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손은 열심히 씻어도, 강박증이어선 안 된다
글⋅ 노대영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불안의학회 재무이사/강박장애연구회 총무)
다들 참 열심히 씻는다. 역사상 가장 위생적인 시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위생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늘 좋은 것’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은 열심히 씻어도 되지만, 강박증이어선 안 된다.
손 씻기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혼란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첫 번째, 강박장애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일반화하며 병식이 옅어질 수 있다. 두 번째, 일반인은 병적인 강박을 철저한 위생관념과 혼동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경험해보건대, 첫 번째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손 씻기 말고도 여러 다른 강박증상으로 이미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최근 한 일간지 칼럼에서는 ‘위생에 관한 강박증 용어는 없애야 하며, 영화에서는 사랑의 힘으로 강박증을 극복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강박증은 일상적인 것으로 껴안고 가야 한다’라고 끝을 맺었다. 식견이 높기로 유명한 교수님조차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좀 놀랐다. 일반인들은 강박증의 개념을 더욱 헷갈려 할 수 있을 거라 짐작된다.
문제는 일상적인 용어로서의 ‘강박’과 병적인 ‘강박’의 혼돈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한다.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강박 (強迫)이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낌’이라고 적혀있다. 이런 의미로 무엇인가에 몰두하거나 여러 번 반복할 때, ‘강박적이다’란 표현을 흔히 쓴다.
하지만 정신병리에서 다루는 강박증(강박증상)은 의미가 좀 다르다. 영어에는 강박사고(obsession) 및 강박행동(compulsion)이란 두 가지 단어로 분류되어 있다. 병리적 강박증상도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분리해서 기술한다.
강박사고는 원치 않는데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 이미지, 충동 등을 뜻하며, 강박행동은 강박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반복하는 행동 또는 의례행위 등을 의미한다.'손이 더럽다'는 강박사고가 자꾸 떠오르니 찜찜하고 불안하다. 이를 중화시키거나 없애려 손을 씻거나 회피하는 강박행동을 하게 된다. 두 가지 모두 ‘반복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원치 않는’이란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반복하게 되는’의 의미가 병적 ‘강박’의 핵심이다.
'원치 않는 이유'는 증상이 불합리하거나, 또는 명백히 과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33번 숫자에 맞게 손을 씻어야 하는 환자의 예를 들어보자. 환자는 반드시 '33번'을 씻어야 하지만, '33번'을 꼭 씻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손이 부르트고 있는데, 또 씻고 있으니 스스로도 너무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 또는 불안이 잔존해 있다.
지금 우리의 손 씻기 습관이 이런 것일까? 열심히 씻는다면 ‘반복적’인 행동일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가 ‘원해서’ 손을 씻는다. 코로나 19 감염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주 씻어도 대개는(귀찮고 힘들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을 넘지 않는다.
‘손이 헐고, 갈라지며, 부르트도록 계속해서 씻는 행위’가 본인이 원해서일까? 비합리적이며, 끔찍한 짓이란 것을 안다. 말이 안 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서) 그 행동을 또 하고 있다면 강박행동이다. 이럴 때 느끼는 괴리감과 혼자만의 고통은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손을 씻는 세정 강박은 다양한 강박 증상 중에 아주 작은 일부이다. 여러 번 점검하고 확인하는 확인 강박, 숫자를 세거나 특정한 행동을 의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자신이나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포함하는 불안감 및 금기시되는 성적/종교적인 생각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강박, 대칭과 정확성 및 정리 정돈에 몰두하는 강박, 쓸모가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모아두는 저장 강박 등 상당히 다양하다. 아직도 가끔 생각하지 못했던 증상을 만나면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며 놀랄 때가 있다.
강박장애는 전세계적으로 인구의 약 1~2% 정도에서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되는 비교적 흔한 병이고, 인간에게 장애를 가져오는 10대 질환 중 하나로 WHO에서는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강박장애는 환자 스스로 증상인지를 몰라서 말하지 않고, 임상 양상도 다양하기 때문에 치료자도 발견하지 못할 때도 있다. 환자도 모르고, 의사도 놓치니 치료가 늦어진다. 강박장애는 첫 발병 이후 치료받기까지 평균 7년 이상 걸린다. 치료 경과가 좋을 수 없다.
열심히 씻는 것을 ‘강박적’이라 표현할 수는 있다. 한편, 꽤 열심히 씻는다해서 ‘강박증’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과도하게 씻는 것마저 일상적이라 끌어안을 수는 없다. 어느 정도부터 과도한 것인가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높은 수준의 위생관념과 방역의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분명한 원칙이다. 하지만 강박증은 병의 증상이다. 없애야 할 용어도 아니며, 사랑만으로는 낫지 않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선 안되며, 잘 진단해서 치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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