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꺼낸 한일 해저터널.."비행기 타지" "日 관심 없다"

강갑생 2021. 2.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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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신공항 지지와 함께 한일 해저터널 검토를 약속했다. [송봉근 기자]

'10년 만의 소환?'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을 찾아 논란이 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4월로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해양부가 한일 해저터널과 한중 해저터널 모두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한 지 10년 만에 중앙 정치권에선 사실상 처음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일본에만 유리한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등 친일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가덕도 공항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유지되려면 물건과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 해저터널을 얘기했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첨예한 상황에서 단순한 친일 논쟁을 뛰어넘어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경제성과 실효성 등을 제대로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17년 일본 육군이 처음 논의 시작
우선 한일 해저터널 논의의 역사를 따져보면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건 맞다. 한국교통연구원과 부산발전연구원(현 부산연구원)등의 자료를 보면 한일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쓰시마터널 건설 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1935년 일본 내무성 토목국 도로과에서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터널(공사기간 25년)로 계획했고, 38년에는 '조선해협 철도터널 계획'으로 구체화된다. 당시 논의는 우리나라를 거쳐 중국 등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진행된 측면이 크다.

일본은 한일 해저터널을 통해 대륙과 연결하려 계획했다. 사진은 일본이 건설한 경의선 압록강철교.[사진 국토교통부]


48년에는 일본 철도성이 도쿄~시모노세키 사이 신칸센 건설기준을 만들 때 부대사항으로 한일 해저터털 건설이 제안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계획은 모두 일본의 패망과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른 건 1980년대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 전문가는 "당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적극적으로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후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연구는 대부분 일본의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다. '일한터널연구회' 같은 조직이 만들어졌고, 각종 연구보고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통일교 후원, 일본서 연구 활발
‘일한터널 제1차 기본구상’ (1983년), ‘일한터널의 교통수요 예측' (1986년), ‘일한터널 시공을 위한 주입공법에 관한 연구’ (1989년), '일한터널의 경제평가’(1996년)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규슈 사가현의 가라쓰(唐津)시에는 길이 570m짜리 조사터널을 뚫기도 했다. 가라쓰시는 과거 일본이 당나라를 오갈 때 출항지이자, 임진왜란 당시 출병지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한터널 연구회가 제안한 3개 노선.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반면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연구가 별로 없다. 2003년 한국교통연구원이 처음으로 일한터널연구회의 '일한터널의 경제평가' 보고서 등에서 제시된 3개 노선의 경제성을 따져보고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09년엔 부산발전연구원이 자체적인 대안노선(후쿠오카~쓰시마~가덕도~부산 강서)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한일터널과 동북아 통합교통망 구축을 위한 기초 연구'가 있었다.


한·일 정치권에선 몇 차례 필요성 언급
이런 사이 국내와 일본 정치권에서는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언급이 여러번 나왔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처음 말했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해저터널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엔 일본의 모리 총리가 한일 해저터널을 제의한바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처럼 최고위층에서도 필요성을 밝힌 사업이 왜 걸음마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비용은 엄청나게 들지만, 기대 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일한터널연구회가 제안한 노선별 개요.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2003년 교통연구원은 일한터널연구회가 제시한 3개 노선 모두 경제성(B/C)이 0.4~0.6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B/C는 통상 1.0을 넘어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일한터널연구회가 제시한 노선은 ▶A 노선(가라쓰~이끼~대마(하도)~거제) ▶B 노선(가라쓰~이끼~대마(하도)~대마(상도)~거제) ▶C 노선(가라쓰~이끼~대마(하도)~대마(상도)~부산)으로 길이는 209~231㎞이며, 해저구간은 128~145㎞였다. 최대 수심은 155~220m로 추정됐다.


"공사비만 100~200조" 경제성 부족
일한터널연구회는 세 개 노선 중에서는 B노선을 최적으로 꼽았다. 당시 제시된 터널은 철도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 도로·철도 병용방식으로 본선 하나와 대피용 서비스터널을 만들 때 100조원, 본선을 두 개로 하면 2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참고로 경부고속철도에는 21조원이 들었다.

부산발전연구원의 대안노선.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이 2009년 제시한 대안노선은 후쿠오카~이끼~대마~가덕도~부산 강서 구간으로 총 길이 223㎞에 해저구간은 147㎞로 예상 사업비는 92조원이었다. 본선 한 개와 서비스터널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본선 두 개를 할 경우 184조원이나 된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200조원을 넘는다. 또 도로와 철도 병용 방식이 아닌 고속철도와 카트레인(승용차를 싣고 운행하는 열차) 만 다닌다는 조건이다.

물론 사업비를 우리가 전부 부담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일본이 70%, 우리가 30% 정도 내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30%만 해도 30조원 내지 60조원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철도터널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본선 터널을 두 개 뚫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방향으로 각기 나눠서 운행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부산발전연구원 대안 비교. [자료 부산발전연구원]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채널터널)도 본선터널 두 개와 대피터널 한 개를 만들었다. 최소 60조원은 투입할 계산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유로터널의 사업비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증가했던 걸 고려하면 한일 해저터널의 공사비 역시 상당히 유동적이다.


항공보다 경쟁력 낮고 일본 정부 무관심
설령 어렵사리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해 운영한다고 해도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부산과 후쿠오카 사이에 철도를 이용할 화물이 많지 않은 데다 서울~도쿄 등을 고려하면 굳이 빠른 항공기를 놔두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싼 열차를 이용할 승객이 많지 않을 거란 얘기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해저터널의 건설비를 반영할 경우 화물철도의 요금이 높아지고, 단위 무게당 수송요금이 비쌀 수밖에 없어 해운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여객도 서울에서 규슈만 해도 비행기로 1시간이면 되는데 누가 3~4시간 이상 걸리는 기차를 타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로터널도 비싼 통행료와 예상보다 적은 수요 등으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로터널도 비싼 통행료와 낮은 수요 탓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더 큰 문제는 일본 정부가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터널을 건설해놓고는 엄청난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성, 실효성 모두 불투명한 한일 해저터널에 거의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부산발전연구원 보고서에 관여했던 전문가도 "일본 규슈 지역의 일부 정치인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을 뿐 일본 전체가 한일 해저터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닌 거로 안다"고 말했다.


해저만 150㎞..."안전 우려 매우 커"
터널 안전문제도 풀기 쉽지 않은 숙제로 거론된다. 총 길이 51㎞에 해저구간이 38㎞인 유로터널만 해도 터널 내 화재로 길게는 몇달 동안 열차 운행이 중단된 사례가 있으며, 2009년에는 폭설로 인해 열차 5대가 터널 안에 멈춰 서면서 2000명의 승객이 16시간가량 갇힌 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해저구간만 150㎞ 가까운 터널을 열차로 다닐 경우 발생할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경제성과 효율성을 떠나 안전 측면에서만 봐도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유로터널에는 고속열차와 카트레인이 운행한다. 화재등 각종사고가 적지 않다. [사진 위키백과]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한일 해저터널이 가까운 시일 내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겹겹이 쌓인 숙제를 풀어낼 방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저 아이디어로만 남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륙철도의 시작과 종착역이 될 부산이 한일 해저터널이 개통되면 철도가 그저 지나가는 경유역으로 동북아 철도망에서 중요도가 한층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를 대비해서 동북아 국제교통망 차원에서 한일 해저터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뤄봐야 한다고 말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동북아 국제교통인프라의 중요한 의제인 만큼 전문가적 시각에서 차분히 논의해봐야 한다"며 "하지만 (선거를 앞둔) 너무 안 좋은 시점에 언급한 탓에 한일 감정 문제로만 다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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