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아저씨의 10만원..방황하던 고2, 서울대생 만들었다
“후원이란 걸 처음 받았는데, 이게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공부 의지도 갖게 됐죠. 정말 기뻤습니다.”
올해 서울대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21학번으로 입학하게 된 경주 신라고 황건(19)군이 처음 ‘후원’을 접했을 때의 소감이다. 2015년 중학교 1학년생일 때의 일이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던 황군은 후원자를 만나며 마음을 다잡았던 순간을 기억했다.
한부모 가정 자녀인 황군을 교감 선생님이 법무부 법사랑위원 경주지역연합회의 후원 프로그램 '아름다운 동행'에 추천했다. 그때부터 김성훈 당시 경주지청 부장검사(현 의정부지검)로부터 후원을 받게 됐다. 매월 10만원의 후원금이 황군 가족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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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군을 놓지 않은 도움의 손길들
황군은 한국인 아버지와 97년도에 귀화한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폭행 때문이었다. 황군은 "아버지가 어머니 때리는 걸 자주 봤다"며 "저는 옆집으로 피신하고 어머니가 뒤따라서 왔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어머니는 힘닿는 데까지 황군을 뒷바라지했다. 몸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일은 못 했지만, 식당 일이나 목욕탕 카운터를 보는 일을 놓지 않았다. 중3 때 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는 아들에겐 “그러면 한번 다녀보라”고 힘을 실어줬다. 중간에 학원을 그만둬야 할 만큼 어려울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다니던 학원 원장선생님은 그를 말렸다. 황군은 “좋은 원장선생님을 만나 학원비도 한 번씩 깎아주셨다. 정말 그만둬야 할 상황이 왔을 땐 (돈을) 안 받겠다고도 했다”며 “그 선생님 덕분에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2 때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공부한 만큼 성적도 안 나왔고, 그 상황이 계속될까 걱정이 컸다고 한다. 황군은 “그럴 때마다 내가 포기하면 어머니나 김 부장검사님 등 많은 분이 저를 도와주신 게 소용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을 떠올리며 견뎌냈다”고 말했다. 황군은 자신의 공부법에 대해 “노력파”라면서 “외워질 때까지 페이지를 안 넘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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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키우는 교사 되고파. 후원받은 만큼 환원”
사회교육과에 진학한 황군의 꿈은 교사다. “인재를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보고 키운 꿈이다. 황군은 “1년만 보는 담임 선생님은 서로 잘 모른 채 학년이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중3 선생님은 개개인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 선생님을 보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황군은 “제 집이 학교에서 너무 멀다면서 1년 내내 선생님 저를 태우고 출근을 하셨다”고 말했다.
‘검사 아저씨’가 보내준 후원비 10만원으로는 항상 책을 샀다. 그는 “당시 참고서나 문제집이 싸면 1만5000원, 비싸면 2만5000원이었다. 10만원이면 한 달에 4~6권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후원자인 김성훈 부장검사는 이제 황군과 서울대 동문이 됐다. 김 부장검사는 서울대 정치학과 92학번이다. 그는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기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김 부장검사는 “학생 입장에서 부담스럽거나 기분이 나쁠 수 있어서 직접 만나는 게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황군은 대학을 갔으니 올해까지 후원하고 내년부터는 또 다른 후원 학생과 인연이 닿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준 법사랑위원 경주지역연합회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난 2004년 만들어진 결연 청소년 후원제도다. 사고쳐서 검사실에 온 불우 청소년을 돕던 것에서 시작해 다문화·한부모 가정 등으로 후원 대상이 넓어졌다. 김정석 법사랑위원 경주지역연합회 부회장은 “과거 검사들이 자신이 맡은 사건 속 아이를 후원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황군은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학교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금전적 후원까지 해준 제도에 감사하다. 나중에 후원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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