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추억이 쌓인 간이역, 찰칵~ 찰칵~ 설국열차가 달린다

남호철 2021. 2.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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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오지마을 눈꽃 여행' 경북 봉화
하얀 눈이 덮인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영동선 비동 승강장 인근 터널 앞 철교 위를 달리는 ‘경북 누리로’ 열차.


눈이 오면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오지마을 눈꽃 여행’을 위해서다. 산타마을에서 추억을 남기고 눈꽃 열차를 타고 설국으로 들어가거나 눈길을 따라 ‘뽀드득’ 소리와 함께 세 평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그곳. 경북 봉화군이다.

소천면 분천리는 ‘영남의 젖줄’ 1300리 낙동강이 마을을 끼고 흐르고 여우천이 흘러든다고 해 ‘분천(分川)’이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이곳에 있는 분천역은 영동선이 개통하면서 1956년 1월 생긴 간이역이다. 한때 철길은 지역 주민들이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굴뚝을 내려오고 썰매를 탄 산타할아버지 조형물로 꾸며진 분천역.


산타마을에 들어서면 동화세계다. 빨간색에 하얀 선을 곁들인 헐렁한 복장을 하고 선물자루를 둘러멘 산타할아버지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는가 하면 굴뚝을 타고 내려오는 조형물이 반긴다. 산타우체국도 있다. ‘2월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분천역은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에 힘입어 산타마을로 변신할 수 있었다. 협곡열차는 분천역~철암역 구간에서 산과 강을 넘나들며 왕복하는 관광열차다. 지난해 8월에는 동해산타열차도 개통했다.

마을 한쪽에 남미에서 볼 수 있는 희귀동물 알파카가 있다. 최근 지난달 암컷 1마리와 수컷 1마리를 출산했다. 새끼 알파카 이름은 첫째인 암컷이 ‘메리’, 둘째인 수컷이 ‘크리스’다. 셋째가 태어나면 ‘마스’로 지어 산타마을에 어울리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완성된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아직 여행객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분천역에서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으로 이어지는 총 길이 12.1㎞의 명품 힐링 트레킹 코스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다. 4~5시간 철길을 따라 걸으며 험준한 백두대간의 협곡이 빚어놓은 자연과 비경을 직접 느낄 수 있다. 길 옆으로 강원도 태백시 황지에서 발원해 안동호로 흘러드는 시원한 낙동강 줄기가 동행한다. 때 묻지 않은 풍경이 오감을 만족시킨다.

분천역을 출발해 물길을 가로지르는 비동1교와 비동2교를 지난다. 강물이 불어나면 물에 잠겨 건널 수 없는 다리다. 4.3㎞ 지점에 비동(肥洞) 승강장이 있다. 역사(驛舍)는 없고 열차에 오르내릴 수 있는 간이 승강장만 있다.

이곳에서 양원역까지 2.2㎞ 구간은 ‘체르마트길’이라 불린다. 분천역이 스위스 알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한 계기로 이름지어졌다. 바로 앞 다리 아래 펼쳐지는 강 풍경이 아름답다. 철교 위 철길 가장자리에 낸 보도를 건너면 열차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걷기 길은 오른쪽 산기슭으로 벗어난다.

양원역은 분천역과 승부역 중간지점에 있다. 1988년 마을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탄원해 세운 ‘국내 최초 민자 역사’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봉화군 원곡리와 울진군 원곡리 두 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도로를 이용해 이 두 마을로 가려면 울진군 금강송면을 거쳐 산을 넘어야 한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양원역 대합실.


역이 없던 시절 봉화 춘양장에서 장을 본 마을 주민들은 달리는 기차에서 이곳 철길에 장바구니를 던져두고 승부역에 내려 되돌아 걸어왔다. 철길 따라 걷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대합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이다. 대합실 안에서 열차 시간뿐 아니라 원곡마을 주민이 대합실과 승강장을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던 애환을 확인할 수 있다.

양원역에서 5.6㎞ 더 가면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있는 승부역이다. 긴 곡선을 그리는 터널과 강줄기 사잇길과 나무계단 길, 출렁다리 등을 지난다. 승부역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역이었으나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하며 유명해졌다.

산과 계곡에 둘러싸여 ‘세 평만큼’ 좁다는 오지 간이역인 승부역.


역 구내에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62년부터 19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한 한 역무원이 쓴 글로, 승부역의 상징이 됐다. 실제 사방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산과 계곡뿐이다.

승부역 옆 언덕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새겨 넣은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 건설한 철도였던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됐다. 험준한 산맥을 뚫고 교량 55곳, 터널 33곳이 설치됐다.

여행메모
운휴중인 열차 설 연휴 임시 운행… 최근 변경 시간표 확인 필수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봉화 분천역으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5번 국도를 이용하다 가흥교차로에서 울진 방향으로 36번 국도를 갈아탄 뒤 분천터널을 지나면 닿는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분천 산타마을. 겨울 설국 속 거대한 풍차가 이국적인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산타마을은 코로나19 사태로 주말 공연 등 공식 행사는 전면 취소됐지만 오는 15일까지 운영된다. 산타마을 내의 경관시설 및 산타 우체국 등이 개방된다.

낙동강 세평하늘길은 다양한 코스를 짤 수 있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걸어간 다음 열차를 타고 돌아오거나 반대로 열차를 타고 승부역에 가서 걸어올 수 있다. 분천역~승부역 구간은 4시간 30분, 양원역~승부역 구간은 2시간 정도 걸린다. 동해산타열차를 이용하면 강원도 강릉에서 산타마을까지 한번에 갈 수 있다.

열차 시간표 확인은 필수다(분천역 054-672-7711). 올 들어 중앙선 KTX 개통 등의 영향으로 출발·도착 시간이 변경됐다. 협곡열차(V-train)·동해산타열차·경북나드리열차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운휴 중이지만 설 대수송 기간(2월 10~14일)에는 임시 운행한다.

봉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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