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 단체' '단독 제출'..보훈처 설립신고서 반려
광주지역 5월 단체를 모태로 한 5·18 공법단체 출범이 벌써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설립신고서를 잇달아 반려한 데다 5월 단체 집행부 간 주도권 다툼이 여전하다.
8일 5·18재단 등에 따르면 5월 단체들이 저마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보훈처에 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공법단체 설립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보훈처는 5·18 관련 6개 단체 명의의 설립신고서를 되돌려준 데 이어 5월 부상자회가 주축이 된 설립준비위 구성에는 구속부상자회와 ‘공동명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5·18 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등 기존 5월 단체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라는 명칭의 3개 공법단체로 묶어 전환하는 것은 5월 유공자들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왔다.
이를 전담하는 보훈처는 여·야간 첨예한 갈등 속에 국회·국무회의를 통과한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5일 공포되자 5월 단체들의 공법 단체화 절차를 밟고 있다.
보훈처는 이 과정에서 대표성과 정통성을 담보하지 않은 단체들의 설립신고서가 2차례 제출되자 ‘제동’을 걸고 나섰다.
5·18기념재단 설립동지회·5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6개 단체의 경우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임의 단체’인 데다 개인 명의로 서류가 제출돼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특정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인위적으로 단체가 결성돼 신청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6개 단체는 지난 1일 보훈처 단체협력과를 방문하고 단체 대표들이 서명한 설립신고서를 민원형식으로 제출했으나 이 같은 이유로 서류가 반려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상자회는 구속부상자회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신고서를 제출했다가 설립준비위 구성이 무산됐다.
보훈처는 부상자회와 구속부상자회가 공동 명의로 신고서를 제출해야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설립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또 나머지 2개 공법단체 역시 1980년 그날 이후 5·18 추모·기념 행사를 주도해온 5월 단체 회원을 포함한 5·18 유공자 전체의 원만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훈처는 이에 따라 지난달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5·18 구속부상자회 등에 보낸 공문을 통해 “기존 사단법인 해산과 함께 정관을 만든 뒤 회장 등 임원을 선출하고 국가보훈처장 승인을 받아 달라”는 법적 절차를 안내했다.
또 5월 정신 계승 사업을 주도해온 사단법인들을 중심으로 설립준비위를 구성해달라고 주문했다. 법률이 공포된 1월 5일 기준 1개월 이내 공법단체 설립준비위를 구성하고 3개월 안에 공법단체를 공식 출범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보훈처는 5·18 유공자들의 ‘총의’를 얻지 못한 5월 유사 단체가 혼재됐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법적 절차에 착수한 6개 단체의 설립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5·18부상자회 역시 5·18 구속부상자회와 ’공동명의’가 아니어서 신고절차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5·18 당시 전남도청 항쟁지도부와 기동타격대 출신 등으로 구성된 5·18 부상자회는 “문흥식 회장의 범죄 전력과 비리 의혹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5·18 구속부상회와는 별도로 설립준비위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5·18구속부상자회는 “부상자회가 애초 공동으로 신고서를 내기로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지만 임원 구성 등을 둘러싼 이견을 조율해 서류를 다시 제출하겠다”며 “이름도 생소한 일부 불법 유사단체의 5월 단체 명의도용은 형사적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유족회원 자격을 둘러싸고 불거진 유족회 반발도 문제다. 보훈처는 유족회원 자격을 직계가족으로 정한 현행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유족회 반대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유족회는 “유족회원 범위가 제한되면 5월 당시 희생된 유공자 형제 ·자매 등 회원으로 활동해온 70여 명이 법적 자격을 잃게 돼 5·18 기념식에도 초청받지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5·18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 이후 19년 만에, 더 멀리는 1980년 그날 이후 41년 만에 추진 중인 유족회, 부상자회, 공로자회 등 3개 공법단체 전환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는 4월 공법단체 출범에 빨간불이 켜졌다.
5월 단체들이 공법단체로 전환되면 유족·유공자의 복지와 단체 운영에 도움이 될 각종 ‘수익사업’은 물론 정부·지자체와의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보조금 등 예산지원도 받을 수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5월 단체들의 진통으로 이해해달라”며 “개별적으로 설립을 추진해 혼란을 조장하는 유사 단체들이 설 땅을 잃고 걸러지면 공법단체 설립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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