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너무 믿었죠, 내 회사라고 생각했으니까"

윤찬영 2021. 2. 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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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 제기한 두 방송작가 ②] 일 시킬 땐 부하직원, 내보낼 땐 프리랜서

[윤찬영 기자]

(①편 <죽을 뻔한 사고 후에도... MBC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에서 이어집니다)
 
 김지영(가명) 작가는 뉴스투데이에서 '아침 신문 보기' 코너를 담당했다.
ⓒ mbc
 
김지영(가명) 작가는 뉴스투데이에서 '아침 신문 보기' 코너를 담당했다. 새벽 3시 30분까지 사무실로 출근하면 사무실로 배달되는 12개의 신문(각 2부씩)을 나눠서 한 부는 차장에게 전달하고 한 부는 김 작가가 봤다. 하루 6~8개의 뉴스를 방영하는데 보통 12~13개를 추린다. 물론 결정은 차장이 했다고 한다.

"차장님은 생방송 앞두고 다른 일도 많아서 12부나 되는 신문을 꼼꼼히 보기 힘드니까 혹시라도 중요한 뉴스를 빠뜨리지 않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OO일보> 1면에 이런 단독 기사가 있어요' 하는 식으로.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정권한은 차장님에게 있어요.

차장님이 방송에 나갈 뉴스들을 추리면 그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해서 마스(MARS, 사내 입력 시스템)에 올리고, 아직 출근을 안 한 부장님한테 SNS로 보내야 해요. 그러면 부장님이 전화로 '이런 건 우리 논조랑 안 맞다'라거나, '이건 그냥 광고 기사니까 빼라'라거나 하는 식으로 다시 지시를 하죠. 그렇게 걸러진 게 목록이 돼요. 부장님이 사무실에 와서 신문을 읽고 다시 바꾸는 경우도 있죠. 그러면 원고를 쓰다가도 다시 바꿔야 해요."

김 작가는 부장마다 일하는 방식도 달라 차장이 고른 뉴스들을 거의 쓰지 않고 다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부장님은 차장님이 고른 기사라고 말해도 '그래도 빼세요' 하면서 본인이 직접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뉴스들로 대부분 바꿔서 내보냈어요. 영상 편집자랑 주고받은 SNS 메시지도 있어요. '아시죠? 오늘 목록 거의 다 바뀔 수 있는 것', 이런 식으로. 차장님들도 자기가 고른 뉴스들이 다 바뀌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최종 결정권은 위에 있는 거니까."
 
 지노위에 증거로 제출한 김 작가와 모 차장의 통화 내용. 구체적 지시가 담겼다.
ⓒ 방송작가유니온
 
마스에 올라간 (차장이 고른) 목록을 보고 영상편집자는 곧바로 편집에 들어가는데 부장이 뉴스를 바꾸면 김 작가가 편집자와 연출자에게 뉴스가 바뀌었다고 알려야 한다. 생방송을 앞두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목록이 너무 많이 또는 너무 늦게 바뀌는 바람에 방송 사고가 날 뻔한 일도 더러 있었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너무 늦게 변경 지시가 내려오면 부장님한테 '편집에 시간이 걸려서 못 내보낼 수도 있다'라고 미리 말씀을 드려요. 편집 진행 상황을 보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방송센터로 가서 연출자한테 몇 번 뉴스 편집을 못 끝내서 빼야 한다고 전달하고... 그럼 앵커가 그 뉴스를 안 읽죠."

그렇다면 원고 수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지노위에 출석한 회사 측 대리인은 "(김 작가가 한 일은)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됐던 것들을 요약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수정들을 요하는 작업들이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 (차장 등이) 코멘트를 줄 순 있지만 기자들처럼 디테일하게 수정 요구가 들어가거나 수정 작업을 거치는 작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작가의 말은 달랐다.

"저는 그날 선정된 뉴스가 실린 지면을 미리 접어두거나 빼두는데, 차장님이 제 초고를 보고 신문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 들고 가죠. 차장님이 이름, 연도, 금액 같은 숫자들이 맞냐고 물어보면 다시 확인하고, 차장님이 직접 신문을 꼼꼼히 보시면서 수정을 하기도 해요.  

또 원고를 쓸 때 기본적인 룰이 있는데, 가령 뉴스 하나 당 40초, 또는 서너 단락을 넘기면 안 된다는 식이죠. 하지만 기사에 따라서는 그런 룰을 지키기 힘든 것도 있어요. 기획기사들은 엄청 기니까. 그런 경우는 사람의 주관이 더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요. 차장님이 보시기엔 더 중요하거나 앞에 나와야 할 것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고, 또 길어지더라도 꼭 넣어야 할 내용도 있고... 그럴 때도 차장님이 직접 수정하시죠."

수정이 끝나면 차장이 출고 버튼을 눌러 출고를 하고, 김 작가는 영상편집자와 연출자에게 출고 사실을 알린다. 김 작가가 출고 버튼을 누르는 경우는 방송 시작을 코앞에 두고 뭔가를 갑자기 수정해야 할 일이 생겨 차장이 직접 바꿀 여유가 없을 때 정도다. 차장이 출고를 한 뒤에도 부장이 뒤늦게 다시 원고를 수정을 하는 일도 있다.   

"방송이 나가고 있는데 부장님이 '왜 저렇게 읽어?' 하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차장님이 출고한 원고를 부장님이 다시 수정을 했던 건데, 이미 앵커한테는 다른 원고가 전달돼있었으니까 반영이 안 된 거죠."

프리랜서라면 이런 일 시킬 수 없겠죠

김 작가는 원고를 작성하는 업무 말고도 이 작가와 마찬가지로 차장과 부장의 지시에 따라 리포터, 영상 편집자 등의 업무를 점검하는 일도 떠맡았다고 말했다. 

"리포터나 연출자들한테 전달사항이 있으면 저한테 전달하도록 했어요. 새벽에 전화를 해서는 '지금 태풍이 와서 아침 신문 보기 안 하니까 나오지 마시라, 그리고 편집자한테도 연락해 주시라'하는 식이죠. 한동안은 제가 지시대로 연락을 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연락을 하시는 게 맞겠다고 얘기를 해서 바뀌었죠. 무슨 권한을 준 게 아니라 그냥 자질구레한 업무를 떠넘긴 건데, 프리랜서라면 이런 일을 시킬 수 없겠죠.

또 중간에 '스마트 리빙'이라는 사전 제작 코너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점점 분량이 늘어나다 보니까 회사가 보조작가를 뽑아줬어요. 보조작가들이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진 다음엔 저는 촬영 현장에는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아이템을 검색하고 원고를 쓰는 일 등을 했는데, 이걸 두고도 MBC는 지노위에서 제가 보조작가들한테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어요. 엄격한 위계 안에서 움직였을 뿐인데 황당하죠."

지노위에 출석한 사측 대리인은 "지역 출장이 있었는데 출장을 누가 가는지, 출장비를 어떻게 올리는지, 이런 부분들도 메인작가(김 작가)가 총괄적 지시를 했던 부분들이 확인이 됐다"라고 주장했다.

스마트 리빙 코너를 맡게 된 과정을 두고도 양 측의 주장은 엇갈렸다. 2013년이 되자 스마트 리빙 코너를 새로 만들려고 하니 아침 신문 보기 코너가 끝나면 남아서 제작을 해보라고 했고, 김 작가는 못 하겠다고 했지만 먼저 입사했던 작가(당시엔 두 명이었다)가 '어떻게 못 한다고 하냐'면서 일단 하겠다고 하고 정 힘들면 그때 빠지자고 했다는 것. 

"그런데 얼마 못 가 그 작가가 몸이 아파 못 하겠다며 먼저 빠져버렸어요. 회사는 지노위에서 자기들은 권유를 했을 뿐이고, 그 작가는 거부했는데 저만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어요. 마치 제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 작가와 주고받은 메일들을 증거 자료로 냈죠. 그랬더니 이번엔 그 작가가 같이 준비하다가 코너 시작하기 전에 그만 뒀다고 말을 바꿨어요. 그래서 다시 첫 방송이 나간 뒤에도 계속 같은 팀에 있었다는 증거를 지노위 때 들고 갔어요."

처음엔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신문 보기 코너를 제작해야 하니 스마트 리빙은 방송 아이템 4개 중에서 하나만 촬영하고 퇴근하라고 했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자 조금씩 일을 늘렸다고 한다. 결국 퇴근 시간은 점점 뒤로 밀렸고, 더는 못 하겠다고 하자 아침 신문 보기 코너 대신 스마트 리빙만 하도록 업무를 바꿔줬다는 것이다. 그렇게 2013년부터 약 4년간 스마트 리빙 코너 제작에 참여했고 그때부터 한동안은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 날도 출근해야 했지만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건물.
ⓒ 권우성
 
그 사이(2015년) 김 작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김 작가는 그 다음 날도 회사로 출근했다.

"밤 늦게 퇴근하던 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밤새 장례 준비를 마치고 다음 날 방송을 제작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출근했죠. 그렇게 다음날 방송 준비 다 마치고 보조작가한테 편집 확인을 부탁한 뒤에 조금 일찍 나왔어요. 부장님이랑 국장님한테도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얘기하고... 다행히 주말이어서 장례만 치르고 다시 월요일에 출근했죠.

저희는 방송이 안 나가면 페이를 못 받아요. 저만 못 받는 거야 괜찮지만 보조작가랑 리포터들도 줄줄이 못 받게 되니까 제가 사정이 있다고 마음대로 빠질 수가 없어요."

김 작가는 2011년 처음 입사할 때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계약서를 쓰고는 6년간 계약서를 쓰지 않다가 2017년에야 두 번째 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작가 표준 계약서'를 내놓으려 하자 방송사들마다 형식적으로라도 계약서를 받아두는 분위기였다고. 

"2017년 6월쯤 그동안 방송국에서 계약서도 안 쓰고 일을 시켰던 게 이슈로 떠오르니까 갑자기 모든 작가들한테 그해 12월까지로 계약기간이 적힌 계약서를 내밀면서 서명하라고 했어요. 계약기간도 너무 짧고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있어서 작가들끼리는 서명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들이 많았죠. '업무 위임 계약이니 고용 관계를 주장해선 안 된다'라는 조항도 있었어요. 그래서 가장 오래 일했던 작가가 보도운영부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명목상 쓰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요.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명했죠."
 
 2017년 MBC가 작가들에게 제시한 '프리랜서 업무 위임 계약서'(주요 조항 발췌)
ⓒ 방송작가유니온
 
계약서에 적힌 업무 범위도 늘었다. 2011년 처음 입사할 때는 아침 신문 보기 코너로 제한돼있던 업무 범위가 2017년엔 전체 프로그램(뉴스투데이)으로 늘어난 것. 김 작가는 그 뒤로도 어쩔 수 없이 1년짜리 '업무 위임 계약'을 맺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계약 해지 7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2018년)된 것 정도다.

"MBC를 너무 믿었죠. 다들 오래 일했으니까요. 프리랜서라고 했지만 다들 내 회사라고 생각했거든요."

방송작가유니온에 따르면, 2017년 말 문체부가 표준 계약서를 내놓자 KBS와 SBS는 그 계약서를 흉내라도 내려고 했지만 MBC만은 '프리랜서 업무 위임 계약서'를 고집했다.

참고로 문체부 표준계약서는 작가(을)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거나, 작가가 합의한 경우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최소한의 고용 안정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짧게는 2주에서 길어야 4주 전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기만 하면 되는 조항을 멋대로 추가해 사실상 표준 계약서의 취지를 무력화했다.

표준 계약서도 결코 '표준'이 될 수 없었지만, MBC 보도국은 그마저도 무시하고 현재까지도 '업무 위임 계약서'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MBC 위임 계약서는 방송사가 언제든 계약 해지를 구두나 서면으로 통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주 전에 하면 좋지만 2주간의 보수만 지급하면 그조차 안 지켜도 된다.

함께 일한 50명 기자 중 한 명이라도 사실 말한다면

김 작가는 지휘·감독을 입증할 증거(통화 녹취록 등)가 적지 않아서 지노위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정규직원들과 출입증이 다르지 않으냐'로 시작해서 위원들 질문 딱 3개 받고 '아, 이건 벌써 짜인 판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들고 갔던 증거 위에 '어차피 기울어진 게임 같은데 그냥 나가면 안 돼요?'라고 써서 옆에 앉은 노무사님한테 보여드렸어요. 그냥 평범한 일반인인 저조차도 '어떻게 이렇게 티 나게 (사측에 유리한) 질문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김 작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MBC가 자체 법무팀과 노무팀에 더해 굳이 외부 노무법인에까지 사건을 의뢰했던 것부터가 이상했다고 한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심문 끝에 위원장은 "이번 건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가 판정내리기 무겁다"라고 했다.

"그 말 듣고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는데 내가 낸 증거가 많으니 마음은 무겁겠지' 정도로 생각했어요. 이미 앞에서 포기한 상황이라... 이게 기업위원회지 무슨 노동위원회야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노위에 출석한 사측 대리인들도 방송작가가 아직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자로 인정받은 선례가 없다는 주장을 계속 폈다. 하지만 지난 선례만 따질 거면 굳이 비싼 세금 들여 사람에게 판정을 맡길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냥 인공지능에게 데이터를 돌려보라고 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지 않을까.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지식산업법학과)는 "판례 법리에 따르면 이 사건의 방송작가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될 여지가 크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 교수에 따르면 우리 법원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이후 상당 기간 근로자성의 일반적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각각의 사안에 따라 근로자 여부를 판단해 오다가, 1994년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개념에 관한 일반론을 판시하였다.

그리고 2006년 판결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조금 확장하였는데, ▲ 지휘·감독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종전의 '구체적·개별적 지휘·감독'을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완화하여, 업무수행 자체에 대한 지휘·감독뿐만 아니라 업무 완성에 대한 검사 및 수정·보완 지시와 같은 간접적이고 포괄적인 지휘도 사용종속관계의 징표로 삼을 수 있는 길을 열었고, ▲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등의 새로운 징표를 제시하여 독자적 시장접근성, 이윤 창출에 관한 독자적 기회의 존재 여부, 독자적 기술 및 자본의 보유 등 독립 사업자성에 관한 징표도 함께 고려하여 근로자성을 판단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등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사정들은 결정적 판단 징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권 교수는 "사실 종속성이라는 개념은 '있다, 없다'라는 일도양단적인 판단의 대상이 될 만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 어느 정도의 종속성 아래서 노무를 제공해요. 그런데 종속성의 정도를 펼쳐 놓은 넓은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선을 긋고는 그 선 위는 근로자, 그 아래는 비근로자라고 결정하는 게 지금의 근로자성 판단 방식이에요.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선을 그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법원이 그은 선인 판례법리를 두고 어떤 특정 범주의 노동자가 그 선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를 판단하려다 보면 이른바 오분류(misclassification)의 문제가 생기게 돼죠. 이 사건에서 방송작가들을 프리랜서로 취급하는 건 전형적인 오분류의 문제로 보여요."

김 작가가 바라는 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법의 판단이다. 그러려면 MBC가 그동안 자신과 '함께' 어떻게 일 해왔는지를 정직하게 밝히는 게 먼저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지시를 하며 함께 일했던 차장급 이상의 MBC 기자 50명, 그들은 기자가 아니라 그냥 회사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사실을 얘기해주면 다른 증거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MBC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모습
ⓒ 방송작가유니온
 
지난해 12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모든 지상파 방송사의 재허가 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발을 떼기로 했을 뿐 아직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부문 방송사 인력 10명 가운데 4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해당 조사에서 KBS 본사와 지역총국, MBC 본사는 자료 제출조차 거부했다(실제 방송 제작 현장에서 느끼는 비율은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방송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건 비정규직 비율이 충분히 높지 않아서가 아니란 뜻이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방통위 결정에 맞춰 "뉴스에서는 비정규직자 문제의 심각성을 연일 보도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의 비정규직자 문제는 감추고 쉬쉬하려 드는 게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실체"라고 지적하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제 더 이상 '관행'이라는 낡은 명분으로 방송계 불공정 노동 현실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중노위는 작가노조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 1993년 대법원의 판결을 인용했다.
 
노조법상 근로자란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고, 타인과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한 당해 노무공급계약의 형태가 고용, 도급, 위임, 무명계약 등 어느 형태이든 상관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그 사용종속 관계는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의 지휘·감독관계 여부, 보수의 노무대가성 여부, 노무의 성질과 내용 등 그 노무의 실질적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 할 것...

여기서 대법원이 "노무의 실질적 관계"에 주목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두 작가가 제공한 노무의 실질적 관계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다.

방송작가는 노동자일까, 아닐까. 20년 만에 다시 내려질 중노위의 판정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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