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명절선물, 하나가 빠졌다
[홍수열 기자]
어김없이 때가 되면 명절이 돌아오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명절이 끝난 후에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가 명절이 지나갔음을 을씨년스럽게 보여준다. 언제까지 이런 흥청망청 명절문화를 겪어야 할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하고,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해서 매년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의 소비문화는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설 선물로 집에 배달된 과일세트를 보고 절망에 빠졌다. 기존에는 과일 아래에만 플라스틱 받침대가 있었는데 이번에 배달된 선물세트엔 과일 위까지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다. 설 선물세트에 친환경 바람이 분다고 기업들의 보도자료를 받아서 언론들이 쓰지만, 정작 명절 선물의 환경성은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5일 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선물 포장 간소화에 대한 청원을 올렸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명절 선물 과대포장에 대해 경각심을 알리고, 간소화한 선물세트 모델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거대한 허례허식 문화에 경종을 울려달라는 것이다.
선물세트의 가격 = 내용값 + 포장값?
선물(膳物)의 어원은 제상에 올리는 고기다. 예로부터 제사가 끝나면 제사에 쓰인 음식은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가장 신선하고 좋은 것을 사용한다.
선물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선물을 통해서 물질의 분배가 이뤄지고, 교류를 통해서 이웃 간의 갈등이 완화된다.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간, 지역 간, 국가 간에도 선물의 교환을 통해서 서로의 친교를 확인하고 다진다.
그렇지만 선물 문화가 왜곡되면 자신의 부와 위신을 내세우는 허례허식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한다. 잘못된 결혼예물 문화는 가정의 기둥뿌리를 뽑아버린다. 마음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남의 마음을 사고자 한다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어 부패를 조장한다. 선물은 마음을 담은 물질의 교환이지만 선을 넘으면 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사치가 되고, 마음을 돈으로 사는 추악한 뇌물이 되고, 환경을 파괴하는 물질의 낭비가 된다.
동아시아 문화는 예(禮)라는 형식과 공동체 문화가 중시되면서 남의 눈을 의식한 보여주기 문화가 과도하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질이 풍요로워지면서 화려한 과대포장 문화가 심각하다. 기업들의 마케팅까지 결합하여 배보다 큰 배꼽이 범람한다.
한국은 특히 설날과 추석 명절마다 명절 선물로 인한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가공식품 기준 선물세트 시장 규모는 1조 2천억 원이고, 해마다 10%씩 성장하고 있다.
선물세트 시장 규모에는 온전히 제품의 가격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게 치장된 포장의 가격까지 포함되어 있다. 명절 기간 음식물 쓰레기의 발생량은 평일보다 20% 이상 증가하는데, 다른 쓰레기도 마찬가지이다. 명절을 전후해서 가정에서 배출되는 스티로폼 등 포장 쓰레기는 산처럼 쌓인다.
친환경 선물세트?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한국은 2018년 쓰레기 대란 사태를 겪고, 작년에도 코로나로 인해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증가로 홍역을 치렀다.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한 쓰레기와 의성 쓰레기 산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쓰레기 대란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도권 지역은 2025년 이후 매립지 사용이 어려울 수도 있어 쓰레기 대란의 위험이 높다. 쓰레기를 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 발생량은 자꾸 증가하고 있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60% 이상이 종이와 플라스틱이고, 3분의 1 이상이 포장 쓰레기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포장 쓰레기, 특히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한다.
▲ 설날 고기 선물 세트 2021년 설날 백화점 고기 선물 세트의 포장 |
ⓒ 홍수열 |
어느 업체는 포장을 간소화한 선물세트를 기획했더니 유통업체에서 선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거부했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과일이나 한과, 고기 선물세트를 받고서 포장쓰레기 때문에 복장 터진다는 소비자 하소연이 넘친다. 백화점의 고기선물 세트를 보면, 보냉백에 아이스팩, 종이박스, 플라스틱 받침대, 보자기, 비닐 포장까지 쓰레기가 가득하다.
청와대의 명절선물 세트 포장 분석
명절 선물문화 어떻게 바꿀까? 근본적으로는 명절마다 선물 세트 중 하나를 골라 선물을 돌리는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명절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선물로 들어오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굳이 필요치도 않은 물건을 관성적으로 돌리는 문화가 지속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 2019년 청와대 설 선물 2019년 청와대 설 선물세트 |
ⓒ 청와대 |
▲ 2019년 청와대 설 선물세트 포장 쓰레기 녹색연합은 청와대 설 선물세트의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
ⓒ 녹색연합 |
명절 선물문화를 바꾸는 데 청와대부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2019년 대통령 설 선물에 대해서 녹색연합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 형식상 예의가 부족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는 있어도 문제제기는 타당했다고 생각한다.
올해 청와대에서 발표한 설 선물세트 사진을 보니 2019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한과나 강정, 유과도 모두 종이로 포장했다. 다만 옥에 티라면 안동 소주의 완충재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스티로폼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까지 종이완충재로 바꿨다면 좋은 명절선물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 2021년 설 청와대 선물세트 |
ⓒ 청와대 |
청와대에서 명절 선물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주로 전국 곳곳의 특산품을 골고루 담아서 홍보를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더해 환경의 의미, 특히 탈플라스틱의 의미까지 담으면 좋겠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포장을 간소화한 명절선물의 모델을 보여주고,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단지 겉모양이 화려하고 예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주기를 바란다. 예로부터 궁궐문화는 유행의 시작이었다. 요즘이야 옛날과 같지 않겠지만 대통령의 메시지는 여전히 무겁고 우리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백제문화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 華易不侈)'라고 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진정한 고급문화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명절 선물문화에도 스며들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도에 쌓인 의문의 상자들 .. 섬이 위험하다
-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상담사가 이 말 안 하면 벌어지는 일
- 학교-아파트 주차대란, 이들이 찾은 놀라운 해법
- '기자님'으로 시작하는 메일, 또 악플인가 싶었는데
- 계엄군 묘비, 41년 만에 '전사'에서 '순직'으로
- "가야금 비는데 아쟁 뽑아" 목원대 교수 채용 논란
- 장하성 옆에 유흥주점 '쪼개기 고수' 있었다
- 김은경 질책한 재판부 "명백히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
- 조선 '백선엽 안내판' 보도에... 보훈처·민족문제연구소 '반박'
- 뒷문으로 배송하다 재판 넘겨진 택배기사 '선고유예'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