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며느리입니다, 이번 차례상엔 이게 빠집니다

장순심 2021. 2. 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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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코로나 명절] 음식 가짓수 줄이기는 더 미룰 수 없는 환경을 위한 실천

'가족이라도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다르면 5인 이상 집합 금지', 2021년 설의 특징입니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려면 덜 모이고 적게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명절 문화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성묘를 하고,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온라인으로 새뱃돈을 준다는데요. 전통적인 명절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시민기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우리 집은 종갓집이다. 종택을 지키고 살지는 않지만, 큰집이라고 때마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고,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은 꼭 머물다 가는 집이었다. 그런 집안에서의 제사는 오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모자람 없이, 종가의 이름에 걸맞게 구색을 갖추고 격식에 맞게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명절 준비
 
 설 명절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4일 오후 세종시 조치원읍 세종전통시장 내 떡집에서 연신 가래떡을 뽑고 있다.
ⓒ 연합뉴스
결혼하고 십 수년 이상 명절 준비는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명절에 딱 맞춰 먹기 좋게 익도록 적어도 사오 일 전에는 종류별로 김치를 담갔다. 쌀을 불려 방앗간에 가져가서 가래떡을 뽑아오는 것도 명절 이틀 전에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김도 소금에 들기름과 참기름을 섞어 재우고 구워야 했고, 식혜며 수정과를 만드는 것과 나물이나 전거리, 과일이나 제수용품 등의 장보기까지 일주일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하곤 했다.

명절이 두렵기까지 했던 음식 준비는 어머님의 종교적 신념 덕분에 점차 간소해져 갔다. 먼저, 제사 대신 예배로 형식이 바뀌었다. 형식은 사라지니 오히려 마음은 하나로 모아졌고 진중해졌다.

가족이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해 놓고 예배를 드린 후 상을 차려 음식을 나누게 되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의 상차림 예법이나 차례상이 잘 차려진 견본 사진을 보며 상차림에 실수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변화는 처음이 힘들었을 뿐, 해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바뀌어 갔다. 인상적인 변화는, 우선 설 명절에 가래떡을 따로 뽑지 않았다. 떡국과 함께 할 만두를 사기 시작했고, 추석 명절에는 송편도 만들지 않게 되었다.

쌀 산자나 약과 같은 것들도 사지 않았다. 명절 차례상에 맞춰 담그던 김치도  점차 가짓수를 줄였다. 식혜나 수정과도 직접 만드는 대신 시장에서 한두 병씩 사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십 년이 넘게 진행된 변화를 되짚어 보니 실로 큰 변화였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결혼 초기의 거창하고 힘들었던 제사나 차례상 차림은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점차 준비 시간도 단축되었고 당연히 힘도 덜 들었다. 지금은 명절 이틀 전쯤에 장을 본다. 김치는 따로 담그지 않고 물김치만 간단히 담그거나 때론 사기도 한다. 떡과 만두도 재래시장표, 식혜도 재래시장표를 준비한다. 고기도 산적용은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먹을 불고기나 갈비찜 정도를 하고, 생선도 한 가지만을 준비한다.
 
 설 명절을 앞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점포에서 시민이 채소를 구매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이용해 설 차례상을 준비하면 대형마트 이용 때보다 비용을 20%가량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지난달 18~22일 전통시장 37곳과 인근 대형마트 37곳을 대상으로 설 제사용품 27개 품목의 가격을 비교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전날 밝혔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놓칠 수 없는 것은 전이다. 명절날이면 아파트 복도에서 고소하게 풍기는 전 부치는 기름 냄새는 명절을 보내는 증표와 같았다. 아무리 간소하게 해도 그 정도는 우리 집에서도 풍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명절 분위기가 나는 것 같고 명절을 제대로 보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이라는 것이 하는 김에 하나 둘 더하다 보면 쉽게 네댓 가지는 만들어진다. 같은 속재료를 깻잎에 싸면 깻잎전, 고추에 넣으면 고추전이 된다. 그대로 둥글 납작하게 부치면 완자가 되고, 표고버섯에 넣으면 표고버섯전이 된다.

거기에 명태 포로 만든 전은 기본, 굴이 눈에 띄면 굴전을 하고 방송에 육전이 나오면 육전도 만들어 본다. 꼬치산적도 매번 하는 메뉴다. 채반에 가득하게 한나절 만들고 나면 음식을 다 한 것 같아 마음은 뿌듯한데 기름 냄새에 물린 가족들은 맛보기 용으로 하나만 권해도 고개를 젓게 된다.

나물도 비슷하다. 명절의 기본은 고사리나물과 숙주나물, 도라지 나물이다. 푸른 빛깔을 위해 시금치나물에 뭇국을 끓이려고 준비한 무를 채를 썰어 무나물까지 준비하면 나물 종류만 다섯 가지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 통마다 채우면 남은 빈 통이 없을 정도로 음식은 가득하고 냉장고는 빈 틈이 없이 빽빽해진다.

명절 후에 버려지는 것들... 이대로는 안 된다

몇 해 전부터는 양도 줄여 나름 간소하게 차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음식이 많이 남았다. 남은 음식은 일단 냉장고로 직행한다. 구석에 처박혀 잊힌 음식은 양념에 재어 놓은 고기가 되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생선이 되기도 한다. 나물을 완벽하게 먹어 치우는 일은 거의 없다.

잊힌 음식은 상하고 난 후에야 발견이 된다. 냉장고를 들락거리던 반찬들도, 명절날 상차림 이후 냉동실로 직행했던 전도 버려질 수밖에 없다. 양념에 공을 들였고 가족들의 선호도를 반영해서 음식을 장만했어도 버려지는 것들은 늘 있었다. 아무리 적게 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돈이 아깝고 양념이 아깝고 들인 공이 아깝다는 생각은 매번 했지만, 환경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상해서 버려지는 음식들은 음식물 쓰레기로도 배출할 수 없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된 정보였다.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의 양에 충격을 받은 것도 불과 작년의 일이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염두에 두자고 생각하니 음식의 가짓수뿐만 아니라 양을 엄격하게 조절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았다.
 
▲ 정은경 청장 "설 연휴 기간 동안에 귀성, 여행을 자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발생 현황 및 확진 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설은 특별방역기간인 만큼 모이는 가족도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해 인사도 온라인으로 하는 추세다. 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시행되고 있고, 고향의 어르신들도 자녀들이 내려오는 것을 말리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참에 명절에 먹을 음식은 몇 가지만 준비하면 어떨까 남편과 상의해 보았다. 안 먹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먹는 것으로 맛있게 차려보자고. 한 끼 잘 먹고 버려지는 것 없는 제로 웨이스트 상차림에 올해는 도전을, 노력만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여러 이유를 가져와도 이전과 다른 상차림을 시도하는 것은 며느리 입장에서는 나름 모험이고 조심스럽다. 다행히 어머니는 변화에 대해 완고하거나 보수적이지 않다. 보여주기식 상차림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신다. 그런만큼 이전에도 장손, 종손의 틀을 깬 상차림은 이미 조금씩 시도되었으니 이제는 환경을 생각하는 상차림에 도전해 보고 싶다.

붉은 양념을 배제하는 전통적인 기본 나물 삼종세트 대신 요즘 지천인 냉이를 고추장 된장에 맛있게 무치거나, 오징어를 초무침으로 만들어 새콤 달콤한 맛을 즐기는 것도 선택의 하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딱 한 끼 먹을 정도만 준비하고 전은 먹고 싶은 종목을 추천받아 딱 두 가지만 한 접시의 양으로 확 줄여 보는 거다.

환경은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될수록 심각해지는 주제다. 그 심각성에 한번 발을 들이면 주변의 상황들이 절대로 가볍게 보아지지 않을 뿐더러 가볍게 넘어갈 수도 없다. 더구나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떠올린다면, 그럼에도 너무 많이 만들어서 버리는 것을 반복한다면, 알고도 짓는 범죄처럼 그 책임의 무게를 무겁게 느낄 것 같다. 일단, 종갓집 며느리인 나부터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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