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업부 직원 "월성 경제성 조작, 백운규가 지시했다"

강광우 2021. 2.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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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 靑 수사 진행"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검찰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로부터 "경제성 평가의 핵심 변수인 이용률과 판매단가를 낮추는 과정에 백운규 장관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검찰은 이에 법원의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수사를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제성 변수 낮춰 잡는 과정서 백운규 지시나 관여 있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는 8일 백 전 장관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영장 청구 사유 중 하나로 2018년 당시 산업부 원전 정책 담당 공무원들의 이 같은 진술 내용을 제시했다고 한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용역을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2018년 5월 3일 최초 분석에서 월성 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을 2772억원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산업부,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같은 해 6월 11일 최종 평가에선 경제성을 -91억원으로 결론지었다. 경제성 평가의 핵심 변수인 이용률(85%→60%)과 판매단가(1kWh당 평균 63.11원→51.52원)를 회의를 거칠수록 낮춘 탓에 '흑자' 원전이 '적자' 원전으로 뒤바뀐 것이다.

검찰이 이 같은 경제성 평가의 핵심 수치가 바뀐 과정을 캐묻자 산업부 공무원 중 일부가 "백 전 장관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들은 "백 전 장관에게 이 과정을 일일이 보고했다"는 진술도 했다고 한다.

감사원 감사 직전 530개 파일을 삭제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된 3명 중 정모 과장은 앞서 감사원 감사에서 2018년 4월 백 전 장관에게 월성 1호기를 원자력안전위원회의에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때까지 약 2년 반동안 계속 가동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백 전 장관은 정 과장을 크게 질책하며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월성 1호기 경제성이 낮아지는 과정에서 조작 정황을 알 수 있는 다수의 증거물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산업부 공무원들은 2019년 12월 월성 1호기 관련 파일을 삭제할 때 백 전 장관에게 보고하진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감사원 감사 당시 백 전 장관은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1년 3개월여가 지났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8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들이 백 전 장관의 즉각 구속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백운규 "지시한 적 없었고, 보고 받은 기억도 없다"
법원은 9일 새벽 검찰이 백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세용 대전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이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백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변수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그 과정을 일일이 보고했다고 진술한 데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며 일부는 해외 출장 중인 시점이라 알리바이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백 전 장관은 영장심사에 출석하면서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국정과제였다"며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절차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백 전 장관의 변호인은 "검찰의 직권남용 등 법리 구성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특정이나 구체적 행위 분담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피해자를 한수원과 한수원 관계자 등으로 특정했는데, 경제성 평가는 한수원이 지정한 삼덕회계법인이 담당해 한수원은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산업부가 한수원을 압박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끌어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는 한수원이 이사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일 때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접촉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또 산업부 공무원들이 문건 530건을 삭제할 때도 백 전 장관이 관련자들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추가로 밝혀냈다.

백 전 장관 측은 "그런 사실은 있지만, 범죄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장관직을 그만둔 상태에서 감사원이 소명서, 답변서 등을 요구하자 실무자들과 통화할 목적이었을 뿐 증거인멸 목적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실형·법정구속 김은경 전 장관과 유사…끝까지 봐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등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검찰은 이번 사건 주요 피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했지만 백 전 장관 등 윗선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만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 청와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짤막한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검찰은 향후 법리를 다듬어 백 전 장관에 대한 기소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이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당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이날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만큼 최종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직권남용죄는 해당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그 권한을 위법 부당하게 사용해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됐다는 3가지가 인정될 때 유죄가 된다"며 "백 전 장관 사건이 박 전 장관 사건과 유사하기 때문에 범죄 성립 여부는 끝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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