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담병원 만든다며 '나가라' 통보..노모 매일 운다"
“아버지가 내쫓긴다는 이야기에 어머니마저 매일 울고 계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간간이 떨렸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구립 행복요양병원에 부친이 2년째 입원해 있는 A씨는 요즘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을 만들겠다며 지난달 8일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행복요양병원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설 연휴 직후인 오는 15일까지 자리를 빼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가족에겐 청천벽력이었다. A씨는“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고 뇌가 위축되는 병을 앓게 되면서 아기로 돌아간 상태”라고 했다. A씨 부친의 나이는 올해 82세. 병환이 깊어지면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연명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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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249명의 환자
A씨는행복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렸다고 했다. 구립으로 믿을 만 한 데다 시설이 깨끗하고 좋아 이곳은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나 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는 직접 찾아가 볼 수 없어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A씨는“서울시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을 만든다고 나가라고 한다니 올해 79세인 친정어머니가 매일 울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 나가면 길에서 돌아가실 것이 뻔한데, 자식 입장에서 어느 누가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겠다고 하겠냐”고 토로했다.
내쫓길 위기에 놓이자 행복요양병원에 부모님 등 가족이 입원해있는 보호자들은 모임을 결성했다. 보호자 대표회에 따르면 전체 262명의 환자 보호자 가운데 249명이 퇴원거부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모임 대표를 맡은현두수 대표는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계속적인 치료를 요구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며 “입원 환자들이 중증·노인 장애 환자들이기 때문에 퇴원 거부를 병원이 거부한다면 고발할 생각마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들은 “병상을 비우라”는 서울시 방침에 반발해 지난 8일부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현 대표는 “환자 60~70%가 치매·파킨슨 환자고, 장애등급 3급 이상인 어르신들로, 일반 요양병원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에선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지만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행복요양병원 환자들은 이곳에서 임종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로 환자들에게 이곳은 집과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선 생의 마지막을 보내려 온 집에서 이사를 나가라고 하는 것인데, 의사도 간병인도 없이 혼자 이사를 가라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옮긴다 하더라도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을 구하기 쉽지 않은 데다, 환자들의 특성상 의료진, 시설 등 환경이 바뀔 경우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악화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을 뵙지 못한 시간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며 하소연을 했다. 올해 89세인 모친이 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병원에선 면회가 금지됐다. 그는 “병원에선 ‘영상통화를 해달라’고 하는데, 어머니는 말씀을 못 하시고 눈도 보이지 않아 간병인이 겨우 영상통화로 모습을 보여주는 전부”라며 “이 모든 상황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이번 설엔 병원 길목에서 그리움을 담아 세배를 드리기로 했다. 현 대표는 “명절에 나가라고 하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한번 협의다운 협의를 해보지도 않고 이렇게 환자 보호자를 코로나 전담병원 청문 절차에서 배제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국민된 도리로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것은 해야 하지만 천륜과 인륜을 버리라는 것은 자식들은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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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환자 소산 연기, 지속 대화할 것"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10일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행복요양병원 환자들에 대해 내려진 소산(퇴원·전원) 조치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설 연휴 직후인 15일까지로 통보했던 환자 퇴원 조치를 미루고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놨다.
박 국장은 지난 10일 보호자회와의 면담을 언급하며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모임에서 2시간 이상 (대화를) 하면서 보호자들이 생각하는 부분, 병원 측의 입장도 듣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단순히 있다가 지나가는 병원이 아니라, 거의 사시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설명을 간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오는 15일에 모든 환자가 나간다는 부분은 자동으로 시간이 연기될 것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며 “많은 소통을 통해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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