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최우선 '신비주의 고집'..현대차·기아의 애플카 급제동

이창환 2021. 2. 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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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협력설 대대적 보도에
부담 느껴 중단 선언한 듯
다른 완성차와 논의도 한몫
OEM생산 최종합의도 못 이뤄
협상 재개 가능성은 아직 남아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이기민 기자]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자율주행차(애플카) 생산 협상이 결렬된 주요 배경은 애플의 비밀주의 고수 방침과 하청업체로 갈 수 있다는 현대차·기아의 우려가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세계적으로 애플카를 생산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가 많지 않아 양사의 협력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평가다.

비밀주의 깨진 애플 먼저 협상 중단 선언한 듯

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 중단은 전기차 협력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에 부담을 느낀 애플이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를 철저히 고수하는 애플이 전기차 협력 내용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블룸버그통신도 애플이 전기차 개발을 위한 현대차·기아와의 논의를 최근 중단했다고 지난 5일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수년간 개발 프로젝트와 공급 업체에 대한 정보를 비밀에 부쳐왔던 애플이 전기차 관련 논의 소식이 알려지자 화가 났을 것이라면서 양사 간 논의가 언제 재개될지 불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 때문에 현대차그룹과의 ‘애플카’ 협력 논의가 결렬됐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한국 언론들을 중심으로 애플과 기아의 협력설이 크게 보도되면서 애플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것으로 봤다.

애플이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완성차 업체들과도 전기차 생산 협력을 논의 중이었던 것도 협상 결렬의 한 이유로 보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애플 부품 공급업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애플이 적어도 일본 내 6개 기업과 (전기차 생산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일본 완성차 업체 외에도 애플은 미국의 테슬라나 제너럴모터스(GM) 등과도 접촉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와 기아 입장에서는 애플카 생산으로 인해 회사가 애플의 단순한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애플이 아이폰을 제조할 때 디자인과 부품공급, 생산라인 등 모든 주도권을 쥐고 폭스콘을 통해 주문자생산(OEM)으로 위탁생산하는 것처럼 현대차·기아에도 비슷한 생산 방식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단순 하청업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현대차나 기아 입장에서는 애플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결국 애플과 현대차그룹이 OEM에 대해 최종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도 협상 중단의 한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현대차 주요 임원들을 중심으로 애플과의 협력설에 회의론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재개 가능성 아직 남아

양사의 협상이 일시적으로 깨졌지만 재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애플카를 위탁해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생산설비를 가진 완성차 업체가 몇 군데 되지 않은 데다가 애플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줄 만한 완성차 회사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현재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플랫폼을 가진 회사는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GM과 폭스바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최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갖춘 회사들만 IT 기업들이 요구하는 고스펙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가 이날 공시에서 협의가 진행되지 않는 대상을 ‘자율주행차’라고 적은 부분도 전기차 생산 등에서는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는 공시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았다고 밝히면서도 애플에 대해서는 ‘자율주행차’ 개발 협의를 진행 중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대차와 애플이 각각 자체적 자율주행기술을 개발 중이기 때문에 자율주행이 아닌 전기차 부문에서만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에 공장이 있으면서 애플이 요구하는 전기차 전용플랫폼을 맞출 수 있는 회사는 기아가 최적"이라며 "다만 최근 보도 등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협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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