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째 휴가제한 "결국 헤어졌다"..코로나가 울린 '고무신'
직장인 엄모(23)씨는 지난해 남자친구와 함께 입을 '커플 옷'만 세 번을 샀다. 엄씨의 남자친구 백모(24)씨는 지난해 3월 입대했다. 엄씨는 입대 장병과 사귀고 있는 이른바 '고무신'이다. 엄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입기 위해 커플룩을 샀지만, 그때마다 백씨의 휴가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계절마다 옷을 사는 일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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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로 '커플룩' 3번 산 고무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군 장병들의 휴가가 제한되면서 ‘고무신’과 ‘군화’ 커플의 애달픔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2월부터 국내 코로나19 추이에 따라 장병들의 휴가를 통제하고 있다. 엄씨는 "입대 전까지 최소 1주일에 1번은 봤던 남자친구"라며 "연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니까 정말 답답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당초 백씨의 첫 휴가가 잡힌 건 지난해 7월이다. 엄씨는 백씨와 함께 입기 위해 커플 셔츠를 구매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휴가가 취소됐고, "가을에는 휴가를 나갈 수 있다"는 말에 가을 커플티를 새로 구매했다고 한다. 백씨의 휴가는 지난해 7월부터 총 네 차례나 잡혔다가 미뤄졌다. 엄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가기 위해 예약한 식당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3월 입대한 백씨가 첫 휴가를 나온 시점은 겨울옷을 입어야 하는 지난해 11월 5일이다.
엄씨는 "보고 싶을 때 면회라도 가고 싶은데 코로나19로 부대 출입 자체가 금지돼 이마저 불가능하다"며 "지난해까지는 휴가 때 뭘 할지 설레는 맘으로 얘기했는데 이제 또 언제 나올지 모르니 기대도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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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의 여자친구 "5월엔 나오려나"
지난해 말 입대한 ‘신병’ 남자친구를 둔 고무신들도 애달프긴 마찬가지다.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지난해 12월 초 입대했다는 직장인 이모(23)씨는 "당연한 말이지만 남자친구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씨는 입대하는 남자친구를 파주 1사단 신병교육대 앞에서 배웅하는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해놓고 있다.
이씨는 6시에 퇴근하면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는 게 일상이 됐다. 남자친구인 홍모씨의 연락을 받기 위해서다. 그는 "남자친구가 부대에서 막내인데 선임들의 휴가도 전부 밀리고 있다고 한다"며 "100일 정도가 더 지나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그때 가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또다른 고무신 최모(22)씨는 "거리두기가 완화돼야 남자친구의 휴가 통제가 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며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1달에 2번 정도는 시간 내서 꼭 면회를 갔을 것"이라고 했다. 고무신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4일 하루에만 남자친구 휴가를 기다린다는 글이 150개 이상 올라왔다. "너무 힘들다", "남자친구가 정말 보고 싶다", "휴가를 6개월 넘게 못 쓰다니 속상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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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째 휴가 못 나와…결국 이별"
대학생 이모(21)씨는 400일 넘게 만난 남자친구와 6일 헤어졌다. 이씨 역시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고무신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휴가 제한으로 이별까지 다다랐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해 남자친구의 휴가가 번번이 취소되면서 못 만난 지 7개월이 넘었다고 한다. 이씨는 "대학이 서로 가까워서 남자친구의 입대 전까지는 거의 매일 만났던 사이"라며 "군대에 가서도 잘 지냈는데 반년 넘게 만나지 못 하니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잦아졌다"고 했다.
이씨는 "며칠 전까지 '휴가 나오면 국내 여행을 가자'는 얘기를 나눴는데 기약이 없다 보니 서로 지쳐버린 상황"이라며 "휴가가 계속 밀리다 보니 '희망고문'을 당하는 것 같아 힘들어 헤어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해 추석(10월 1일) 이전 입대자 중 한 번도 휴가를 쓰지 못한 병사에 한해서만 휴가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적용된 군내 거리두기 2.5단계는 14일까지 연장됐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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