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사례→불량국가' 미얀마, 바이든 대북 정책 예고편
미국, 제재 해제 후 '복원 장치' 필요성 교훈 얻을 듯
미·중 대리전 양상 속 '대응 수위' 고민
바이든의 아시아 정책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던진 건 미얀마 쿠데타였다. 미얀마 사태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바이든식 외교에 정면으로 반할 경우 어떤 페널티가 주어질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미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을 통해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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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제재 효용성 재확인 계기 되나
미얀마는 2011년 문민정부 출범 후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미국과 관계정상화, 제재 완화, 체제 보장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2016년엔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 대부분이 해제됐다. 어떻게 보면 지난 2018년~2019년 북·미 대화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게 제시한 ‘밝은 미래’의 실사판이다. 실제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미얀마 모델을 따르라”고 공개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군부 쿠데타로 양국 관계는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국은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민주화에 대한 대가인 ‘제재 해제’를 거둬들이겠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을 기반으로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왔다”면서 “이를 뒤집는다면 제재를 재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카드는 ‘독자 제재’ 뿐이다. 북한이나 이란을 향한 제재와 같은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나 세컨더리 보이콧은 중국·러시아 등의 반대로 쉽지 않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2일(현지시간) 미얀마 쿠데타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최종 성명을 내지 못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딴지를 놓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실효성이 없는 경제 제재보다는 미얀마 군부 고위인사 등에 대한 표적 제재 등 상징적 제재 조치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미얀마에게 제재를 풀어줬다가 다시 제재를 재검토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대북 제재 해제에 더욱 보수적으로 나올 수 있다. 현재 북한에 대한 제재는 과거 미얀마에 대한 제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차원적으로 꼼꼼히 짜여 있다. 향후 미국은 북한이 포괄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제재를 단계적으로라도 완화하지 않거나 최소한 스냅백 조항(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다시 복원)을 마련하도록 요구할 가능성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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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햄릿’으로 불리던 오바마…바이든은 행동 나서나
바이든 입장에서 미얀마 쿠데타는 민주화와 개혁·개방으로 교화됐던 ‘모범 국가’가 다시 ‘불량 국가’로 전락한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압박에 나서기 전 중국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군부가 중국과 더욱 밀착할 경우 반사이익이 중국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더라도 미얀마 군부가 굴하지 않고 중국을 뒷배로 삼아 버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앞서 북한이 북·미 협상 과정에서 중국을 배후에 두고 협상력을 높인 것과 유사하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얀마 군부든 북한 김정은 정권이든 미·중 경쟁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며 “자신들의 체제를 적극 옹호해줄 수 있는 중국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바이든 입장에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 출범 후 첫 아시아 정책의 시험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오바마식 ‘햄릿 외교’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시리아에 대한 소극적 대응 등을 놓고 비판을 받았다. 당시 부통령으로서 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반면교사 삼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그어놓은 ‘레드 라인’을 넘을 경우 단호하게 행동한다는 원칙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이든 팀은 과거 오바마가 외교 정책에 있어 ‘말만 앞선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걸 잘 안다”며 “동맹국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등 적극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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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결국 민주화에 깨어 있는 ‘국민’이 최대변수
전문가들은 “미얀마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접근은 북한에 대해서도 공히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신범철 센터장)며 “바이든 행정부가 미얀마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향후 대북정책에 영향을 준다”(박원곤 교수)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얀마와 북한의 국내 정치 체계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고 조언한다.
미얀마와 북한의 정치 지형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체제의 안정성이다. 김 교수는 “체제가 안정된 북한과 달리 미얀마의 정치는 상당히 불안정하다”며 “북한과 달리 미얀마에선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저항의 열기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얀마의 최대도시 양곤에서는 군부에 반대하는 시민 10만여명이 7일(현지시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며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군부 독재자들을 끌어내렸듯이 미얀마의 성난 민심도 군부 정권을 물러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0년간의 개혁·개방을 통해 시민들이 민주주의 의식을 갖춘 미얀마와 국제사회의 고립에 여전히 둘러싸인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군부 집권 → 개혁·개방 → 쿠데타 → 항의 시위’라는 미얀마의 역사를 통해 미국은 북한이 향후 정상 국가의 길을 걷게 될 경우 맞닥뜨릴 과제들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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