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발언' 모리 쓸어버리겠다? 빗자루 시위대까지 뜬 일본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 드러난 것" 지적도
스폰서 기업 '불매운동' 우려..조직위 12일 회의
7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건물 앞에 빗자루와 푯말을 든 시민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모리 아웃(OUT)', '침묵하지 않겠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2시간여 건물을 둘러싸고 시위를 했다. 지난 3일 JOC 임시 평의원회에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 "여성은 경쟁심이 강하다" 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이날 몇몇 시민들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모리 위원장이 4일 사과 기자회견에서 "내가 대형 쓰레기라면, 쓸어버리면 되지 않나"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쓸어버리겠다"는 뜻이 담겼다.
모리 회장이 성차별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서명 운동에는 9일 오후 5시까지 14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한 이들 중 약 390명은 모리 회장의 발언에 항의하며 사퇴를 통보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9일 보도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 중 2명도 모리 회장의 발언을 이유로 사퇴했다. 조직위에는 최근 닷새 동안 약 350통의 전화와 약 4200통의 메일이 도착했는데, 이 가운데 90%가 모리 회장의 발언에 대한 항의 및 의견 제시였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모리 회장 발언의 여파가 큰 것은 이번 일이 한 사람의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드러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온라인 서명을 주도한 이들은 "(모리 회장의 발언은) '양성평등 추진'이라는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가진 책무에 반하는, 여성에 대해 편견, 멸시, 차별로 용인할 수 없다"고 적었다.
46년생 남성인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도 8일 기자회견에서 모리 회장의 발언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 사회라는 것은 그런 본심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다양성에 대한 배려는 일본의 과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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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옹호' 배후에는 자민당 파벌 정치
여론은 악화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모리 회장의 사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집권 자민당의 실세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 확실히 해줬으면 한다"며 모리 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81세의 니카이 간사장은 이어 자원봉사자들의 사퇴에 대해 "즉흥적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퇴하고 싶다면,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 된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도 모리 회장의 사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사임 여부는) 조직위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발을 뺐다.
도쿄신문은 9일자에서 이런 정치권의 '모리 회장 감싸기' 이면에는 모리 회장이 자민당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 파'를 이끌었던 '전직 총리'라는 배경이 있다고 해석했다. 10년 전 정계를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내 영향력이 큰 만큼, 누구도 "사퇴하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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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기업들, '불매운동' 걱정
그러나 모리 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두려워하는 것은 올림픽 스폰서 기업들의 이탈이다. 스폰서 기업들은 이번 사태가 자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9일에는 스폰서 기업들이 연이어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사히맥주는 "모리 회장의 발언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올림픽·패럴림픽의 정신에 비추어 잘못된 표현이며,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생명도 "이번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면서 "조직위원회에 이런 취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하자 조직위원회는 이사와 평의원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 회의를 오는 12일쯤 열고 모리 회장 발언에 대한 대응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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