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 희망퇴직 대상 됐나"..업계 1위 하나투어 우울한 명절

손민호 2021. 2. 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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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안 좋은 생각만 한다.… 왜 나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나? 매일 미래의 불안함에 대한 반복적 꿈. 아이들 생각하면 살고 싶다가도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퇴사 압박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다. 다시 잠을 청해본다. 꿈에서는 내 인생이 행복하길 빈다.’
8일 새벽 하나투어 직원만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앱에 등록된 게시물이다. 이 게시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같이 힘내요. 나쁜 생각하지 말아요.’ ‘동료로서 부탁하는 건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뿐. 본인을 조금 더 인정하고 아껴주시길.’ ‘혼자가 아니에요. 1000명 넘는 동료가 있잖아요.’

여행사 부문 브랜드 파워 15년 연속 1위, 시가 총액 8573억 원(2월 9일 현재), 연 매출 7632억 원(2019년). 여행업계 부동의 1위 하나투어가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회사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어서다. 하나투어 최초의 인력 감축 시도에 2300명 직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회사 측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나, 직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블라인드’ 같은 모바일 앱에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째, 국내 1위 여행사의 우울한 설 명절 분위기를 전한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하나투어 실적. 2020년 매출이 2019년의 7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눈물과 분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하나투어 관련 게시글. 회사와 사장 이름은 가렸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하나투어 직원이 올린 글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홈페이지 캡처]

‘소속 직원보다 더 많은 수백 개가 넘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그 가족, 그리고 해외에서 코로나 종식과 여행업 정상화를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가이드 분과 현지 직원의 희망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 ‘대상자를 분명히 해 퇴직 합의서 작성 요구. 사회 통념상 ’권고사직‘에 해당. 퇴직 희망자를 대상으로 수요 조사 차원이며 정해진 방식과 규모 없다는 해명. 그러나 일방적인 통고 전까지 퇴직 의사를 밝힌 적 없는 수많은 대상자들.’
하나투어가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위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9일 현재 확인한 관련 게시글은 세 건이다. 회사 이름은 지워졌지만 ‘1위 여행사’ ‘국내 최대 여행사’ ‘직원 2300명’ 같은 표현에서 이 회사가 하나투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용은 비슷하다. 경영진의 무책임을 비난하고 희망퇴직의 부당함을 알린다. 이미 장기간 이어진 무급휴직으로 인한 생활고와 퇴직 이후 생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보인다.

‘코로나로 인한 수익 악화로 포장한 후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말도 안 되는 졸속한 기준으로 사지에 내모는 하나투어가 정말 밉네요.’ ‘저희 부부는 구조조정 명단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였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여야 하나, 꼭 부부를 둘 다 명단에 올렸어야 했나, 화가 남과 동시에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수입이 전무하였기에 고심 끝에 위로금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위 인용문은 하나투어 직원만 접속할 수 있는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블라인드에는 인력감축에 항의하는 글 수십 건이 게시됐다. 내부 직원만 볼 수 있는 글이어서 국민청원 게시글보다 표현이 강하다. 게시글에서 희망퇴직, 권고사직, 구조조정이 뒤섞여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영진이 직원들과 회사 방침을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아 발생하는 혼란이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하나투어는 지금의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나투어 “구조조정 아니다”

국내 1위 여행사 하나투어가 희망퇴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회사는 조직 효율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직원들은 퇴사를 강요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하나투어 본사 건물. 하나투어는 자금 확보를 위해 본사 건물을 비롯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하나투어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려면 3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 11월 13일 하나투어는 내부통신망에 ‘무급휴직 공지문’을 올렸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11월로 끝나니 12월부터 4개월간 직원 2300명 중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하겠다는 발표였다. 여행업계에서는 하나투어가 인원 감축에 돌입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으나, 당시 하나투어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부 지원금이 끊겨도 일단 4개월은 버티겠다는 뜻이다. 무급휴직이 끝나는 2021년 4월부터는 상황에 따라 경영방침을 세우겠다.’

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 연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21년 1월 15일. 하나투어 경영진은 부문별 조직 효율화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부문별 조직 효휼화. 현재 진행되는 희망퇴직의 다른 말이다. 이 희망퇴직의 시점이 오는 4월 1일이다. 경영진 결정 이후로 여행업계에 알려진 하나투어의 방침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7개 부문별로 필수 근무자와 희망퇴직 대상자를 선정한다 ②희망퇴직 대상자는 부분별 면담을 통해 합의서를 작성한다 ③퇴직자에겐 근무 기간에 따라 위로금을 지급한다. 5년 차 이하는 4개월 치 임금, 6년 차 이상 10년 차 이하는 5개월 치 임금, 11년 차 이상은 6개월 치 임금을 위로금으로 준다 ④부문별로 희망퇴직자 명단을 1월 31일까지 작성한다 ⑤전체 퇴직자 규모는 1000명 정도다.

위 방침은 그러나 하나투어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은 내용이다. 하나투어 직원이 여러 게시판에 올린 글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한 결과다. 하나투어에서 돌아온 공식 답변은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되는 인력 감축은 구조조정과 관계가 없다. 부문별로 조직 효율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회사 차원에서 희망퇴직자 기준과 전체 규모를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직원들의 하소연과는 거리가 있다. 희망퇴직은 말 그대로 직원이 퇴직을 희망하는 것인데, 직원 대부분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대상자로 결정된 상태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직원은 희망퇴직인지 권고사직인지, 나아가 구조조정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투어 노동조합이 집행부원을 모집한다는 알림. 하나투어 직원 단톡방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관련 대화창 캡처]

이달 들어 일부 직원 중심으로 노동조합도 꾸려졌다. ‘하나투어 노동조합을 2월 3일 설립했으며 집행부원을 모집한다’는 알림이 직원 단톡방을 통해 퍼지는 중이다. 1993년 창립 이래 하나투어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하나투어를 지켜보는 여행업계의 시선은 어둡다. 익명을 요구한 여행업계 임원의 말을 전한다.

“하나투어의 현재 상황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 여행업계의 암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른 여행사와 수많은 협력업체, 나아가 여행업계에 미칠 파급 효과는 예상하기 힘들다.”

손민호·최승표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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