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 "신문지우기가 유신 저항?..나를 지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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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시장.
한쪽 벽엔 검은색의 평면 작품이 걸려 있고 바닥엔 흰색으로 가득 채운 설치 작품 깔려있다.
강정 모래 변에는 회화나 조각과는 다른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전위적인 작품들이 나와 실험미술의 심장으로 통했다.
그래서 안개꽃을 양동이에 꽂고 떨어진 꽃잎의 자국을 바닥에 분필로 표시하거나 의자 위에 사물을 두거나, 윷을 4개가 아닌 6개를 던져 놓고는 작품이라고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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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시장. 한쪽 벽엔 검은색의 평면 작품이 걸려 있고 바닥엔 흰색으로 가득 채운 설치 작품 깔려있다. 흑백의 조화가 강렬하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아라리오갤러리 최병소(78) 작가의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의 전시 전경은 모노크롬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회화로 보이는 벽면의 작품은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새까맣게 칠한 것이다. 너덜너덜한 자국이 그대로 있다. 바닥의 설치작품은 세탁소용 옷걸이를 구부려서 툭툭 던져놓은 것이다. 모두 일상의 재료를 사용해 예술을 입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서라벌예대(중앙대 전신)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엔 고향 대구로 내려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이강소 박현기 김구림 등 청년 예술가들과 낙동강 변 강정에서 대구현대미술제를 열었다. 강정 모래 변에는 회화나 조각과는 다른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전위적인 작품들이 나와 실험미술의 심장으로 통했다. 최 작가는 첫해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이미지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자신이 쓴 시를 곁들인 작품을 내놨다.
‘신문 지우기’ 연작은 최 작가의 시그니처 같은 작품이다. 연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975년 두 번째 대구 현대미술제를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물감을 가지고 유화를 그리는 자신에게 “왜 그런 걸 하냐”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다음 날 길을 가다 할머니를 빼닮은 노파를 노점에서 만났지 뭔가. 그 노점에서 파는 레코드를 산 뒤 심심하면 들었다. 어느 날 그날도 음악을 듣다가 심심 파적으로 신문지에 볼펜으로 긁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 면을 다 지웠지 뭐야. 중간에 종이가 찢어져 지저분해.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지우니 정돈된 느낌이 나지 뭐야. 그게 주변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추상화 등 형식주의 예술에 대한 저항감을 느꼈다. 그래서 안개꽃을 양동이에 꽂고 떨어진 꽃잎의 자국을 바닥에 분필로 표시하거나 의자 위에 사물을 두거나, 윷을 4개가 아닌 6개를 던져 놓고는 작품이라고 내놓았다. 이처럼 일상의 재료를 사용해 미술 작업을 하던 그에게 신문지 지우기는 필연적으로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1000원짜리 지폐도, 파리 행 비행기 티켓도 지웠다.
신문 지우기를 1970년대 유신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런 거 보다는 나를 지운다는 게 맞겠지요. 칠하느니 차라리 나를 지우자, 지우면서 나를 정화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우는 과정에서 찢겨서 너덜너덜해지는 ‘상처’까지 좋았다. 한국전쟁 직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물자가 부족해 신문 용지로 제작한 교과서를 배포 받았다. 그걸 딱지처럼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어 학교에 다녔는데, 한 학기 지나니 헤져서 너덜너덜해졌다. “그 때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어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몰라요.”
옷걸이 설치작업은 2013년부터 등장했다. 이번 전시장에는 8000개의 옷걸이가 사용됐다. 집에는 항상 세탁소에서 온 흰색 옷걸이가 있었다. “쉽게 구부러져요.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개를 구부리면 뭐가 되겠다 싶었지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흰색의 거대한 단색화(1970년대 유행한 단색 추상화) 계열 같다. 그는 “단색화는 무슨, 흰 옷걸이를 구기니까 그냥 흰색이 된 것이지요.”
일상에서 재료를 가져오는 전위예술가로 평생을 살아온 자부심이 느껴졌다. 2월 27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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