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파괴하지 않는 예술, 가능할까요
[은평시민신문 박수현]
코로나19로 인해 예술인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시각예술, 연극, 무용, 클래식 및 전통 공연 등 전시 및 공연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문학, 독립영화, 대중문화 등 전 영역의 피해가 극심하다. '코로나19 관련 문화예술 분야 피해 추정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예술인들이 받은 고용피해는 1260억 원에 달했다.
▲ 로테이트 대표 나영 |
ⓒ 은평시민신문 |
"저는 쓰레기로 이것저것 만드는 나영입니다. 업사이클링* 작업실 로테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쓰레기로 바다숲을 만드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폐지를 꼴라주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로테이트 작업실에서는 청바지나 옷감을 해체하고 다시 재단해 가방을 만들거나 판매하기도 합니다."
(*업사이클링: 쓸모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질적, 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 방식)
- 말씀하신 비닐, 폐지, 옷감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쓰레기를 작업 재료로 활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제일 처음 업사이클링 작업을 시작했던 재료는 자투리 목재였어요. 모빌을 만들기로 결정을 했는데 재료는 어떤 것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에 자투리 목재가 떠올랐거든요. 제가 목재라는 재료에 익숙하기도 했고, 나무로 가구를 만들 때 자투리 목재들이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투리 목재로 모빌을 만들게 되었어요.
▲ 페트로프 피크닉 가방, 업사이클링 가방, 페트병, 자투리 실, 2018(왼쪽), 짜증 난 지구, 업사이클링 키링, 페플라스틱, 2019(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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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술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개인전을 두 번 정도 하고 나니 만드는 것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마침 그 시기에 환경에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원래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고 동물을 좋아했는데, 제대로 된 방향으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서 작업을 해봐야겠다 생각을 하니까 재료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어요. '내가 화방에 가서 재료를 사고 만드는 것이 과연 창작하는 일인가? 그저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재료는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이 도시에 쓰레기가 많으니 쓰레기로 작업해봐야겠다. 그래서 쓰레기로 작업하는 사람이 된 거예요."
- 쓰레기로 하는 작업이라니 생각났는데, 은평구 후원으로 최근 전시도 하셨잖아요. '황다랑어 쓰레기 해체쇼'가 대체 뭘까요?
"네, '씨더썬'이라는 단체에서 주최한 온라인 전시에 제가 작가로 참여했는데, 메시지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 청바지 해체에서 참치 해체가 떠올랐어요. 당시 제가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 계획이 있었는데 너무 바빠서 계속 못했었거든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전히 봉재선을 잘라서 원단을 만들어 재제작해야 하는데 청바지를 해체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씨더썬에서 전시요청이 왔길래 제가 '이왕 하는거, 그러면 청바지를 해체하는 것으로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씨더썬의 영상작가님이 도움을 주시겠다고 해서 작업을 하게 됐죠.
▲ 같은 듯 다른 듯 여기에 함께, 업사이클링 모빌, 자투리 목재, 2019 (왼쪽), LOVEEARTH-재생지노트, 재생지에 수성실크스크린, 2020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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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작업이 아닌 경제 활동을 약간 구분 지어서 이야기하자면 몇 년 전부터 계속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이건 미술 교육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는 말이겠지만, 아이들하고 그림을 그리면 오히려 제가 영향을 받는 부분이 생겨요.
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나 생각지도 못한 지점을 이야기하는 시각이 너무 매력적이라. 그래서 한 번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는 오래 관계를 유지하며 저도 함께 자라는 것 같아요. 7살에 수업을 시작해 지금 중학교 3학년이 된 친구들도 있어요. 지금은 거의 친구가 되었죠. 그런 미술 교육 말고도 2020년 같은 경우는 초록길도서관에서 업사이클링 워크샵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물론 핫핑크돌핀스에서 해양생태감수성교육도 하고, 핫핑크돌핀스 후원인 모임에서 만난 여기공 팀과 함께 기술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 최근 코로나 때문에 말씀하신 교육활동들은 특히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작업도 포함해 코로나 전후의 상황이 작가님께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개인적인 작업에 있어서 그렇게 큰 변화는 없는 거예요. 저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작업 시간이 늘었다? 왜냐하면 수업이 다 취소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 오히려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네? 돈은... 못 벌긴 했지만(웃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만 말씀드렸던 초록길도서관에서의 업사이클링 워크샵의 경우 비대면으로 해야 했는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죠.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 안에서 감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거든요. 드릴을 사용해본다든지, 톱을 사용해본다든지 하는 실질적 자립에 관련된 소소한 손기술을 못 나누게 된 것이 아쉬웠어요.
▲ 종말, 31×49 ㎝, 종이에 혼합재료, 2012 (왼쪽), 쓰레기 해체쑈 포스터, 2020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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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서울 새활용플라자에서 다른 온라인 수업을 했을 때였는데, 초등학생 아이들이 폐종이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거기서도 제가 최소한의 재료로 수업을 해볼 수 있도록 키트를 다 미리 만들어 보냈어요. 그런데 그때 아이들이 어딘가에 나갈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라 미술 활동이라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좋고, 아이들도 너무 재미있게 잘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도 아이들은 자라나는 와중인 거잖아요. 이 어렸을 때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어도 제가 만날 수 있는 거잖아요. 미약하지만 이렇게나마 나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점이 온라인의 좋은 부분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이동하기 불편하거나,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작품 활동에서도, 이외의 교육 혹은 연대 활동에서도 나영님은 주로 연결점을 만드는 작업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며 작업을 하시는데.
"제가 얼마만큼 유명해지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이 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작업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요즘 같은 시대니까, 조금 더 대놓고 말을 하자면 '환경을 파괴하는 예술은 그만해야 된다, 이제는' 그런 생각은 들어요. '파괴하는 예술은 과연 정당할까?'라는 생각도 요새 좀 하게 되고. 그래서 저는 요즘 예술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사실 제 작업의 내용물이 항상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비판적인 작업이나 어두운 작업을 하면 그것이 제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잖아요. 하면서 괴로운데 그래도 안 할 수 없고. 이런 작업으로 저 하나가 변하면 더 변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하는데, 사실 그냥 하는 겁니다. 하고 싶으니까.(웃음)"
-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고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좀더 생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러니까 쓰레기를 소재로 해서 작업하는 건 재미있지만, 예를 들어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또 다시 유해 물질이 발생하기도 해요. 페트병의 플라스틱 뚜껑을 파쇄해서 뭔가를 만드는 작업이 겉보기에는 환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걸 진행하는 과정 안에서 또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면 작업자에게도 좋지 않고 다시 환경오염을 발생 시키는 거잖아요.
그래서 쓰레기 중에서도 자연을 덜 더럽히는 것, 아니면 완전히 자연 재료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목재를 사용할 때 우리가 보통 100년 자란 나무를 베어서 쓰면 환경에 정말 안 좋아요. 지금은 그 대체 재료로 대나무를 이야기하기도 하거든요. 대나무는 정말 빨리 자리니까. 그런 식으로 제 작업도 더 좋은 재료를 찾아서 사용처를 늘리는 방식으로 나아가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 함께 예술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혹은 작업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작업을 할 때 아예 목적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냥 할 때도 있어요. 사실은 너무 교육적인 메시지를 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약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긴 해요. '너는 이렇게 하면 안 돼. 저렇게 해야 돼'처럼 방향을 정해주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기 때문에. 보고, 생각하고 더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하는 예술인들에게는 그냥, 그림 자체로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없지만... 제가 뭔가를 계속 함으로써 '하고 있다.' 저 사람도 하고 있구나, 나도 해야겠다 같은 무언의 응원 같은 것을 주고 싶어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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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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