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노조활동하면 체포되는 '공산국가' 중국의 딜레마
국가공인 노조 '공회', 노조활동 감시기구로 변질
각 대학서 마르크스주의 학회활동 처벌..정체성 혼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난달 중국의 3대 온라인 쇼핑몰인 핀둬둬의 20대 여직원이 밤샘 야근을 하고 퇴근하다 돌연사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2억60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의 노동자, '농민공'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농민공들은 중국 IT업계를 비롯해 기업 전반의 노동환경이 개선돼야한다고 주장하고 노조설립과 노동쟁의 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데 중국 당국은 노조설립을 논의만해도 체포하는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노조활동이 처벌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주요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시 당국은 핀둬둬의 노동시간 및 노동환경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지난달 4일 핀둬둬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지부에 근무하던 20대 여직원이 새벽 1시30분께 퇴근길에 돌연사한 사건이 동료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중국 농민공들이 일제히 불만을 터뜨렸기 때문인데요. 돌연사라 하지만 사실상 매일 야근에 시달리다 과로사한 것이란 비판이 쏟아지면서 젊은 중국 노동자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SNS에서 핀둬둬 직원 사망사건에 대한 해시태그는 2억회 이상 검색되며 중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경종을 울렸습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6일 출근을 강요...996운동중국 IT업계에서 이런 밤샘 노동은 매우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창업자로 유명한 마윈 회장이 "한살이라도 어릴 때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며 주 6일 근무하는 '996'을 해야 성공한다"며 이른바 996운동을 장려한 이래 초과근무는 당연시되고 있죠. 최근 중국 SNS에서는 "오전 0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0시에 퇴근하고 주 7일 근무하는 '007'을 사측이 당연하게 요구한다"며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살인적인 근무요구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중국정부는 기업을 견제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죠. 중국에도 국가가 공인한 노동조합인 '공회'가 존재하지만, 이 조직은 오히려 기업가들과 결탁해 노조를 설립하거나 노동쟁의를 준비하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이를 당국에 고발하는 노동자 감시기구로 전락한지 오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공산국가인 중국의 노조가 왜 이렇게 변질된 것일까요?
국가공인 노조, 공회는 있지만...공산당 산하 정부기구로 전락중국 국가공인 노조인 공회는 정식명칭이 '중화전국총공회'로 중국 모든 지역과 기업들에 설립돼있는 단 하나의 노조입니다. 다른 개별 노조는 설립 자체가 불허돼있죠. 노조원만 3억명 이상이 등록된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이기도 하지만, 주요 간부들이 모두 중국 정부 각료들로 구성돼있고 공회 예산도 중앙정부에서 배정해줍니다. 사실상 국가기관으로 현재는 중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노동쟁의를 사전에 포착해 노동자들을 감시하거나 포섭, 당국에 신고하는 노조활동을 억압하는 감시기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회가 처음부터 이렇게 국가조직으로 변질돼 출발한 것은 아니었죠. 1921년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질 당시 이 공회도 함께 탄생했고 당시 서구열강들에게 조차된 지역인 상하이, 광저우, 홍콩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던 중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습니다. 1922년 홍콩 선원 총파업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영국 총독부와 싸우기도 했는데요. 당시 중국인 선원들은 백인 선원들과 5배 이상 차이나는 급료와 영국 총독부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대항해 대대적인 파업을 벌여 56일간의 파업으로 홍콩 물류가 완전히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영국 총독부가 노동자들의 조건을 들어주기로 합의했고, 이 사건으로 중국 공산당 역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됐다고 알려져있죠.
그랬던 공회가 지금은 영국 총독부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정부가 지난해 국제사회의 비난과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홍콩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했던 이유도 1922년 홍콩 선원 총파업 사건 당시와 같이 노동쟁의가 전국적으로 퍼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BBC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시위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동안 홍콩과 인접한 선전시나 광저우에서도 수천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중국 경제의 중심지 중 한 곳인 광저우에서는 당시 2000여건 이상의 노동쟁의가 발생해 중국 당국이 반정부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고 알려져있죠.
공산국가에서 마르크스주의 학회 감시, 처벌...웃지못할 아이러니공산국가 중국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구소련은 물론 중국에서도 공산주의 이념의 창시자로 유명한 사람이죠. 지난 2018년에는 중국정부가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까지 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중국의 국부로 알려진 마오쩌둥의 마오주의를 연구하고 실천한다는 학회와 대학생들은 처벌받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0월 미국 코넬대는 앞서 2012년부터 마르크스주의 연구 및 교류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중국인민대학과의 교류를 끊었는데,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운동을 벌인 인민대학생 12명을 처벌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2018년 이후 베이징대와 인민대 등 중국 명문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마르크스와 레닌, 마오쩌둥의 저서를 읽고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모임을 결성하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조결성 운동 등을 벌이고 있죠.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들을 체포하고 대학들도 처벌에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강령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권익신장을 위해 일한 엘리트 학생들이 졸지에 범죄자가 되고 있는 셈이죠.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자본가들의 권익을 지키는 국가로 뒤바뀐 중국 공산당의 정체성 혼란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