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질책한 재판부 "명백히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
[강연주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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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같이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
재판부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당사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법정 구속과 동시에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됐던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를 받아내고, 청와대와 행정부 내정자들의 임명을 위해 채용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을 향해 "단지 전 정권(박근혜 정권)에서 선임된 임원들을 소위 '물갈이'하기 위해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라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표적감사, 보복성 인사 등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자신을 보좌했던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김은경, 표적감사·보복인사 혐의 상당수 인정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재판장 김선희)는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오른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주목할 점은 김 전 장관의 혐의 상당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먼저 재판부는 "피고인 김은경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중 일부를 교체할 목적으로 해당 임원들에 대해 일괄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라며 "환경부 장관이 공무원들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전 정권이 임명한 환경공단 상임감사 김아무개씨가 사표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유로 '표적감사'를 실시해 사표를 받아낸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김 전 장관이 환경부 공무원들과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소위 '물갈이' 대상에 오른 전 정권 임원들의 사표를 받아내도록 지시한 행위는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직원들에게 지시한 행위 자체가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내정자 자기소개서까지 대신 작성 지시"
이밖에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14명의 내정자를 최종 합격시키기 위해 채용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는 모두 인정됐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공모해 청와대와 환경부 몫의 내정자를 정하고, 내정자를 임원추천위원회 심사에서 최종 후보자에 포함되도록 지원하도록 지시한 정황이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두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환경부 공무원들이 내정자들에게 면접 예상질문과 기관업무보고를 제공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내정자에게는 업무계획서 및 자기소개서까지 대신 작성해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에서 지정한 한국환경공단 내정자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그를 떨어뜨린 당시 환경부 국장(임원추천위원회 위원)을 부당하게 전보조치하고 관련 공무원들을 질책한 일, 다른 내정자를 넣고자 당시 서류심사에 합격했던 7명을 전원 불합격시킨 일은 모두 김 전 장관의 유죄 혐의로 언급했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들이 주어진 직권을 남용해 임원추천위원회에 소속된 환경부 실·국장들로 하여금 내정자들에게 최고 점수를 부여하거나 우호적인 발언을 하게 하도록 지시하면서 최종적으로 해당 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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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판부는 인정된 혐의들을 두고 "오로지 내정자 및 해당직위에 대한 내정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심사에서 서류심사 합격자를 모두 적격자 없음으로 처리했다"라며 "공정한 소망을 갖고 해당 임원 공모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비난했다.
김 전 장관이 일부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전보조치와 질책을 가한 것을 두고는 "피고인의 원칙 없는 인사로 인해 환경부 소속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인사제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했다"면서 "피고인의 위법한 지시 수행을 위해 동원된 관련 공무원들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수행의 위축감을 느꼈음은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채용과정에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정자들을 제외한 130여 명의 지원자들에게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심한 박탈감을 안겨줬다"면서 "지원자 및 국민들에게 공공기관 임원 채용과정에 깊은 불신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 측 주장을 전면 반박하기도 했다. 앞서 김 전 장관 측은 공공기관 임원으로 선임될 자격이 있는 내정자들이 최종 후보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일부 지원 필요성이 있을 뿐더러, 이같은 사표 징구나 공공기관 임원 내정자 지원 행위는 이전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이 사건 같이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설령 이전 정부에서도 이같은 지원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며, 폐해도 매우 심각해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모두 본인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책임 전부를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면서 불리한 양형사유로 언급했다.
이날 선고 직후,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판결"이라며 "사실관계나 법리 적용 관련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평했다. 이어 "항소심을 잘 대응하도록 하겠다"면서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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