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지지한 시인 자소서 써줬다..청와대·김은경 '낙하산 협업'

박사라 2021. 2.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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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는 10일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박근혜 정권 출신 임원 14명을 ‘사표 낼 인물’로 콕 집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후임자로 청와대가 내정 지시한 인물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지지 선언’을 한 시인이었다.


교체 리스트·사표 계획까지 靑에 갔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에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뉴시스.

김 전 장관의 판결문에 따르면 청와대와 환경부는 전 정권 인사를 내치고 친정부 성향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양측 사이의 소통 창구가 됐다. 2017년 7월, 신 전 비서관은 지난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을 우선 교체할 대상자로 선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환경부는 ‘기관장은 일괄 사표를 걷기로 하고 상임이사는 선별적으로 징구(徵求ㆍ내놓으라고 요구함)하되, 해당 실ㆍ국장이 교체 대상인 임원들에게 사표를 제출하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설득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11명은 연내 일괄하여 즉시 교체하고 2018년 1월 중 후임자 임명 절차에 착수한다’는 세부 계획까지 세워 청와대에 보고했다.


文 지지 선언 시인, 인사팀이 써준 자소서로 합격
이들 자리는 청와대 추천 인사들이 꿰찼다.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8월, 환경부에 “청와대 추천 후보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모두 다 해주라”고 지시했다. 그중 한 명이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직에 추천된 권모 씨였다. 권씨는 2017년 5월 대선 당시 안도현ㆍ공지영 시인 등과 함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문학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환경부 직원들이 막상 서류를 받아보니 권씨가 도저히 서류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인사팀 직원들이 나서 경력을 보완해주는가 하면, 권씨의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서까지 대신 작성해줬다. 면접에서도 권씨는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예상질문’을 미리 받고 갔고, 환경부 국장이 합격 분위기를 유도해 결국 최종 합격했다.

이런 ‘낙하산 작업’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진보 성향 언론인 출신 박모 씨가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자리 서류심사 단계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러자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질책하고, 소명서까지 내라고 요구했다. 국장급 직원을 문책성 전보시키기도 했다. 이후 환경부는 박씨의 경쟁자 전원을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 처리해 인사 공모 자체를 무산시켰다.


210명이 ‘낙하산 연극’ 들러리 섰다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표 제출 대상자로 찍힌 14명을 내치기 위한 작업도 함께 진행됐는데, 한 임원이 사표 제출을 거부하자 ‘표적 감사’를 벌이기도 했다. 해당 임원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빌미로 형사 고발 등을 언급했고, 감사관실 직원이 직접 당사자를 만나 “왜 이렇게 사표 내시는 것을 어려워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해당 임원은 불이익을 우려해 사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런 식의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이전 정부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며 명백한 위법임을 못박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내정자가 있는 걸 모른 채 130여 명이 인사 공모에 지원해 ‘들러리’를 섰다. 80여 명의 환경부 관련 기관 임원추천위원들 역시 김 전 장관 등이 꾸민 연극에 이용됐다. 억지로 사표를 제출한 임원들에게는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심한 박탈감을 안겨주었다”고도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날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부인 발언에 한 법조인은 “특정 정치 성향의 인물을 찍어내고 그 자리와 혜택을 친정권 성향의 인사들에 주는 것을 통칭해 ‘블랙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인데 정부가 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하면 ‘착한 블랙리스트’라는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사라ㆍ박현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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