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눈치본 김명수 발언, 그 뿌리는 3년전 文 '사법농단 훈시'

강태화 2021. 2. 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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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임명하며 “중심을 잘 잡는 역할을 충분히 하실 것”이라고 당부했다. “사법의 독립, 정치적 중립이야말로 정말로 법률가로서 평생을 꿈꿔왔던 것”이라고도 했다. 임명장을 받아든 김 대법원장은 “국민들의 기대를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2017년 9월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는 ‘촛불 정국’이었다. 전직 대통령 탄핵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구호는 대법원장이 언급한 ‘국민의 기대’와 사실상의 동일어였다.

그런데 대통령에게서 '정치적 중립'을 요청받았던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 임 판사는 ‘적폐 판사’로 낙인찍힌 당사자다. 김 대법원장은 사표를 반려하며 “(사표를) 그냥 수리해버리면 (국회가) 탄핵 얘기를 못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금 뭐 (여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도 했다. 여당의 정치 일정 때문에 사표 수리가 안 된다는 취지다.

김 대법원장은 해당 발언이 알려지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다 임 부장판사가 몰래 녹음한 녹취록을 공개하자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야권과 법조계에선 “예고된 참사”라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힘 핵심 당직자는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모든 요직을 입맛에 맞는 인사 일색으로 바꿔버렸다”며 “겉으로는 삼권분립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권력에 충성하라는 압박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법원장의 임명 자체가 파격이었다. 그는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13기 후배다. 비(非)대법관 출신 중 최초의 대법원장이기도 하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주류(主流) 교체’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역시 임명식에서 “사법부가 대법원장님의 취임 그 자체만 가지고도 많이 바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기대대로 사법부는 변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전체 대법관 14명 중 8명이 교체됐다. 신임 대법관 8명 가운데 6명이 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진보성향의 ‘우국민’(우리법연구회ㆍ국제인권법연구회ㆍ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新)주류’가 됐다. 진보 일색의 주류교체를 완성한 김 대법원장 본인이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던 인사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신주류가 과반이 된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여순 반란 민간인 희생자 사건 등에서 진보 진영의 시각과 일치하는 판결을 내놨다. 전교조도 7년 만에 법외노조 지위를 벗었다. 대법원의 무죄 취지의 판결로 이재명 경기지사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됐고, 친문(親文)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무죄 판결도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사법부 독립과 관련한 논란을 자초할만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2018년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야권은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에게 호통하듯 수사와 재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엔 김 대법원장을 ‘코로나 극복방안’이 논의된 간담회에 초청했다. 코로나와 직접 관련성이 낮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이 초청 대상이었다. 공교롭게 당일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한 행정법원의 첫 심문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 대법원장 등에게 “권력기관 개혁 문제로 여러가지 갈등들이 많다”며 “그 점에 대해서도 헌법기관장님들께서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코로나 상황을 언급한 뒤 “대통령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의 내년에도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겠다”고 했다. 법관윤리강령에는 ‘소송 관계인을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면담하거나 접촉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징계안을 재가한 문 대통령은 사건의 관계인이었다.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야권은 현재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법원장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돼 있다는 말 이외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김 대법원장 역시 이날 오전 출근길에 ‘정치외압 논란’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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