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상담사가 이 말 안 하면 벌어지는 일

장현경 2021. 2. 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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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참가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이 파업하는 이유

[장현경 기자]

"고객님, 차후 설문 조사 시 매우 만족 5점 부탁드립니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는 3년 연속 '공공기관 고객 만족도 우수기관', 8년 연속 '서비스품질 지수 우수기관(KSQI)', 7년 연속 '한국 고객센터 품질지수 우수 컨텍센터(KS-CQI)'에 선정됐다. 우수 고객센터라는 타이틀은 꼬리 칸에서 열심히 일한 하청 상담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헌신과 희생 덕에 유지될 수 있었다. 

3개월에 한 번 만족도 조사 기간이 오면 상담사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만족도 조사 점수가 도급사 평가 기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공단에 잘 보이기 위해 전국 11개 도급업체는 경쟁적으로 상담사를 몰아붙인다.

"제 상담에 매우 만족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객 반응 몇 초 기다리기) 추후 만족도 조사 시 매우 만족, 5점 부탁드립니다"라는 종료 인사를 강제하고, 고객이 만족했다고 대답하면 가점을 준다. 

운이 좋아 '친절하시네요'라는 답변을 들으면 만 원씩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하고, 친절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명품을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샤넬 립스틱, 에르메스 향수 등을 총 19명한테 지급하는 프로모션이었다.

책상 앞에 붙은 옐로카드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상담노동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건강보험에 전화해본 가입자들은 알겠지만 상담원과 연결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겨우 연결됐다', '로또 당첨됐다' 할 정도로 대기시간이 길다.

전화를 받다 보면 전산화면에 고객이 몇 분 대기했는지가 나오는데 7~8분 대기는 기본이고 10분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장시간 대기하다가 겨우 연결된 고객을 2분 30초 만에 만족시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쓸데없는 멘트로 대기 시간을 늘어나게 할 것이 아니라 간단하고 명료하고 정확하게 상담해서 전화 연결이 빨리 되게 하는 게 '만족'일 것이다. 그렇지만 콜센터 전문 인력만 키우는 회사는 아직도 1990년대 방식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한다.

건강보험은 통신사, 카드사처럼 본인이 사용한 금액만 납부하면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예외 없이 납부하는 사회보험료이기 때문에 제도불만, 부과불만, 징수불만 등 항의 민원이 많다. 상담사도 사람인지라 불만 민원 전화에 '5점 매우 만족' 부탁드린다고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만족도 인사를 누락하면 다음 날 책상에 옐로카드가 부착되어 있다. 옐로카드를 받았는데도 인사를 누락하면 '친절'이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근무하게 한다. 또한 출근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친절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인사를 하게 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동료들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얼마 전 "건보공단 고객센터 업무를 맡은 상담사들은 우리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키운 회사의 자산"이라는 민간위탁 업체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2년이 지나면 수고했다는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 보고 떠나가지만, 상담사는 그 자리에 남아 다음 2년 동안 우리를 핍박할 업체는 어디일까를 생각한다.

10년을 일해도 2년마다 한 번씩 회사가 바뀌니 본인들 회사에는 신입이라 최저임금밖에 줄 수 없다고 하고, 용역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 달라 하니 기업 비밀이라고 하는 그들은 우리가 '소중한 자산'이라고 한다. 사람장사하며 중간착취에만 급급하니 상담노동자를 회사의 가족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게 당연한 논리인 것 같기도 하다.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1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과 직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11곳의 조합원은 이날부터 동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공단은 민간위탁 방식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고객센터 근로자는 공단 협력업체 직원이다.
ⓒ 연합뉴스
 
우리의 생애 첫 파업이 이제 2주째로 접어든다. 우리 상담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사회의 시선과 비판적 여론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있다. 정상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게 뻔히 보이는 데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인 걸까? 2년마다 바뀌는 사기업 정규직임을 알고, 최저임금인 걸 알고 입사했으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순응하며 사는 사회가 올바른 걸까.

우리가 요구하는 건 공단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가 아니다. 부당한 노동환경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고객센터 상담사가 어려운 경쟁을 뚫고 입사한 정규직 직원과 동일한 대우를 바라느냐', '시험 쳐서 들어오면 될 것이지 떼쓴다고 될 일이냐'라며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15년 동안 묵묵히 일해온 삶까지 폄하 당하고 있다.

2년짜리 민간위탁 직원이 아닌 15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공단업무를 '상시·지속적'으로 해온 우리를 공단이 더는 외면하지 말고 진짜 사장이 되어 "직접고용"해 달라는 것이다.

오늘도 전국에 흩어진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원주 건강보험공단 본부 앞에 모여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하지 않을 것'이며 '기계 취급이 아닌 인간으로 대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생계형 노동자인 우리가 무노동 무임금 파업을 결정하고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 앉아 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따뜻한 시선과 사회적 공감대를 기대하는 게 정말 과한 욕심이고 요구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첫인사만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가 아닌 진정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가 되어 하루빨리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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