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국 만들어달라는 이재명 지사에 당황했지만.."
[최경준 기자]
▲ 김규식 경기도 노동국장 |
ⓒ 이희훈 |
"노동국을 만들어주세요."
2018년 7월 취임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시 초대 정책기획관이던 김규식 노동국장에게 건넨 첫 일성이었다. 김규식 국장은 '갑자기 웬 노동국? 뭐지?'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에 '노동국'도 생소했지만, 새로운 부서를 만들려면 원래 있던 부서를 하나 없애야 할 만큼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9년 7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처음으로 경기도에 노동국이 만들어졌다.
김규식 국장은 지난해 7월 1일 노동국장에 임명됐다. 다음날 이재명 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지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임금도 적은데 고용도 불안정하면 부당하다"는 것이다. 나름의 해법을 만들어 보고했더니,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12개월 근무한 사람보다 1개월 근무한 사람의 고용 불안정성이 더 심각하니, 1개월 근무한 사람에게 보수를 더 많이 줘야 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올해부터 '경기도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시행됐다. 역시 전국 최초다.
▲ 김규식 경기도 노동국장 |
ⓒ 이희훈 |
경기도의 노동 정책에는 유독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달린다. 올해 1월부터 플랫폼 배달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산재 보험료를 지원하는 사업도 전국 최초다. 이 밖에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이사제 도입, 취약노동자 조직화 지원 사업 등이 있다. 이 모든 게 경기도에 노동국이 신설되면서 추진됐다.
경기도가 다른 지방정부보다 앞장서서 노동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규식 국장은 "노동 정책에 대한 높은 관심과 노동철학을 지닌 이재명 도지사의 강력한 추진력"이라면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동국 직원들의 노력과 열정"이라고 말했다.
김규식 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일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 깜짝깜짝 놀란다"
- 경기도는 2019년 7월 '노동국'을 신설했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최초였는데, 노동국을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이재명 지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공정', 억강부약(抑强扶弱,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줌)인데, 그것에 딱 부합하는 게 노동국이다. 정말 깜짝깜짝 놀란다. 노동국이 추진하는 일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공공 부문의 청소·방호 노동자들의 휴게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있다. 마틴 루터 킹이 1968년 '청소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이 존중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경기도에서 그걸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노동국을 만들어서 최하 취약계층 노동자에 관해 정책 의제화하고, 예산을 반영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난해 7월 1일(노동국장 부임) 전까지 노동 인지(勞動 認知, 노동존중 가치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잘 몰랐다. 업무를 하면 할수록 소명 의식을 더 느끼게 된다."
- 노동국 신설로 인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무엇인가?
▲ 민선 7기 경기도 노동 정책 비전과 전략 |
ⓒ 경기도 |
- 경기도 노동 정책(사업)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이 지사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되는 것 같은데.
"지난해 7월 1일 노동국장에 임명된 다음날 (도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비정규직은 1개월에서 길어야 12개월 일하는데, 그러면 고용이 굉장히 불안정한 것 아닌가, 임금도 적은데 고용도 불안정하면 부당한 것 같으니, (공정하게) 설계를 해보라'는 지시였다. 그래서 업무를 12개월로 나눠서 평면적으로 설계해 보고했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12개월 근무한 사람보다 1개월 근무한 사람의 고용 불안정성이 훨씬 더 쎄니까, 그들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는 게 공정하다'고 말씀했다. 그게 바로 전국 최초의 경기도 비정규직 공정수당이다."
- 노동국 직원들의 제안이나 아이디어로 진행된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나?
"지금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게 갑질인데, 갑질 전담 센터를 전국 최초로 만들었다. 또한 택배 노동자 지원 전담 센터도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인데, 노동국이 없었다면 그것을 담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규 내지 새로운 유형의 노동 수요인데, 전통적인 조직만 있는 곳은 고민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버릴 수 있다. 노동국장으로 오면서 저도 그렇게 노동 인지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서 배워야 했다.
노동국에 '노동요+여민동락' 포럼을 만들어서 외부 노동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더니, 도움이 많이 됐다. 그동안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경영철학자 서진영 박사, 박정훈 라이더유니온(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강의했다. 전통적인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회에서 노동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한 내용 등이었다.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경기도형 정책에 대한 고민 등 상당히 실효성이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 김규식 경기도 노동국장 |
ⓒ 이희훈 |
- 코로나19로 비대면서비스가 확대되고,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의 대책은?
"플랫폼 배달노동자는 전속성(하나의 사업체에 노무를 제공하는 정도) 문제로 인해 노동자성 인정이 안 된다. 그래서 경기도가 지난해 9월 전국 최초로 플랫폼 배달노동자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것도 전국 최초인데, 조례만 만든 게 아니라 플랫폼 배달노동자, 특히 라이더 2000명을 대상으로 산재 보험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라이더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22.5%밖에 안 된다. 나머지 78%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는데도 산재보험 가입이 안 돼 있기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한다."
- 이 지사는 노동 현장에서 위법행위를 감독·단속하는 '노동경찰' 업무를 지자체에 중첩적으로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근로감독관으로 불리는 '노동경찰' 권한은 현재 고용노동부에만 있다. 그 권한을 지자체에 공유해달라는 이유가 뭔가?
"노동자의 권익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행정적으로 지자체에 노동 현장의 위법행위 단속 권한을 줘야 한다. 전국에 410만 개의 사업장이 있는데 사업장을 근로감독 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의) 감독관은 2,995명밖에 없다. 그들이 1년 동안 감독할 수 있는 사업장이 전체의 1.2%밖에 안 된다. 그럼 나머지 98.8% 사업장에는 산재예방을 할 수 있는 감독 권한이 영영 미치지 않는 것이다.
이천·용인 물류창고 화재사고 등 산업현장 사고로 노동자의 목숨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지방정부는 감독권한 부재라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경기도는 취약계층 노동권 보호와 노동현장 안전 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 간 '근로감독권한 공유'를 추진 중이다. 지방정부는 지역 현안에 밝고 종합행정이 가능해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을 강화할수록 더욱 촘촘한 노동감독이 이뤄질 수 있다."
- 최근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로 인해 얻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처음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오마이뉴스> 보도로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고, 노동국 '경기도노동권익센터'의 지원으로 산재 승인을 얻어냈다. 경기도노동권익센터가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경기도에 노동국이 있는데, 31개 시군 중에 몇 곳이나 노동 관련 부서가 있을까? 놀라운 것은 '과' 수준으로 있는 곳이 수원과 성남 2곳이고, '팀' 수준으로 있는 곳이 9곳이다. 나머지 시군에는 노동 부문을 맡은 직원이 한 명도 없다. 노동 취약계층이 본인의 권익을 주장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 노동국 직원들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산재예방 안전관리 점검반인 '노동안전 지킴이'를 지난해 10명에서 올해 104명으로 확대해서 31개 시군과 같이하려고 한다. 31개 시군에 수요조사를 하기 위해서 공문을 보내면 (노동 담당 부서가 없는) 20개 시군에서는 '이게 뭐야, 우리 업무 아님', 해버린다. 경기도 노동국이 만든 정책이 31개 시군에 녹아들어 가야 하는데 그 전달 체계가 없는 것이다. 그 역할을 노동권익센터가 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노동 인지 교육도 노동권익센터에서 하고 있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어떻게 되고 있나?
"경기도와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목표가 2,059명인데 100% 달성했다. 어려운 점은, 이것을 도뿐만 아니라 민간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민간 확산은 최고위층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설득 작업이 어렵다.
굉장히 의미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용인에 루터대학이 있다. 그 대학 청소노동자는 매년 계약을 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했다. 그런데 그 학교 재단에서 지난해 11월 6명의 청소노동자를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에도 독려를 많이 하는데, 잘 해주는 곳은 잘하지만 안 되는 곳은 안 된다. 역시 기관장의 의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취약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나?
"대리기사, 경비노동자들이 노동권 보호를 위해서 스스로 조직화를 할 수 없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의 조직화 사업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왕·과천·군포·안양 경비노동자 조합이 있다. 지금까지 91명의 임금이 체납됐더라. 지난해 취약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하면서 4억 6000만 원 정도의 체납된 임금을 다 해결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의왕·과천·군포·안양 지방의회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위한 조례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아파트 커뮤니티 안에서 경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장전 비슷한 선언도 했다. 작은 울림이지만 큰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뿌듯하더라."
- 경기도가 다른 지방정부보다 앞장서서 훌륭한 노동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원동력)는 무엇일까?
▲ 김규식 경기도 노동국장 |
ⓒ 이희훈 |
- 가장 보람이 있었던 사례는?
"지난해 배달 라이더의 산재 보험료 지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보건복지부) 사회보장협의회와 협의를 거쳐야 했다. 협의는 먼저 신청한 지자체 순서로 한다. 경기도가 예쁘다고 먼저 해주는 게 아니다. 우리 직원들이 협의회 담당 국장, 과장에게 계속 전화하고 만나서 얘기했더니, 자기들이 보기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정책이라면서, 이른바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를 해줬다.
정말 드라마틱한 게, 그 협의가 되어야 조례도 만들고, 올해 예산에도 반영되는데, 협의가 됐을 당시 (경기도의회에서) 2021년 예산 심의를 한창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조례와 예산이 함께 마련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안 됐다면 배달 라이더 산재 보험료 지원 사업은 올해 못하고 내년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진짜 노동국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 경기도 노동국장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노동국장을 해보니까, 노동존중의 가치는 정말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갈 방향이라는 것을 알겠더라.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만 노동존중의 메시지를 전달할 게 아니라 도내 31개 시군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어서 정말 대한민국이 노동이 존중받는 공정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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