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 끊어 K방역 지키나" 1년간 노모 면회 못한 자식의 한
'세배 없는 설'이 다가왔다. 요양원 입소자는 17만여명, 요양병원 입원환자는 35만여명이다. 약 50만명의 노인이 자식이나 손자 얼굴도 못 보고, 세배도 못 받고 쓸쓸한 정초를 맞게 된다. 지난해 추석에도 그랬다. 자식들도 부모님을 만난 지 1년이 되면서 가슴에 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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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 면회 허용 국민청원
급기야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랐다. 제목은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요양병원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다. 뇌졸중 어머니를 그리는 사연이 절절하다.
"어머니는 뇌졸중에다 고령이셔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중략) 일반 병원 입원환자는 보호자 1명이 간병할 수 있고, 요양병원은 직원과 요양보호사가 자유롭게 출퇴근합니다. (중략) 왜 요양병원 환자만 이토록 철저하고 강력하게 면회를 금지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고령의 요양병원 환자가 코로나에 취약해서 감염되면 사망률이 높아지고, K방역에 문제가 될까 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의구심이 듭니다. 아무리 백번 양보해도 1년 넘게 부모님을 못 보게 하는 것은 기본권을 넘어 천륜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무조건 면회를 막을 게 아니라 방역수칙을 만들어 면회할 수 있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면회가 가능하다면 방호복이나 방독면을 착용하고서라도 따를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식사 수발을 해서 밥이라도 제대로 드실 수 있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그의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게 됐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8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요양병원·요양원 면회 금지 조치를 실시하고 영상통화를 이용한 면회를 권고한다"고 못 박았다. 면회 금지다. 유리창 너머로 비대면 면회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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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닌 고려장 같다"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85)를 그리는 아들 성모(59)씨의 애절한 사부곡(思父曲)이다. 성씨는 보건 당국이 코로나 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의 행복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어렵게 6개월 전 여기에 입원했다. 성씨는 "1년 전 대면 면회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 유리창 밖에서 한두 번 뵀을 뿐"이라며 "화상통화로 하라는데, 그래 봤자 말을 못 하시는데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아버지는 혈관성 치매가 찾아왔다고 한다. 성씨는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가 '맑아지지 않는구나'라고 느낀다. 점점 나빠지는 듯하다"고 말한다. 성씨는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고려장 보낸 거 같아 너무 불편하다"며 "그런 와중에 정부가 강제로 나가라고 하니, 그랬다가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이게 K방역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성씨는 "설에 세배할 수 없다. 요양병원 근처로 가서 전화라도 하면 내 맘이라도 편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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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음성이면 1명 가능
외국은 어떨까.
독일의 바이에른주는 지난해 12월 이런 조치를 시행한다. 신속항원검사(간편검사)로 2일 이내, 핵산증폭검사(PCR·일반적인 코로나 검사)로 3일 이내 음성판정을 받은 사람은 요양시설에 면회할 수 있다. 1명만 가능하다. 전화 예약 후 FFP2 마스크(우리의 KF94)를 쓰고 면회할 수 있다. 이 주의 뉘른베르크의 한 요양원은 하루 한 명 면회를 허용한다. 48시간 이내 발급한 코로나 음성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물론 면회를 허용하긴 하지만 가급적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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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2명까지 5~10분 허용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2월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면회를 제한하다가 10월 완화했다. 최소한 인원으로 제한하고 최근 2주간 발열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 환기가 잘 되는 장소에서만 면회할 수 있다. 삿포르시는 지난해 5월 온라인 면회만 허용했는데 직접 면회를 못 해 치매가 악화하는 경우가 나왔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방호복을 입고 30분 면회하는 것을 허용했다. 방호복 한 벌이 10만엔(100만원)이어서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오다와라시의 한 요양원은 3m 거리를 두고 5분간 만나도록 허용한다. 홋카이도의 한 요양원은 2명으로 제한하고 10분 면회를 허용한다. 체온을 잰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비상구나 현관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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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음성확인 쉽지만...
한국은 지난해 12월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전국에 임시선별진료소를 깔고 아무나 무료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독일 바이에른주처럼 음성확인서를 지참한 사람에 한해 설 연휴만이라도 면회를 허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그런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일부 요양병원·요양시설이 꾀를 내 대면 면회에 버금가는 비대면 면회를 시행한다. 울산광역시 이손요양병원은 비닐 면회실을 마련했다. 비닐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댈 수 있고 세배를 할 수도 있다. 6~14일 하루 20개 가족 신청을 받았더니 하루만에 마감됐다. 가족 4명까지 가능하다. 차에 타고 대기하다 15분간 면회한다. 면회가 끝나면 비닐 면회실을 소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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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면회실서 세배한 딸
곽나률(63)씨 부부는 6일 오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중인 아버지(89)를 면회했다. 입원 후 한 달 반만이다. 이날 아침 일찍 서둘러 부산에서 1시간 넘게 달려왔다. 부부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서 휠체어에 간신히 앉은 아버지에게 세배했다.
곽씨는 "불편한 게 없느냐. 식사는 잘하시느냐"고 물었다. 세배하면서 "식사 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치매기가 있다고 한다. 자꾸 "돈 가 온나(돈 달라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말했고, 곽씨는 그걸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곽씨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식빵, 중풍에 좋다는 사과 등의 간식을 가져갔고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곽씨는 "요양병원 면회 금지라고 해서 아버지를 못 뵐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배를 올리게 해준 병원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손요양병원 손덕현 원장은 "입원한 지 1년 반 넘은 78세 뇌경색 환자에게 회진을 갔더니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큰아들을보고 싶다는 표현이다. 어떤 환자는 사회복지사와 가족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병실 TV에서 설 소식을 듣고 자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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