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 폐지한 네이버와 그의 공범들
[하성태 기자]
'클릭을 유발하는 제목 + 눈길 끄는 사진 + 간단명료한 내용'의 기사를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 자주, 많이 내는 것.
지난 2015년 1월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조선닷컴>의 '검색 아르바이트 매뉴얼'의 일부다. 여기까진 독자 이목을 끄려는 '전략'의 일부라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종류는 어떤가. "김희애 눈물(네이버) + 김희애 폭풍오열(다음) → 김희애 폭풍오열 눈물"처럼 기사 제목을 달라는 구체적인 지시에 앞선 이런 지침은 아연실색할 만하지 않은가.
기사 작성 출고까지 합해 1개당 평균 10분을 넘지 않아야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음.
평균적으로 길지 않은 인터넷 기사의 아이템 선정부터 기사 작성, 출고 및 포털 출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기자의 바이라인은 대개 '온라인 편집부' 등으로 표기되며 누가 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기사들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아니 매일매일 포털 뉴스면을 뒤덮어왔다.
공생의 균열
다 실시간 검색어(실검) 기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10분 안에 완성되는 어뷰징 기사의 근간이, '복(사)붙(여넣기)'의 주요한 취재원 현장이자 취재원이, 바로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였다. 대다수 매체와 포털은 명백한 공생관계였고, 서로의 수익을 불리는 수단으로 공생관계를 이어갔다. 사회 곳곳에 죽비를 내리는 언론이 실검의 폐해들을 애써 눈 감아온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언론인들이 동업자 의식을 발휘하며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어뷰징'과 공생의 현장은 급기야 세월호 참사 보도에까지 활용됐다. 참다못한 독자와 시민들이 '기레기'란 멸칭을 선사한 계기 역시 실검과 어뷰징 기사의 '환상의 조합'이 이뤄낸 결과였다. 기자들은 양대 포털 중 확연하게 우위를 점했던 네이버에 집착했다.
이 네이버 실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005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16년 만이다. 지난 4일 네이버는 "풍부한 정보 속에서 능동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소비하고 싶은 커다란 트렌드 변화에 맞춰, 2월 25일 서비스를 종료합니다"라며 "모바일 네이버홈의 '검색차트' 판도 함께 종료됩니다"라고 밝혔다. 경쟁업체 서비스인 다음은 2020년 2월 실시간 검색어를 폐지한 바 있다.
여전히 활발한 어뷰징의 원천소스가 사라지는 만큼 즉각 포털을 둘러싼 온라인 기사의 향방과 각 언론사의 대응이 어떻게 변화할지 업계의 촉각이 곤두서는 모양새다. 실검 폐지로 인해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온라인 기사(가 클릭을 유도하는 온라인 광고)로 인한 수익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언론사들의 불편사항(?)이나 향후 언론사들의 대응과는 별개로 15년 넘게 장기집권한 '실시간 검색어'가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을 좀 더 살펴보자.
▲ 네이버 분당 사옥 |
ⓒ 네이버 |
해당 (온라인 이벤트) 업체는 특정 시간대 사이트 가입 고객들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그리고 미션을 수행한 가입자 300명에게 커피 기프티콘 등을 선사했다. 이 기업이 시행한 이벤트의 놀라운 점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등에 이벤트 기업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포털 검색을 통해 정답을 찾아야 하므로, 순식간에 수천 명이 해당 이벤트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 등을 검색한다. 이는 실시간 검색어에 반영돼 검색어 순위, 연관검색어 등에 오를 수 있다. 이것은 매크로 등의 조작이 아니라, 순수한 이벤트를 통한 결과였다.
(이욱희, <고객은 이런 뉴스를 검색한다> 중에서)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다. 소위 '실검 마케팅'이라고 명명된. 상품을 홍보하고 싶은 기업이 갑이라면, 상품 홍보를 위해 동원되는 온라인 마케팅 업체는 을이다. 포털은 실검이라는 홍보의 목적이나 수단을 두루 갖춘 하나의 거대 그물망이다.
포털, 특히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뿐만 아니라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업체들은 수백, 수천 개의 아이디를 가지고 마치 홍보가 아닌 것 같은 홍보 게시글을 카페와 블로그 등에 흩뿌린다. 1회성 이벤트라 여겼다면 오산이다.
바이럴 마케팅엔 파워 블로거나 인플루언서 등이 동원돼 왔다. 이 거대한 그물망에서, 소비자들은 갑이었을까 을이었을까? 소비의 주체였을까 낚시의 대상이었을까?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매일 접속하는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기능이 없었다면 과도하게 성장하지 않았을 시장 중 하나요, 쉬쉬하면서도 수년간 지적돼 왔던 문제다. 정치권에서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실검을 둘러싼 진영 간 세력 대결이 벌어지면서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보수야당이 훨씬 적극적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총공'이라 불리는 실시간 검색어 올리기 운동을 두고 같은 해 9월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조국 실검 조작 논란이 있었던 지난 8월 27일 전후 네이버 등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비교해보면 유독 네이버에서만 '조국 힘내세요'라는 키워드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실이 확인됐다"라며 "여론 조작행위가 상당히 의심된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 의원은 2019년 9월 1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오후 3시 기준 네이버 실검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실시간 검색어 1위 19개 중 15개(78.9%)가 기업의 상품 홍보를 위한 초성퀴즈 이벤트였고, 분석 대상 전체 380개의 키워드 중 25.3%(96개)가 기업 광고로 집계됐다. 놀라운, 그러나 예상됐던 결과였다.
김 의원이 애초 집계를 통해 기대했던 것은 실시간 검색어가 정치나 사회 분야 관련 여론 조작 행위에 이용되는 사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던 듯하다. 집계 결과, 포털 검색어가 기업 광고로 점철돼 있었다. 의도치 않게 '진실'을 가리키고 있던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포털별 동시간대 실검 내 기업광고가 네이버 9개, 다음·네이트 0개, 줌 1개로 확인된 경우도 있었다"라며 "네이버 실검에 광고 키워드가 압도적으로 많은 점을 고려할 때 네이버가 실검을 상업적 목적에 치중해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국민이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포털의 실검 운영 방식에 따라 국민의 관심사가 왜곡돼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 같다. 기업에 의한 시장 왜곡이 문제인지,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여론 환기 혹은 여론 왜곡이 더 문제인지. 또 그런 왜곡에 동원되는 이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얼마나 분리할 수 있는지.
사용자들
한국언론재단이 지난 2018년 조사한 결과, 전 국민의 69.5%가 포털 이용 시 실검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또 2020년 한 유튜버가 실제 자신의 구독자들을 동원, 실검 올리기에 동참한 인원을 블로그 방문자와 비교한 결과를 공유했다. 동일 시점에 약 5만~6만 명이 동일 단어를 검색하면 네이버 검색어 순위 1~2위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상위 몇 퍼센트의 포털 댓글 게시자들이 댓글 여론을 주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라고 다를까. 매크로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본과 인력만 충분하다면 실시간 검색어를 조작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해진다. 실제 박근혜 정부나 조국 사태 당시 각 진영 간 '총공'이 그 증거다.
그렇게 기업은, 업체들은, 언론은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해 수익을 올렸다. 여론은 실검에 휘둘렸다. 실시간 검색어는 매일의 여론 환기용 '떡밥'(물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를 뜻하는 낚시 용어)을 제시했고, 언론도, 포털 소비자들도 그 '떡밥'을 쫓았다.
(포털 소비자들은)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에 대해서는 비교적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평균 3.08점/5점 척도). 연령별 만족도를 비교해 보면 20대(3.24점)가 가장 높았고, 30대(3.11점), 40대(3.05점), 그리고 50대(2.92점) 순으로 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 측면으로는 적시성(최신의 정보를 제공), 유용성(정보를 빠르고 쉽게 탐색), 즐거움(검색 과정의 즐거움), 신뢰성(믿을 만한 정보의 제공) 등으로 나타났고, 부정적 측면으로는 조작된 여론 형성, 상업적 악용, 개인정보침해, 음란성 등으로 나타났다.
만족도도 만족도지만 긍정적 측면을 평가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적시성과 유용성 외에도 즐거움과 신뢰성이 순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어떤가. 소비자들 역시 포털이, 기업이, 언론이 떠먹여 주는 매일의 떡밥을 믿고 즐겼다는 얘기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는 사이, 실검을 통한 어뷰징 기사로 인해 고통을 받는 피해자들이 늘어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악플'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에 다다른 설리나 구하라라 할 수 있다. 실검에서 비롯된 끊임없이 어뷰징 기사, 그 기사에 달린 악플의 공세는 피해자들에게는 어찌 손댈 수 없는 가히 무한지옥으로 받아들여졌을 터다.
그 외에도 오보나 가짜뉴스가 실검에 오른 이후 쏟아지는 어뷰징 기사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실검을 통해 이익을 보고 재미를 즐긴 이들 모두가 궁극적인 가해자들이자 일종의 공범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정의 가능성
매일 네이버를 방문하는 3천만 명의 사용자가 입력하는 다양한 검색 질의어는 '급상승검색어'를 통해 정보로 재탄생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재난 상황을 알려주거나 관심있던 기업의 채용 소식을 챙겨주고, 한때 좋아했던 스타의 근황으로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며 사용자의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꽤 낭만적이면서도 자기기만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네이버는 " '사용자로부터 받은 검색어 데이터는 다시 사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치있는 정보로 돌려드리겠다'는 '급상승검색어'의 취지는 '데이터랩'을 통해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폐지 안내문 |
ⓒ 네이버 |
네이버가 하필 보궐선거를 두 달여 앞둔 시점에 실검 폐지를 선언한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비단 정치적 부담이 전부일 리 없다. 그간 숱한 비난에도 실검 정책을 꿋꿋하게 이어왔던 네이버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배경보다 중요한 것은 네이버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그 어떤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이리라. 언론이, 기업이, 포털이 실검을 둘러싼 이익구조를 포기하며 일말의 자정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 말이다. 소비자들도 더 이상 포털에서 매일의 '떡밥'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이미 많은 '댓글러'들이 유튜브로 옮겨 간 지 오래라는 불편한 진실은 잠시 잊자. 이번 네이버 폐지 결정으로 인해 실검을 밥 먹듯 일상적으로 소비해온 이들과 그 욕구에 부응했던 이들이 앞으론 진짜 정보, 좋은 기사를 찾아 헤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언론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찬성" 61.8% - 오마이뉴스
-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상담사가 이 말 안 하면 벌어지는 일
- '기자님'으로 시작하는 메일, 또 악플인가 싶었는데
- 계엄군 묘비, 41년 만에 '전사'에서 '순직'으로
- 제주도에 쌓인 의문의 상자들... 섬이 위험하다
- 청와대 명절선물, 하나가 빠졌다
- 학교-아파트 주차대란, 이들이 찾은 놀라운 해법
- [오마이포토2021] 백신 접종 임박, 실제 같은 모의 훈련 실시
- 김은경 질책한 재판부 "명백히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
- 조선 '백선엽 안내판' 보도에... 보훈처·민족문제연구소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