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청소=인권침해' 결정 근거는 헌법 10조였다
[김홍규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학생이 낸 ‘학생의 교직원 사용공간 청소 배정으로 인한 인권침해’ 진정 사건에 대한 결정문을 발표했다. |
ⓒ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낸 '학생의 교직원 사용공간 청소 배정으로 인한 인권침해' 진정 사건에 대한 결정문을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을 제기한 학생이 다니는 학교장에게 "교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에 대하여 학생에게 비자발적 방법으로 청소를 배정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해당 학교를 관할하는 교육감에게 "교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을 학생에게 청소시키는 사례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교무실 청소를 인권침해로 결정한 핵심 근거는 헌법 제10조였다.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는 진정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였다"라고 판단했다.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줄 알고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학급 및 학교의 모든 구역을 적절히 배분하여 청소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성을 함양하는 차원에서 학교가 생긴 이래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과 마찬가지로 청소 또한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사료된다."
결정문에 있는 학교의 주장이다. 해당 학교는 교무실 청소 강제가 '교육활동'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 학생이 어려운 구역을 지속적으로 청소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운영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정부의 "용역 활용 방침이 있기 전에는" "현재처럼 학생들에게 교무실 등 청소를 배정할 예정"이라는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국가인권위 결정문에는 학교를 변호하는 교육청 주장도 들어 있다. 교육청 입장은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교육청은 청소를 통해 바람직한 생활 습관 형성, 공공질서 준수, 예절 배우기, 책임감·이타정신·봉사정신 체득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실과 교장실 및 교무실 역시 학교교육 현장"이라고 규정했다. "청소 임장지도를 하며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의 성장 및 심리적 상태를 살피고, 학생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청소 시간에 교사와 소통하며 성장해 가기도 한다"라고 교육적 효과를 강조했다.
청소 효과가 이 정도라면 학교는 청소만 시켜도 교육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교육청은 "의사에 반해 학생들에게만 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사항이 아니므로" "청소 용역 이용, 희망 학생들에 의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의 시행"하도록 권장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교총의 반발과 전문가의 반박
교원단체 가운데 하나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반발했다. 교총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향상을 위한 노력은 존중하나, 인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학교 현실과 교육적 측면을 다소 고려하지 않는 또 하나의 교육 사안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정말 교무실 청소를 시키는 것이 '교육적'일까?
해당 사건에 전문가 의견을 제출한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는 학교와 교육청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교직원 사용공간에 대한 청소 강제는 교육활동이 아니라고 했다. 국가인권위 결정문에 들어 있는 구 교수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구 교수는 교육활동의 가치는 "학생들이 교육활동에 참여할수록 더 잘하게 되고, 보람을 느끼며 자존감을 느끼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교직원 사용공간을 청소한 학생들이 문제라고 진정한 행위를 한 것 자체를 고려하면" 학생들이 교육활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학교의 기대와 달리 인성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성교육의 방법은 학생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교육"인데,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강제적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셋째, 잠재적 교육활동으로 볼 수 없다. 잠재적 교육과정 개념에 비추어 보면, 학교의 청소 강제는 인성교육을 목표로 하는 의도된 교육과정으로 봐야 한다. 잠재적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복종을 강요하는 학교 문화라는 비판적 의식을 배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실태 파악을 위해 해당 학교가 있는 교육청 소속 88개 중학교 가운데 25개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 "봉사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임의로" 교무실 등 교직원 사용공간을 학생에게 청소시키는 학교는 14개였다. 청소를 시키는 이유로는 "청소인력 부족, 봉사정신 함양, 교사의 업무 부담 및 시간적 제약, 환경교육 차원, 교육의 일부 등"을 꼽았다. "앞으로… 학생 대상 청소구역 배정을 지양하고, 교사 업무 경감을 위한 청소 용역 배치 확대 등을 희망"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자료사진. 자기가 생활하는 공간을 스스로 청소하는 모습과 자신이 버린 쓰레기마저 학생들에게 치우게 하는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교육적일까? |
ⓒ 연합뉴스 |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문조사 결과를 별지에 자세히 소개했다. 학생 청소 배정 현황을 보면, 교장실에 배정한 학교가 15개, 교무실에 배정한 학교는 20개에 이르렀다. 행정실에 배정한 학교는 16개였으며, 전산실에 배정한 학교도 한 곳 있었다. 눈에 띄는 사유를 몇 가지 옮긴다.
"넓은 의미에서 학교생활 공간은 학생 자신이 늘 생활하는 공간 이외 학교 내 시설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청소를 하도록 배정, 청소를 하는 과정도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공간이더라도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배정함."
"교장실은 학교경영 및 교육활동을 위한 필수적 공간으로 학교발전을 위한 각종 회의 장소이며 학생 및 학부모 상담을 위한 상시 열린 공간으로 활용함."
"학생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만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면 외부 인력을 이용하여 굳이 화장실 청소를 해 줄 필요도 없음."
"이미 개인 컵과 쓰레기는 교직원이 스스로 하고 있음."
"내가 사용한 공간만 청소해야 하고 선생님들이 사용한 공간이니까 사용한 사람이 청소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임."
모든 교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배정하던 교무실 청소를 스스로 하게 되면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교사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학생들이 (교무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했는데, 마음이 편하다."
자기가 생활하는 공간을 스스로 청소하는 모습과 자신이 버린 쓰레기마저 학생들에게 치우게 하는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교육적일까?
이점을 의식해서인지 교총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학생들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교총은 보도자료에서 '청소 용역 배치 확대'를 요구했다. 이왕에 학교 안 청소가 논란이 됐으니 이참에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으로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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