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임명·중도 하차.. 겉도는 공정위 비상임위원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편견과 독단적인 결정을 견제하기 위한 비상임위원제도가 헛돌고 있다. 문재인정부 이후 임명된 공정위 비상임위원 7명 중 절반이 넘는 4명이 중도 사임했다. 고도의 전문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비상임위원 임명이 ‘깜깜이’로 이뤄지면서 제도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정재훈 비상임위원은 올해 초 사의를 표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정 비상임위원은 해외 교환교수로 떠날 예정이다. 2013~2016년 서울고등법원 공정거래사건 전담판사로 근무한 경력의 정 비상임위원은 전문성과 소통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지만 임기 3년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 비상임위원은 자타공인 공정거래법 전문가로 공정위 심결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면서 “구성원들 모두가 아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 비상임위원이 사의의사를 전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후임 인선이 늦어지면서 공정위 안팎에서는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당초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모 로펌의 A변호사가 유력한 후보로 검토됐지만 명확한 이유 없이 탈락했고, 현재는 또 다른 로펌의 B변호사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B변호사는 형사법 전문으로 공정거래법 관련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왜 A변호사에서 B변호사로 바뀌었는지 내부에서 의아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준사법기관인 공정위는 9명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에서 사건을 심의한다. 전원위는 공정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상임위원과 4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전원위에서 결정된 심결은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9명 재적위원 중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기 때문에 비상임위원도 공정거래위원장과 같은 하나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기업으로치면 이사회의 전횡을 견제할 사외이사 성격인 셈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공정위 비상임위원 운영은 삐걱대고 있다. 2018년 이후 임명된 7명의 비상임위원 중 절반이 넘는 4명은 3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불가피한 개인 사정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인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모 비상임위원은 임기 1년 동안 공정위 회의 출석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이 언론보도로 드러나자 자신사퇴했다.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지낸 한 교수는 “지난 정부까지 비상임위원들이 중도 사퇴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현 정부 들어 비상임위원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공정위 전원위원회에 속한 4명의 비상임위원 중 3명이 올 상반기 중 교체된다. 정 비상임위원 사임으로 공석이 된 한 자리 외에 2명의 비상임위원의 임기가 곧 만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 한 핵심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비상임위원 후보들은 매주 세종시에서 밤늦게까지 이뤄지는 전원회의 참석과 사전 자료검토 등 과중한 업무부담을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면서 “반면 비상임위원을 ‘감투’ 삼아 공정위 관련 사건 수임 등 ‘가욋일’에 관심을 가지는 희망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공정위 비상임위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비상임위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 경력을 합산하는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관련 경력 15년 이상인 자만 임명이 가능하고 공정위는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15년 동안 형사사건을 전담한 공정거래 분야에 문외한 격인 검사 출신 법조인은 임명이 가능한 반면, 공정거래법 관련 재판부에 14년 근무하고 법복을 벗은 뒤 공정거래법 관련 교수로 14년을 근무한 전문가는 한 분야에서 경력이 15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격미달자로 분류된다.
공정거래법 한 전문가는 “판사와 검사로 15년 이상 근무한 법조인이면 모든 법에 정통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라며 “공정거래법에 지식이 없는 법조인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비상임위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까지는 일정기간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임명 절차가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일정 요건이 갖춰진 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공정위가 비상임위원 임명 보도자료를 내기 전까지는 누가 후보자로 추천됐고, 어떤 심사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공정위 출신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황 교수는 “비상임위원 인선에서는 공정거래 분야의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한다”면서 “공정위가 과연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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