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쿼드·화웨이..바이든 정부 '3종 세트'에 한국 갈림길
미·중 패권경쟁서 선택 강요받는 한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극한 경쟁이 있을 것”이라며 중국과의 패권 다툼을 예고하면서 한국에도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그간 미·중 간 갈등 사안을 회피하면서 줄타기를 해온 한국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도 시효가 다해간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관심사이자 대중 압박수단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안보 연합체 ‘쿼드’ ▲클린 네트워크(중국산 통신장비 등 퇴출)가 대중 압박 '3종 세트'다. 임기를 1년 3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와 9일 새로 취임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당장 맞닥뜨린 과제다.
━
①인도·태평양 전략
“우리는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한 협력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앞서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엔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해 “처음 듣는 제안”이라며 “그 취지를 정확하게 알기가 어려워 우리의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약 2년 만에 미국의 대중 포위구상인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한 입장이 바뀐 셈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호응하면서도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정책과 관련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연계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해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의 연계 협력을 모색한다”며 조건부 협력 의사를 밝힌 것과 같은 전략이었다. 미·중 어느 한 편에 쏠리지 않으면서도 양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호성을 낳았단 지적도 나온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한국 측에 인도·태평양 정책과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3일 카운터파트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내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linchpin)”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을 사실상 인도·태평양 전략의 협력국으로 정의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반면 청와대는 해당 통화내용을 공개하면서도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을 제외하곤 한 차례도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②쿼드&쿼드플러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공식 임기 첫날인 9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견제용이라고 평가받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에 대해 “그 협력체가 투명하고 개방적·포용적이며 국제규범을 준수한다면 어떤 지역 협력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지난해 9월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쿼드 안보협의체를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협력체”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강 장관의 평가에 기반하면 쿼드 안보협의체는 정 장관이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개방성·포용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다자 협력체로 볼 소지가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 안보 협의체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을 더한 ‘쿼드 플러스’ 구상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유보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쿼드 플러스에 대해 정부 방침을 명확히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박진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국가 차원, 정부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시점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선 이미 한국이 쿼드 플러스에 사실상 참여한 것으로 확정 짓는 듯한 주장이 나오는 등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양국 간 혼선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연례보고서는 같은 해 3~5월 쿼드 4개국에 더해 한국·베트남 등이 참여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회의에 대해 “처음으로 '쿼드 플러스'로 알려진 확대된 구성방식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
③클린네트워크
5G 통신망 등의 분야에서 화웨이를 비롯 중국 기업 제품을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사실상 응답을 회피하는 유보적 입장을 보여 왔다. 지난해 10월 제5차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에서 클린네트워크와 관련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업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는 관계 법령상 민간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의 KT·SKT는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클린네트워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점을 공식화한 상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화웨이 등 신뢰할 수 없는 공급업체들이 만든 통신 장비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가 화웨이·중싱통신(ZTE) 등 중국산 5G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는 국가에는 미군 부대나 주요 무기체계 배치를 재검토(reconsider)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안을 처리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경우 전략·정찰자산과 같은 주요 무기 체계와 주한미군 병력 재배치가 클린네트워크 참여 여부와 연계될 수 있어서다.
중국 역시 맞대응에 나섰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해 11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중국 주도의 5G 공급망 구상에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클린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신 중국과 손을 맞잡자는 협력 제안이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의 관점을 존중했던 영국이 클린네트워크 참여로 기울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곤혹스러워졌다”며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지만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딜레마적인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입 쩍 벌리고 틀니 빼냈다···마약에 치아 몽땅 잃은 22세 여성의 영상
- 패리스 힐튼, 눈물의 진술 "기숙학교서 가혹행위 당했다"
- "선넘는 진상 내쫓는다"···검도 배운 여자 사장이 내건 '양아치 현수막'
- 이언주 "5·18에 접대부와 술판···그 우상호가 시장 후보에"
- 사람 잡은 앱 '로빈후드'…잔액 -8억 표시에 20대 극단선택
- '싱어게인' 요아리 "학폭 가해자였던 적 없다" 의혹 부인
- "정치는 '형님·동생' 하는 것 아니다"…임종석 때린 용혜인
- 코로나서 목숨 건진 미국 여성…돌아온 건 '15억원 청구서'였다
- "재산 절반 기부"…10조 번 김범수의 마음 움직인 시 한편
- 이스라엘이 1위 타이틀 뺏겼다…백신 접종률 뒤집은 이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