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때 사환·기능공 생활.. 청년들 꿈·희망의 힘 믿으세요"
13세에 사무실 사환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가난한 소년은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변호사가 됐고, 국내 6대 로펌 중 하나인 화우의 대표 변호사까지 올랐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센병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내 공익소송 변호사로 명성도 얻었다.
박영립(68) 화우공익재단 이사장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에는 3시간이 넘는 인터뷰로도 부족했다. 그는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여관 심부름꾼, 음식점 배달원, 양복 기능공, 전선회사 직공 등 안 해본 것 없이 일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땀과 눈물보다 ‘사회와 주변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얘기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검정고시 제도가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배려해준 가게 사장님, 장학금을 지원해준 학원 원장님의 도움도 컸고요. 그 빚을 갚기 위해 수입뿐 아니라 법률 지식의 10분의 1도 내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벽돌 한 장이라도 쌓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입지전적인 길을 걸어오셨는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나요.
“열다섯 살 때 일했던 서울역 옆 여관에서였어요. 수학여행 온 학생들한테 여관에서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제가 장소를 잘못 전하는 실수를 했어요. 어린 마음에 일단 피하려고 나왔는데 막상 다시 못 들어가겠는 거예요. 밤새 추위에 떨다가 발견한 연탄재에 온기가 남아 있어서 그걸 끌어안고 몸을 녹였어요.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면서 연탄재의 온기를 말했는데, 저는 그걸 실제로 경험해본 거죠.”
이후 음식점을 거쳐 양복점에 보조원으로 들어갔다. 기술자 대우를 받게 되면서 급여가 오르자 시골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서울로 올라오게 했다. 비로소 생활이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가게가 부도가 났다. 그때부터 몇 년간 “별의별 일을 다 했던” 고난이 이어졌다. 반전의 기회가 온 것은 동대문시장 이불솜 가게 점원이 된 후였다.
-검정고시는 어떻게 준비하신 건가요.
“시장에서 일하면서 보니 점포 주인이 되려면 직접 장부를 쓸 수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경리 업무를 배우려고 학원을 찾다가 검정고시학원 광고를 본 거예요. 주인아저씨 양해로 오전에 학원을 가고 오후에 가게 일을 했어요.”
ABC도 모르는 채 공부를 시작했지만 2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치고 숭실대 법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사법시험은 어떻게 도전하게 된 건가요.
“숭실대는 미션스쿨이어서 채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어요. 설교에서 들은 ‘소명의식’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중에 도서관에서 법학과 소개 책자를 읽다가 사법시험에 대해 보고 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경영학과에서 법학과로 바꿨어요. 여름방학부터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고요.”
-중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을 텐데요.
“슬럼프가 올 때는 고시 합격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추슬렀어요. 공부를 쉬면 장학금을 놓칠까봐 매 학기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궁하면 통한다고, 궁즉통(窮則通)이었던 것 같아요. 고시 합격기를 보면 대개 하루 10시간씩 3년 공부해서 합격했다고 돼 있었어요. 저는 남들보다 부족하니까 1.5배 더, 하루 15시간씩 3년6개월 동안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어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1차 시험에 합격했고, 그 다음해인 1981년 최종 합격을 했다.
-꿈을 이루신 건가요. 서울로 올라올 때는 금의환향을 꿈꿨을 것 같은데요.
“그땐 그저 힘든 농사일을 안 하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7~8년간 서울을 떠돌며 살 줄 알았으면 안 올라왔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제 나름의 순례 코스를 만들었어요. 1번이 서울역이죠.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의 어려움을 잊지 않으려고요. 그다음이 검정고시를 시작했던 동대문시장, 마지막이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숭실대 채플과 도서관이에요. 힘들 때마다 순례 코스를 걸으며 저 자신을 다잡고 재충전을 하죠.”
-검정고시는 건재하지만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 하나가 없어졌어요.
“제가 우리 사회에 가장 감사하는 것 중 하나가 검정고시 제도예요.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검정고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바꾼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사법시험 폐지는 참 아쉬워요. 우리 때는 저만 특별히 어려웠던 게 아니었거든요, 다 어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대적 박탈감이 크잖아요. 청년들이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도록 해서 경쟁 무대에 올라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정부나 공공의 영역에서 가급적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서 누구나 미끄러지지 않고 기회를 얻게끔 해줬으면 해요.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제도,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전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존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절박함이라고 할까요. 어려움이 제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자극제가 됐던 것 같아요. 제가 40대 후반에 신장암으로 오른쪽 신장을 절제했어요. 처음엔 오진이라 믿고 싶고 억울한 생각도 들고 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 수술을 하면서 제 욕심 주머니를 떼어낸 것 아닌가 합니다. 한 달에 몇 번 필름이 끊길 만큼 술·담배를 많이 했는데 수술 후에 다 끊고 건강이 나아졌어요. 인생에 뭐가 좋고 나쁜지는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암 진단은 그의 커리어에도 전환점이 됐다. 수술 후 일을 줄여가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으로 구치소와 교도소 등의 구금실태를 조사했고, 그를 계기로 현장 개선이 이뤄졌다. 공익활동을 하는 동안 건강도 조금씩 회복됐다.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맡아 탈북민과 외국인 노동자 지원, 성매매 여성 선급금 무효소송 등을 진행했다. 특히 한센병 소록도 보상청구 변호단장으로 10년이 넘는 노력 끝에 피해자 590명이 일본 정부로부터 1억원씩 보상받게 됐다. 한국에서도 강제 단종(정관수술)과 낙태 피해자 530명에 대해 3000만~4000만원의 보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게 나의 소명이 맞구나, 확신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한센병 소송을 하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분들이 얼굴 노출되는 걸 꺼렸는데 일본보상청구 사건이 1심에서 기각됐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면서 언론에 얼굴을 드러냈어요. 소송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거죠. 우리 공익재단 변호사들이 간호사 ‘태움’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해서 승인 판정을 받았고, 취객을 구하다 숨진 소방관의 위험직무순직 재심 신청 사건을 맡아 유족보상금 청구 승인도 받았습니다. 자기 권리인 줄 모르거나 법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을 공익소송을 통해 도와드리고 사회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 구제 수단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변호사로서 그런 과정에 함께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마지막으로 박 이사장에게 고난을 이겨낸 선배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 달라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되레 좌절감이나 상처를 줄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하다가 ‘때’와 ‘희망의 힘’에 대해 말했다.
“늦었다는 때는 없다고 봐요. 제가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한다고 할 때 다들 늦었다고 했거든요. ‘그 나이에 공부해서 교수가 될래, 박사가 될래, 동생들 공부나 잘 시켜야지’ 그랬어요. 그때 제가 스물이었어요. 사람들이 다 때가 있는 거라 그랬고,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기가 생각한 때가 바로 그때인 거예요.”
-희망의 힘이라면요.
“2004년 한센병 소송을 시작할 때 그분들 평균 나이가 81세였고 한 해에 40명씩 돌아가셨어요. 피해자가 104명이어서 3년 안에 모두 돌아가실까봐 걱정했어요. 그런데 3개월마다 설명회를 하면서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고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2006년 첫 번째 보상판결이 날 때까지 돌아가신 분이 20명이었어요. 실낱같은 희망이 그분들의 생명을 연장시킨 거예요. 언젠가는 꼭 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꿈과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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