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를 고담시티로 바꾼 남자..아이들 영웅 떠나다
아픈 어린이 꿈 이뤄주는 재단 설립 샹크비츠 별세
1980년 4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순찰대로 일하던 프랭크 샹크비츠는 상급자로부터 본부로 급히 돌아오라는 무전을 받았다. 복귀한 그는 백혈병 말기인 7세 소년 크리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년의 소원은 경찰이 되는 것이었는데, 사망이 임박하자 크리스의 부모와 주변 이웃들이 도움을 청했다.
샹크비츠와 동료 경찰은 며칠만이라도 크리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경찰 헬기를 동원해 크리스를 치료 중인 병원에서 경찰 본부로 이송했다. 이후 크리스는 맞춤 제작된 경찰 제복을 입고, 집 앞마당에서 순찰 오토바이와 비슷하게 생긴 아동용 전동차를 타기도 했다. 샹크비츠는 2018년에 낸 회고록 『위시맨(Wish Man)』에서 “크리스는 생명에 가득 차 보였고, 아프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소원을 이룬지 3일 뒤, 크리스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순찰대만 다는 배지를 선물해주겠다”고 했던 샹크비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지켰다. 크리스는 잠시 깨어나 순찰대 배지를 보고는 샹크비츠에게 “이제 공식 순찰대가 된 거죠?”라고 묻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 샹크비츠는 다른 아픈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낸 프랭크 샹크비츠가 최근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77세. 그의 부인 키티 샹크비츠는 “오랫동안 식도암으로 투병 중이었다”고 전했다. 샹크비츠가 세운 메이크어위시는 현재 미국에 59곳, 해외에 39곳의 지부를 두고 소아암·백혈병 등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97년 신경아세포종 4기 진단을 받은 한 미국 소년이 “하나님을 만나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하자, 재단의 요청으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하나님의 친한 친구”라며 소년을 만나줬다. 2013년엔 “배트맨이 되고 싶다”는 투병 중인 소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가 거주하던 샌프란시스코가 하루 동안 시 이름을 고담 시티로 바꿨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일간지인 크로니클은 제호를 ‘고담시티 크로니클’로 변경해 내기도 했다.
43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프랭크 샹크비츠는 부모의 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공군에 입대했다가, 72년 순찰대에 합류했다. 경찰로 근무한 지 6년째 되던 해, 그는 음주 운전자를 쫓다가 다른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심폐소생술을 해 겨우 살아났지만, 회복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복직한 직후 크리스의 사연을 접했고, 이후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2004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2010년 NYT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래드 멜처의 책 『아들을 위한 영웅(Heroes For My Son)』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52명의 영웅 중 한 명에 꼽혔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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