주도하는 것을 두고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현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안의 내용과 발의 시점으로 볼 때 4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 재갈 물리기 의도로 봐야 한다"며 "임기 종료를 앞둔 이낙연 대표가 언론개혁을 자신의 성과로 삼으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도 논평에서 "신중한 검토 없이 민주주의 발전의 필수 요소이자 헌법에도 적시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으며 이토록 조급하게 언론의 손발을 묶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정권 입맛에 맞는 보도만 취사선택하고, 아닌 보도엔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언론에 재갈을 물려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심산"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왜곡된 언론관이 엿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하지만, 여권 인사들은 '기레기' '후레자식' 등의 표현을 쓰며 언론에 적대감을 보여왔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문재인 정부는 언론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 상황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때부터 언론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현 정권은 '적'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렵다. 적이 있어야 지지자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며 "출범 이후 2년 동안은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정도로 적폐청산을 했고, 그다음 2년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에 몰두했다. 그것까지 처리되니까 이제는 언론개혁으로 초점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일리안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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