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자칫 나라 뒤집힌다"..선거 앞두고 불붙은 'MB 사찰'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10년도 더 지난 이명박(MB)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의 사찰 의혹을 정치권 핵심 이슈로 끌어올리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을 포함한 광범위한 사찰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사찰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이 정보 공개 신청을 통해 입수한 문서가 이따금씩 공개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 8일 한 언론이 "18대 여야 국회의원 299명 모두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가 문건 형태로 국정원에 보관돼 있으며, 문건의 존재를 직접 확인했다"는 국정원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일이 커졌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문건 작성 시점은 MB 정부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인 2009년 9월 이후로 추정되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여야를 망라해 국정 방해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지시한 걸로 보인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는 "언론에 보도된 동향 파악 문건의 전체 목록 및 내용을 확인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MB 정부가 사찰 문건을 작성했다는 걸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1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사찰 기록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사찰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는 당장 정확히 확인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입장을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당시 국정원의 사찰은 MB 정부 청와대의 지시를 통해 이뤄졌고, 관련 문건을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법적 절차에 따른 공식 요청이 있을 때까지는 사찰 문건을 열어보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라고도 했다.
Q : 사찰 대상이 방대하다고 알려져 있다.
A : “최소한 18대 국회 여야 의원 299명은 있다. 대상이 어디까지 있는지는 나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추정하는 것은 있다. 일부에서 2만 건이니 하는데, 그건 추정일뿐이다. 다만 적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Q : 국정원의 사찰이 MB 청와대의 지시였나.
A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김승환 전북 교육감 등이 대법원을 통해 본인의 사찰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그 결과로 실제 문건을 받았다. 그 문건에 ‘청와대의 지시로 사찰이 이뤄졌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Q : 국정원에서 해당 문건을 확인한 상태인가.
A : “MB 청와대 지시로 사찰이 이뤄졌고, 해당 문건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다만 아직은 실제 문건을 모두 꺼내 확인해본 상태는 아니다.”
Q : 사찰 문건을 공개할 계획인가.
A : “사찰 대상자가 법에 의거해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다. 아니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하면 국정원은 법적 절차에 따라 공개를 하게 돼 있다. 공개가 결정되면 당사자에게 실제 사찰문건이 전달된다.”
현재 국회 정보위원 12명 중 8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여당 단독으로 사찰 문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또 사찰 대상이 됐던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21대 국회의 현직 의원은 29명이다. 전직 의원들도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상당히 휘발성이 큰 사건이 될 것"이라며 "대단히 복잡한 사안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국정원'이 이번 사안에 불을 붙였다면 이를 정치 쟁점화 하는 역할은 민주당이 맡고 있다. 정보위원이기도 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사찰 내용을 국정원이 스스로 밝힐 것을 촉구하는 정보위 차원의 의결이 추진중이고, 정보 공개 청구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자칫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는 일”이라며 “이런 사안에 대해 어떻게 공개 청구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Q :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 “최소 900명 이상이 사찰 대상에 들어간 사안이다. 더구나 국가의 정보기관이 국회의원을 사찰한 사건이다. 이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Q : 공개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A : “일단 정보위 차원의 공개 요청을 해야 한다. 다만 이건 ‘일단’이다. 추후 사찰의 범위와 배경 등이 확인될 경우 필요하다면 당연히 전체 당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Q : MB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A :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는 것이 우선이지만, 만약 MB의 지시로 인해 국정원의 사찰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될 경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추가 범죄 사실로 확대될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16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해당 문건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문건 공개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건이 있는지 등은 정확히 밝힐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사찰의 배경과 추정되는 대상 등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파악한 선에서 보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야권은 선거를 불과 두 달 남긴 시점에서 논란이 불거진 데에 주목한다. MB측 사정에 밝은 야권 인사는 중앙일보에 “굳이 이 시점에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 시도하는 걸 보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 출마한 야권의 후보들, 친박계가 사실상 몰락한 뒤 국민의힘의 요직에 포진한 친이계를 겨냥한 것 아니냐"고 했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와 관련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는 MB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사회특보 등을 지낸 대표적 ‘MB맨’으로 분류된다. 그는 국정원 사찰 문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2009년에는 청와대에서 정치적 사안을 총괄하는 정무수석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오세훈 후보도 굳이 따지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MB쪽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박 교수는 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꺼내든 정치공세용 카드가 아닌가 싶다"며 "시민들은 이러한 선거방식에 동의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MB측 관계자는 "역대 모든 정부의 국정원이 해왔던 정보 수집 활동임에도 MB 국정원에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씌우려 시도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역대 국정원들이 쌓아온 이른바 '존안자료' 정보를 마치 MB정부만 수집한 것 처럼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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