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춘제 대확산' 악몽.. 中 "고향 안가는 분 현금 드려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두 번째 춘제 연휴(2월 11~17일)를 맞은 중국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춘제 보내기’(就地過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연휴 기간 고향 방문을 가급적 삼가라는 이동 자제령이다. 춘제는 연인원 30억명의 인구 대이동이 이뤄지는 중국 최대 명절이지만 올해는 이동 규모가 절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의 한 IT 업체에 근무하는 서모(32)씨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춘제 때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 서씨는 지난 8일 “헤이룽장성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갔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오려면 코로나19 핵산검사를 받고 2주간 건강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며 “연휴 기간 코로나19 환자가 나와 방역조치가 강화되면 격리되거나 한동안 베이징에 못 들어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발이 묶인 중국인들은 부지런히 지갑을 열고 있다. 특히 금과 주류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베이징의 한 보석상 직원은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매출이 지난해보다 이미 2~3배 늘었다”며 “올해는 행복이라는 한자가 적힌 금 장신구의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최고급 백주로 꼽히는 마오타이는 가격이 두세 배 올랐는데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춘제를 지나면서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늘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춘제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월 23일 중국의 신규 확진자는 131명이었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 2월 10일에는 2985명으로 20배 넘게 늘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월 13일에는 1만5152명이 코로나19에 새로 감염돼 일일 확진자 수 최고치를 찍었다. 일일 확진자가 배로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전염병이 얼마나 빨리 퍼지는지 보여주는 핵심 지수다. 춘제 대이동에 손놓고 있다가 코로나19 대확산을 맞은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춘제 연휴를 앞두고 방역보다는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발생한 후베이성 우한 관련 뉴스 단속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1월 23일 우한이 봉쇄되고 베이징과 광둥성에서도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해 방역체계가 뚫렸다는 지적이 제기됐음에도 이동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는 중국 전역뿐 아니라 세계로 확산됐다.
당시 중국 보건 당국과 관영 매체들은 ‘우한 폐렴’에 경각심을 갖되 지나친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자 뒤늦게 1월 24~30일이던 춘제 연휴를 2월 2일까지, 다시 2월 9일까지 두 번 연장했다.
중국은 올해 춘제를 앞두고선 방역 고삐를 바짝 조였다. 지난해 연말부터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자 주민 전수검사, 주거지역 봉쇄 등의 선제 조치를 취했다. 타지에서 온 노동자가 많은 베이징시를 시작으로 상하이, 저장성 등 대다수 지역에서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다. 춘제 전까지 의료진, 세관 공무원 등 중점관리대상 5000만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도 이뤄졌다.
중국은 춘제 15일 전부터 춘제 후 25일까지 40일을 춘제 특별수송(춘윈) 기간으로 정해놓고 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이미 지난달 28일부터 귀성 행렬이 시작됐을 것이다. 중국 교통운수부는 올해 춘윈 기간 연인원 17억명이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가 없었던 2019년보다 40%가량 줄어든 규모다. 춘윈 첫 사흘간 전국의 철도 여객은 88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정부는 인구 이동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베이징시는 연휴 기간 고향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비쿠폰을 나눠주고 이동통신사들이 스마트폰 데이터 용량 20G를 무료 제공하도록 했다. 광둥성과 저장성에선 춘제 기간 지역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귀향객이 찾아오는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은 이들의 방문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귀향객이 고향 집에 도착하면 이동 상황을 보고하고 7일 내에 발급받은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식이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방역조치 탓에 헤이룽장성에선 모처럼 고향을 찾은 사람 집 앞에 ‘봉인’ 딱지가 붙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지역 관리소가 타지에서 온 방문객을 찾아내 현관문에 1주일간 외출을 금지한다는 글을 붙인 것이다.
지나친 방역조치가 피로감을 불러오고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중국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국무원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한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식의 융통성 없는 방역 정책은 소중한 방역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과학적으로 방역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춘제 연휴를 앞두고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누그러졌다. 새해 들어 하루 세 자릿수까지 치솟았던 신규 확진자는 지난 7일 0명(본토 발생 기준)을 기록했다. 지역사회 감염자가 한 명도 안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 16일 이후 50여일 만이다.
명절 소비에도 큰 타격은 없는 분위기다. 중국 슈퍼마켓 체인 우마트 관계자는 환구시보에 “중국 남서부에 있는 생산업체가 연휴 전 제품을 일괄 발송하는데 올해는 물량이 부족해 아직 받지 못했다”며 “견과류, 육류, 우유 등 판매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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