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차단했다는 이유로 고소", 우울증 걸린 건보공단 상담사들
[김종훈 기자]
▲ 건보공단 상담사들이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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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나쁨'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지부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김하나씨가 2017년 입사 후 받은 '자율신경 균형 및 스트레스 검사'에서 심장안정도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평균심박동수, 자율신경 안정도, 스트레스 저항도,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에서 받은 결과다.
김씨는 "검사 당시 스트레스 지수와 피로도는 측정 가능한 범주를 크게 넘어 검사하는 사람도 기계의 오류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생각해 보니 결국 마음의 병으로 인해 몸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8일 김씨는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노동자 노동건강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증언했다.
문제는 김씨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와 건강한 노동세상 등이 지난 2020년 8월 26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전국에서 일하는 건보공단 도급업체 소속의 상담사 1600여 명 중 노동조합 소속 978명을 대상으로 6일간 설문조사해 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상담사 796명 중 84.5%가 우울증 위험군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 범위는 15.5%에 불과했다.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수준' 역시 조사 대상 중 건강군은 따로 없이 잠재적 스트레스군과 고위험군이 각각 32.8%와 67.2%에 달해 모든 작업자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번 조사를 주관한 건강한 노동세상 소속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매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의 경우 고객들은 보이지 않는 상담사에게 분노와 적대감, 욕설 등을 더욱 쉽게 표현한다"면서 "그럼에도 상담사는 조직이 규정한 감정표현규범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이로 인해 감정부조화와 감정소진이 발생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일, 건보공단 상담사들은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권 탄생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상담사들은 각각 2018년과 2019년 자체 논의 후 정규직 전환을 이뤘다. 그러나 건보공단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은 제외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5월 건보공단 정규직 노조에서 조합원 1만 3500여 명을 대상으로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사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때문이다. 당시 응답자 7700여 명 중 직접고용 반대 의견이 5800여 명(75%)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건부 동의는 1100여 명(14%)에 그쳤다.
▲ 건보공단 상담사들이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안경애 상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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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마이뉴스>를 만난 안경애 상담사는 "지난해 3월 한 고객이 명예훼손으로 자신을 고소했다"면서 "2020년 4월 연차 중 원주 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서 연락이 왔고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라는 질문에 '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알려줬다'고 하더라.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 (도급업체) 팀장이나 매니저, 공단 직원 누구도 경찰에서 전화가 올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고객이 경찰에 고소한 초기 단계에 공단이 잘 대응했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에피소드로 지나갈 일이 지금은 이렇게 큰일이 됐다"면서 "두 번 경찰조사를 받을 동안 공단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상담사 안씨는 안내를 하는 도중 고객의 폭언을 들었고 이에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ARS음성'을 송출했다. 그러나 다시 연결된 전화에서 고객은 상담사 안씨에게 재차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안씨는 고객번호를 차단했다. 욕설을 퍼부었던 고객은 한 달 뒤 원주경찰서에 명예훼손으로 안씨를 고소했다. 최근 안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안씨는 "고객이 말할 때는 무조건 경청해야 한다"면서 "만약 고객과 말 겹침이 생기면 상담사 평가 점수에서 차감된다"라고 업무 간 발생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2%가 고객으로부터 '인격 무시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유다. 특히 응답자의 53.9%는 공단 직원으로부터 인격 무시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고객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이는 81%였고, 성희롱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이도 14.4%인 것으로 조사됐다.
과정에서 상담사들은 1일 평균 '100콜 이상 120콜 미만'이 36%, '120콜 이상 140콜 미만'이 29.6%를 차지해 6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140콜 이상 업무를 처리한다는 상담사도 10%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상담사 다수가 근골격계 질환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9.4%가 적어도 한 부위 이상의 신체 부위에서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한 자각 증상과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을 겪는 부위는 어깨(56%), 허리(51%), 목(47%), 손목·손가락(32%), 무릎·다리(30%), 팔·팔꿈치(16%) 순으로 파악됐다.
▲ 건보공단 상담사들이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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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관계자는 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상담사들의 노동건강실태조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건보공단에서도 책임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상담사 노조에서 주관한 설문조사와 관련된 자료나 통계자료 등이 정확하게 필요하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상담사의 파업'에 대해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건보공단 (정규직) 직원들이라고 한다면 사측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도급업체 직원이니 함부로 나설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대화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정규직 노조의 상담사 직고용 전환 반대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공단 측 입장은 건보공단 정규직 노조와 고객센터 노조 간 대화 여건이 마련되면 대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면서 "양쪽 노조(정규직 노조 및 고객센터 노조)의 대화가 풀려야 공단이 대화의 창을 열 수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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