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경제성 낮춰라"..백운규·채희봉 동시 개입 정황

하준호 2021. 2.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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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이 경제성 평가 과정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소관 부처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이 같은 사건에서 유사한 혐의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일 1심 판결이 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각각 유죄가 선고됐다.


채희봉 개입 정황…본인은 "안정성 차원 당연한 결정"
10일 산업부와 한수원 등에 대한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채 전 비서관은 2018년 4월경 당초 2022년까지 가동할 예정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할 당시 산업부 박모 에너지정책실장에게 “월성 원전의 즉시 중단을 위해 경제성을 낮추도록 한수원에 요구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다만, 채 전 비서관은 지난해 10월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안전성 차원에서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가동 중단은 합리적이고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左),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右, 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백 전 장관도 월성 원전 1호기의 한시적 가동 방안을 보고한 산업부 담당 직원을 질책하며 “즉시 가동을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검찰이 확보한 진술 내용이다. 이미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 중 일부는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 조사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의 핵심 변수인 이용률과 판매단가를 낮추는 과정에 백 전 장관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백 전 장관은 “지시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9일 이 같은 백 전 장관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백운규에 배임교사죄 적용 검토
영장 기각 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정치 수사를 중단하라”고 연일 검찰을 압박하고 있지만,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의 동시 압박 정황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청와대를 겨누는 검찰의 칼끝까진 틀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한수원의 모회사가 상장사인 한국전력인 점을 감안해 백 전 장관에게 배임교사죄 적용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월성 원전 1호기를 2020년까지 가동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도록 하면서도 세금을 통한 민간 보상을 피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논리에서다.

2017년 8월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7 산업통산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핵심정책 토의'에서 백운규(앞주루 가운데)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은경(앞줄 오른쪽) 당시 환경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백운규 ·김은경 전 장관을 제외한 김현미(앞줄 왼쪽)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사진 속 다른 인물들은 이 기사와 무관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환경부 때처럼 '영장 기각=무죄' 단정 못 해"
법조계 일각에선 법원이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라고 적시한 만큼 본안 심리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이 영장 기각과 무관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때 실무라인이었던 산업부 공무원 일부가 구속된 상황에서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실무진에게 떠넘길 순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법조계 인사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꼭 본안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란 법은 없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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