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가 민영환을 바꾼 힘이 뭔지 살피며 읽었으면"
[김철관 기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직한 국민의정부 시절인 지난 99년 말 <중앙일보>에서 근무한 한 기자가 언론개혁과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중앙일보사 현관에 붙이고 사직을 한다. 바로 오동명(63) <중앙일보> 전 사진기자이다. 그런 그가 친일, 친미 등 부역자들에게 일침을 가한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말글빛냄, 2020년 12월)을 출판했다.
▲ 표지 소설가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가 쓴 <불멸의 제국> 표지이다. |
ⓒ 김철관 |
"내가 나올 땐 우리나라 언론을 두고 쓰레기란 말은 듣지 않았던 것 같다. 한두 신문조차도 이젠 볼 게 없고 포털에 뜨는 건 모두 죄라고 생각한다. 20년 전, 그래도 <한겨레>나 <경향신문> 그리고 <오마이뉴스>며, 월간 <말>지 등이 있었다. 언론다운 언론이랄까. 이젠 조중동만이 아니다. 내가 <중앙일보>를 나올 즈음엔 안티조선운동이 한창이었다. 당시 나는 '중앙은 삼성을 업고 있다', '삼성이 우리나라 언론의 돈줄을 잡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기자 시절인 20년 전과 비교해 현재 언론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직을 버린 지 20년 전과 변하지 않은 그대로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중앙일보>를 나온 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적당히 해'였다. 나와 뜻을 같이 했던 선배며 후배들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서울을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만나지 않으니 그런 말을 안 들어도 됐으니까. 20년 전 조중동이나 그런 부류들이 변한 건 없다. 그대로이다. 그 외의 언론들이 조중동에 물들어버린 것이 더 문제이다."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언론개혁이 더 절박하다는 말이 국민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검찰개혁보다 언론개혁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신문사를 나올 즈음인 20년 전, 삼성의 법적 대응은 검찰출입기자 출신 한 명이 중앙일보 고문으로 있으면서 다 해결했다. 그러나 삼성이 비대해지면서 부장급 이상 검·판사 출신들을 삼성에서 끌어들였다. 법조계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걸 누가 하는지도 잘 알 것이다. 드러난 사건들도 있다. 삼성 X파일 사건이다."
화제를 바꿔 본론으로 들어가 1905년 을사늑약이 있을 당시를 무대로 한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을 출판했다. 그래서 그에게 책에 나온 '하인인 인력거꾼이 민영환이 자결한 같은 날에 자살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가를 물었다.
"민영환은 자결이고 하인은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듣기가 참 그렇다. 민영환은 동상에 기념비에, 후에 남긴 게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하인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내가 중학생 때 읽은 역사책에 한 줄, 정확히는 반줄이다. 자살했단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을 쓰기 전에도 어렵게 다시 확인했다. 그 하인이 인력거꾼이었단 사실도 어디선가 볼 수 있었다. 인력거꾼은 내가 소설로서 임의 설정한 것이다. 중학생이던 내가 하인의 자살을 읽고 '왜'라는 의문을 하게 됐고, 50년이 더 지나 그 의문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그는 민영환은 당시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민씨 집안에서도 가장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인력거꾼은 동학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민영환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탄압한 장본이기도 하다. 그후 10년이 지나면서 달라져가는 민영환. 이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다시 읽어보게 됐다. 분명 변하고 있었고 끝내 자살로 마지막 저항을 한다. 그런데 하인은 왜 자살을 했을까. 우선 하인이 바뀌어가는 장면들이 있다.
동학에서 배운다. '시천주', '사인여천'으로 깨닫게 된다. 조선 500년 동안 성리학으로 세뇌된, 태어남에서부터 차별이 있다는 것, 누군 양반으로, 누군 상놈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던 시대에 누구나 같은 하늘님을 모실 수 있고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 하니, 엄두도 못 내던 희망이란 걸 품게 됐다."
100년 전의 지난 역사인데, 요즘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저 되돌아보고 후회나 하는 그런 역사, 아님 웃거나 울거나 옛 이야기의 조롱희롱같은 드라마가 아니다.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역사가 돼서는 안 된다. 아무리 픽션인, 꾸민 이야기인 소설이라 해도 말이다. 소설을 통해 현재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떠올리면 지금을 과거의 역사로 남겨두게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2016년 촛불이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또 과거의 그런 유령이 나타나 역사를 과거로 돌려놓으려고 한다.
100여 년 전 순전히 지 몸 하나, 지 집안 하나만을 위해 나라를 다 팔아먹은 자들. 그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건재하고 국민 백성을 지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 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하느냐 하는 한탄의 소리가 들린다. 믿었던 자들이 등을 돌리고 칼을 오히려 옛 동지에게 향하고 실제로 찔러대고 죽이고 있다. 전봉준 어른이 하신 말씀, 죽지 않는 백성정신은 늘 정치의 희생일 뿐인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학에선 경제학을 전공했고 제일기획에서 상업사진가, <국민일보>, <중앙일보>에선 사진기자를 했다. 어쩜 글과는 거리가 먼 듯해 보이는데 어떻게 역사소설을 쓰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부역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빌어먹고 사는 자들에 의해 나라가 완전 박살나고 있다. 국민의 수준은 절대 그들과 같지 않다. 백성 정신은 순수하다. 100여 년 전의 친일·친러 부역자들, 지금의 친일·친미부역자들이 소설 <불멸의 제국>을 나오게 했다."
그는 끝으로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제대로 읽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민영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최고 세도가 민영환을 바꾸게 한 힘이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읽어달라고 했다.
저자 오동명은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제일기획, <국민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했다. 한국기자상(출판부문, 1998년), 민주언론시민언론상(특별상, 1999년) 충남대와 전북대에서 저널리즘 강의를 했다. 현재 전북 남원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소설집필과 언론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사진으로 세상읽기>, <부모로 산다는 것>, <자전거 텐트 싣고 규슈 한바퀴>,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사진집 <사랑의 승자>, <오동명의 보도사진 강의>,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이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도에 쌓인 의문의 상자들... 섬이 위험하다
-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상담사가 이 말 안 하면 벌어지는 일
- "레고 블록 선물하지 마세요" 미국 작가의 섬뜩한 경고
- 혼자만 알고 싶지만... 나는 '권며들었다'
- 개신교는 왜 코로나 방역 방해하나? 그릇된 믿음의 근원
- "가야금 비는데 아쟁 뽑아" 목원대 교수 채용 논란
- 장하성 옆에 유흥주점 '쪼개기 고수' 있었다
- 청와대 앞에 선 김진숙, 18년 전 정은임이 떠오른 이유
- 황희 "딸, 미국서 차상위계층 공립학교 무료로 다녔다"
- "가능한 집합금지는 최소화"... 2월 중 시설별 방역수칙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