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한테 맞아도 '퇴사 불가'.. 대체 이런 직장이 어디 있나

고기복 2021. 2. 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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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복의 이주노동 보고서] 이탈자 생길 때마다 돈 챙긴 단체들

[고기복 기자]

▲ 사업장 이동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사업장 이동 제한에 항의하는 이주노동자
ⓒ 고기복
1990년대 들어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인력부족 문제가 심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외국인력 도입 요구가 거셌습니다. 정부는 1991년 법무부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사증 발급 등에 관한 업무 처리지침'을 통해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합니다.

처음 산업연수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는 주무 부처 장관이 추천하는 업체에서만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말에 주무 부처 장관이 추천하는 관련 산업 공공단체가 연수업체를 추천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이에 중소기업청은 1994년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아래 중기협)를 연수생을 추천할 수 있는 단체로 지정하여 연수생 모집과 알선, 연수 및 사후관리를 전담하도록 합니다. 

이후 산업연수생제도는 수협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농협중앙회, 해운조합 등을 연수추천단체로 확대해 시행됩니다. 원래는 법무부 지침에 따라 제도가 운영됐지만, 1994년 말 노동부가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을 만들면서 외국인력 주무부서가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해 임금채권 우선변제와 퇴직금, 연차유급휴가 등을 적용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차별 적용하도록 규정한 노동부 지침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7년 8월 30일 '외국인근로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 판결은 2004년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려왔던 산업기술연수제가 폐지된 이후에 나온 것이라,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럼 산업기술연수제는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위헌 결정을 받았고, 제도권보다 더 많은 미등록자를 양산했을까요? 산업연수제는 해외 투자 기업들의 현지 고용 인력의 기능 향상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돼 개발도상국과 경제협력 증진을 꾀한다 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생산직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연수업체의 지시 감독 아래 노동을 시켰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기술연수라 해놓고 실제로는 노동자로 일 시키는 기만적 제도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연수추천단체인 중기협이 사용자단체이다 보니, 사용자 측과 중기협이라는 단체 이익에는 충실하지만, 코리안드림을 꿈꾸던 연수생들의 권익보호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수생들은 여권 압류, 강제 적립 등으로 신분적 구속을 당하면서도 임금은 미등록자들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994년 중기협을 통해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미등록자가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미등록자가 네 배 많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단체추천형 산업연수생의 이탈이 급증하며 외국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2002년 7월에 산업연수생, 연수취업자(연수생 1년을 거친), 이탈자를 모두 외국인력에 포함하는 총정원관리제를 도입합니다.

국내에 필요한 외국인력 정원을 산정함에 있어서 미등록자인 이탈자까지 포함한 것은 정부가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면서 이들이 산업 현장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수년 동안 산업연수제 폐지 운동에 나섰던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산업연수제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연수제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던 연수추천단체들은 연수제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중소기업청이 작성한 '불법체류로 인한 계약이행보증금 귀속현황 및 사용내역'이라는 자료를 보면 중기협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연수관리비, 이행 보증금 귀속금, 예금이자 등으로 모두 565억의 누적 수입을 올렸습니다. 중기협은 연수생을 배정해 주는 대가로 연수업체로부터 1인당 28만 6천 원의 연수관리비를 받다가 2003년부터는 관리비용 증가를 핑계로 41만 8천 원으로 인상했습니다.

이행 보증금은 연수생이 연수 기간을 다 채울 것을 보증하기 위해 1인당 300달러씩 내던 돈입니다. 중기협은 연수생의 사업장 이탈을 막기 위한 공탁금이라고 주장했지만, 연수생이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면 보증금은 중기협에 귀속되었습니다.

중기협에 누적 귀속된 이행 보증금은 1996년 4308만 원, 1998년 11억 4천만 원, 2000년 32억 9천만 원, 2001년 42억 7천만 원이었습니다. 귀속금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이탈자수가 그만큼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도의 경우 약 6만 명의 산업연수생이 업체를 이탈했는데, 약 216억 원의 이행 보증금을 중기협이 챙겼습니다.

중기협은 산업연수생을 배정하는 조건으로 연수관리비를 기업으로부터 받는 한편,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연수생들이 업체를 이탈할 때마다 챙긴 보증금, 귀속금으로 인해 배를 불렸습니다. 이처럼 제도 운영권을 가진 단체가 운영에 실패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기이한 제도가 산업연수생 제도였던 것입니다. 비록 이주노동자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연시하면서 연수추천단체에 황금알을 낳아 주던 산업기술연수생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폐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업연수생제를 대신한 고용허가제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중기협이라는 연수추천단체가 산업연수제를 통해 배를 불리며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면 고용허가제는 공공성과 노동자 권익을 담보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인력 운영이 이익집단인 민간단체에서 국가 중앙부서로 바뀔 때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사업장 이동 제한 등의 규정 때문에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보다 더 악한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럼에도 연수제 폐지를 주장하던 시민단체들은 점차 제도 개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비판적 지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제보다 못한 제도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주도한 고용허가제 퇴행
 
▲ 이주노동자 전용 코리안드림 적금 통장 산업연수생제도 당시에는 강제 적립이 있었다.
ⓒ 고기복
 
회사에서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관리자는 명목상 대표의 동생으로 사장이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폭행 장면은 한 시간 가까이 영상으로 찍혀 있었고, 동료들도 피해 사실을 증언해 줘서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임금 체불 문제로 식당에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머리를 수차례 맞은 아리의 증언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이렇게(머리를 때리는 시늉) 많이 무서워요. 인도네시아 사람은 머리를 안 때려요. 마음이 아파요."

폭행을 당한 아리는 회사를 그만두고자 했습니다. 반면 사측은 아리에게 석 달 가까이 동일 사업장에서 일할 것을 강요하며 퇴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퇴직을 원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정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정한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 때문입니다. 사실 고용센터에서는 사내 폭행이 발생하여 이주노동자가 요구하면 사업주 동의가 없더라도 폭행 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사업자변경 임시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용센터는 아리의 거듭된 요청을 묵살했습니다.

아리는 2020년 11월에 폭행을 당하고 경찰과 노동청에 신고까지 했지만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는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폭행 등의 인권침해는 직권 변경 사유임에도 고용센터는 아리가 제기한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폭행 사건은 2020년 12월에 이미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고, 사업장 변경을 허락받고자 아리는 가해자를 고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는데도 고용센터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사측이 여전히 사업장 이동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폭행 사건 이후 아리는 기숙사를 나와 친구가 일하는 회사 기숙사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근로계약이 해지되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고용허가제법은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임금체불 그 밖의 노동관계법 위반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고용허가를 취소하거나 제한할 수 있고, 사업장변경 신청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폭행이나 임금체불 등이 발생해도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면 강제 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제 규정이 아니라 '취소 및 고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부분 고용센터는 사용자 측의 귀책 사유가 존재해도 민원 제기 우려 때문에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을 하는 행정처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아리는 1월 22일에 고용센터 담당자로부터 직권 처리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민간단체에서 강력하게 항의한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강력하게 항의를 해야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고용허가제, 2020년 3월에 시민단체들이 달리 헌법소원을 제기한 게 아닙니다.

고용허가제의 퇴행 

고용허가제의 퇴행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의 경우 계약 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근로자를 강제근로 등의 위험으로부터 구제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1년 단위 근로계약을 입국할 때부터 최장 3년까지 근로계약을 할 수 있도록 변경해 버렸습니다.

사업장 및 근로계약 기간을 선택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강제근로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해마다 1년 단위 근로계약 갱신권을 사업장 변경 사유로 허락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져도 모자랄 판에 3년 단위 근로계약을 강제해 버린 것은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개악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을 할 경우 실직 기간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 수급 기회도 줄어듭니다. 게다가 원칙적 3회라는 횟수 제한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업장 이동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고용허가제는 과도하게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권리를 내국인 노동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위헌 결정을 받았던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보다도 못합니다.

연수생제도에서 연수업체는 숙식 무료 제공을 의무적으로 요구받았고, 유망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20% 또는 연간수출실적이 50만 달러 이상인 업체, 중소기업 우수제품마크 인증업체, ISO9000 인증획득업체, 품질경영 우수업체, KS표시 허가업체 등의 기준에 부합할 경우 누계 점수에 따라 연수생을 우선 배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업체들은 포천 비닐하우스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던 업체들에 비해 더 영세하고, 숙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등 노동조건이나 생활 여건이 나쁩니다. 더 열악해진 노동조건에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고 더 오랜 기간을 일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지금의 고용허가제입니다.

이러한 고용허가제의 퇴행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헌 판결받은 제도보다 못한 제도는 개정이 아닌 폐지가 마땅합니다. 산업연수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모색되었던 노동허가 혹은 그와 유사한 제도로의 질적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연수제가 왜 지탄을 받았고 폐지된 후에도 위헌이라는 단죄를 받았는지 곱씹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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