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정치·당국發 '코로나 고지서'에 몸살.."우리가 봉이냐"(종합2)

이광호 2021. 2.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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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금융권 정조준 '공식적 팔 비틀기'.."대출 이자율 인하해야"
금융당국, 만기연장·상환 유예 등 마련..폐업 소상공인도 상환유예
"정치권 과도한 금융 개입, 자율성 역기능 초래"..시장 혼란 우려도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박선미 기자] 여당발(發) 이익공유제가 금융권을 정조준하면서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자발적 참여’라는 전제를 내세웠지만 국회에서 금융사를 옥죄는 법안을 연일 쏟아내며 ‘공식적인 팔 비틀기’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세에 금융당국도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물론 당내에서도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 개입은 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기관 봉으로 아는 정치권= 9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16인은 전일 여신금융기관이 임대인의 대출 이자율을 인하하고, 국가가 이차보전하는 내용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여신금융기관이 소상공인과 상가건물을 담보로 금원을 대여한 임대인에게 대출 이자율을 인하하고, 국가가 그 인하액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이차보전 등 재정적 지원을 해 사업위험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들은 "감염병과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극복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을 소상공인·자영업자들만이 부담하는 것은 손실부담 원칙과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며 "재난상황의 극복에 책임이 있는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구성원이자 경제주체로서 모두가 함께 부담하는 것이 정의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피력했다.

여당은 비슷한 취지를 담은 법안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 소병철 의원은 영업보상 외 임대료·대출이자 등 감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소상공인기본법 일부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같은당 민형배 의원도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등의 재난으로 피해를 입으면 은행들이 대출원금까지 감면해주도록 강제하는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놨다.

앞서 이동주 의원도 코로나19 방역 행정 조치로 집합금지 조치를 받았을 때, 임차인이 내야 하는 임대료를 전액 감액하고 집합제한 조치를 받았으면 그 기간 임대료의 절반을 깎아주는 이른바 ‘임대로 멈춤법’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또 코로나19 피해를 임대인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일자 ‘세금 멈춤법(조세특례제한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성만 의원도 재난기본법상 특별재난지역 또는 집합금지 조치 받은 지역의 자영업자에 대해선 임대료를 50% 이상 청구할 수 없게 한 법안을, 윤준병 의원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가 상가임대료 인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명시한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원화대출 연체율 추이.(=금융감독원)

폐업한 소상공인들까지도 대출금 상환 유보

◆당국도 ‘고통분담 고지서’ 청구= 문제는 정치권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에서도 연일 수위높은 ‘고통분담 고지서’를 금융사에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안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시행 중인 금융권 만기연장·상환 유예조치의 연착륙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자유예를 반대하는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한 차례 더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에 덧붙여 폐업한 소상공인들까지도 대출금 상환이 유보될 수 있게끔 했다.

현재까지 전체 금융권의 일시상환대출 만기연장 금액은 116조원(35만건), 분할상환하는 원금상환 유예는 8조5000억원(5만5000건), 이자상환 유예 금액은 1570억원(1만3000건)을 기록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피해 직격탄을 맞았지만 은행권의 자산건전성은 각종 피해계층 지원 유예정책 때문에 부실이 이연돼 오히려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지난해 12월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28%로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지난 2018년 원화대출 연체율은 0.4%, 2019년은 0.36%였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은행의 연체율은 0.16~0.25% 수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 0.24~0.35% 보다 낮아졌다. 부실 위험이 높은 고정이하여신(NPL)비율 역시 국민은행 0.41%, 하나은행 0.34% 등 하향 추세다.

연체율 하락은 대출만기연장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 대출 상환 유예가 연체율 하락에 영향을 줬을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건전성 착시로 인해 당장은 안정적이어 보이지만 정책 지원 이후 후폭풍을 고려해 자산건전성 관리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정유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올해 은행 건전성은 정부와 은행의 금융지원 확대로 대출 총량이 증가하는 분모효과와 함께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등으로 부실인식이 이연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코로나19 영향으로 한계기업 비중이 2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은행 건전성 악화 요인들이 널려있다"고 진단했다.

정치권과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 개입은 시장경제 질서를 흔들고, 자율성에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직설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은행이 대출에 대한 원금·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시장의 혼란을 걱정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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