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그리운 건 가족의 온기.. "추석 땐 함께 지내요"
“부모님이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여주며 애써 괜찮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부모님 유일한 낙이 명절에 가족을 보는 것인데….”
서울 노원구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이모(47) 주무관은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설도 선별진료소에서 보내게 됐다. 여든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고향에서 명절을 쓸쓸히 보낼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주무관은 “그래도 진료소에 오시는 어르신을 뵐 때마다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날을 앞두고 지난 4일 찾은 서울 노원구 선별진료소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네 구역으로 나뉜 진료소에서 맡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년간 하다 보니 업무가 익숙해져 손발이 착착 맞았다.
이 주무관은 “명절이 다가오는 만큼 가족 없이 검사를 받으러 오는 이들에게 마음이 더 쓰인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두 달 전 부모님이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소를 하는 바람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7살, 6살, 4살 삼남매가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왔다. 구청은 삼남매를 돌볼 어른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직접 선별진료소에 데리고 와서 검사를 진행했다. 이 주무관은 “친척들도 감염위험으로 돌보러 오지 못해 삼남매끼리만 집에 있었다고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지모(29·여) 간호사도 설날에 업무를 계속한다. 지 간호사는 “병원 일이 바쁠 때면 충북 제천에 있는 부모님이 ‘밥 한 끼 차려 주겠다’며 올라오시곤 했는데 올해는 감염위험이 겹쳐 뵙지 못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지 간호사는 늘 긴장 속에 하루를 보낸다. 최근에는 보건소에서 뇌졸중 증세를 보이는 자가격리자를 음압 카트로 이동시켜 CT검사를 받게 한 적이 있다. 얼굴이 식은땀으로 범벅됐을 정도였다는 지 간호사는 “‘답답해서 못 살겠으니 당장 카트를 열어 달라’던 환자는 양성 판정을 받았었다”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선별진료소 근무자들은 다음 명절은 가족과 꼭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지 간호사는 “여건이 된다면 가족 동반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준규 노원구보건소 감염병관리팀장은 “지난해는 터널 끝을 모르고 일했다면 올해는 백신 이야기도 나오는 만큼 다가올 추석에는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기숙사 생활관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손기영(45)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센터에서 설날을 맞는다.
손 교수는 지난해 4월과 7월 대구와 충남 천안 지역의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전 국민이 가족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인데 나 혼자 사명감으로 이곳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유난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더 이상 센터가 필요한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센터가 개소한 지 이제 막 한 달을 넘겼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달 센터 상황실에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센터에서는 비대면으로 환자 진료가 이뤄진다. 환자들이 상황실에 전화를 걸거나 공용 카카오톡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식이다. 이날 메시지를 보낸 이는 입소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한 50대 여성이었다.
여성은 건물 5층에 위치한 독방에서 한동안 격리돼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손 교수는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격리해야 하는 이유를 사흘간 매일같이 설명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며 토닥여주는 손 교수의 상담 덕분에 여성은 지난달 말 음성 판정을 받고 퇴소할 수 있었다.
응급 상황도 있었다. 지난달 한 60대 여성 확진자가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설명과 함께 센터로 배정됐다. 하지만 입소한 다음 날 새벽 1시쯤 환자의 첫 산소포화도 검사 결과가 77%로 나왔다.
정상수치는 최소 93~94% 이상이다. 손 교수는 황급히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간호사 2명과 함께 환자의 방으로 뛰어갔다. 응급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산소통을 가져오라고도 지시했다. 다행히 환자는 센터에서 병원으로 안전하게 전원 조치됐다.
손 교수의 지시에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 속 20㎏짜리 산소통을 들고 100여m 되는 내리막길을 질주한 이도 있었다.
정지훈(27) 서울아산병원 수술간호팀 간호사는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겉옷을 입을 생각도 못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역시 설날에도 2교대 근무로 환자 곁을 지킬 예정이다. 정 간호사는 "낯선 곳에서 외롭게 지낼 환자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설날에도 근무하는 편이 낫다"며 "가족 모두 모일 수 있는 명절이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웅 강보현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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