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 돌렸더니 쓰레기통.." 공무원 울리는 '시보 떡' 문화
다음 달 공무원 임용을 앞둔 20대 A씨는 최근 인터넷을 보며 고민이 생겼다. A씨는 5일 “시보에서 해제되면 부서에 떡을 돌려야 한다고 하는데,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며 “이런 거로 괜히 처음부터 밉보이진 않을지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을 볼 때면 괜한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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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 떼면 떡을 돌린다고?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공무원의 ‘시보 떡’ 문화에 대한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시보 끝낸 여자 동기가 저렴한 떡을 돌렸는데 나중에 보니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이번에 시보 떼면 뭘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와 같은 내용이다.
‘시보 떡’ 관련 글이 주목받으면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시보’라는 단어를 치면 바로 밑에 ‘시보 떡’이라는 단어가 뜰 정도다. 시보 떡 전문 업체들도 검색된다. 시보란 공무원 임용후보자가 정식 공무원 임용 전에 일정 기간 거치게 되는 공무원 신분을 뜻한다. 보통 6개월~1년 동안 시보 딱지를 달고 일한다고 한다. 시보 기간이 끝나면 주변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리는 게 ‘시보 떡’이다. 최근엔 마카롱·커피·피자·호두과자 등을 대접해 ‘시보 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달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에는 “공무원이면 시보 뗄 때 떡을 진짜 돌리냐”고 묻는 투표가 올라오기도 했다. 55명이 응답한 해당 투표에서 42명(76.4%)이 “저런 문화가 존재하냐”는 답을 택했다. 돌렸다고 한 응답자는 7명(12.7%), 돌리지 않았다고 한 응답자는 6명(10.9%)이었다. 여기엔 “돈 아까운데 뒷말 나오니까 돌렸다” “아직도 있는 문화다. 비교당한다”는 공무원들의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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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분위기 때문에…” 구(舊) “불만 몰랐다”
비교적 최근 시보 해제된 20·30세대의 젊은 공무원 사이에선 시보 턱이 “없어져야 할 문화”라고 보는 분위기다. 지난해 시보를 뗐다는 2년 차 공무원 20대 B씨는 “말 한번 안 섞어본 사람들에게까지 답례하는 문화가 이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며 “같은 직렬 기준 30명 넘는 동기 중에서 안 돌린 사람이 없었다. ‘뭐 돌릴 거냐’는 팀장의 말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B씨는 10만원 넘는 돈을 썼다고 한다.
5년 차 공무원 C씨(32·여)도 같은 말을 했다. “안 할 수 없는 분위기라서 어쩔 수 없이 했다. 다른 부서에서 누가 돌리면 소문이 쫙 난다. 안 돌리고 뒤에서 욕먹는 거보다 맘 편하게 돌리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C씨는 “그냥 넘어가면 나만 머쓱해지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젊은 공무원 사이에선 시보 떡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국장급 등 고위 공무원들은 “부당한 문화라고 생각하는지 몰랐다”는 반응이다. 한 33년 차 공무원은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라고 생각하긴 했다”면서도 “젊은 공무원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30여 년 차 공무원 이모씨는 “일부 팀장들이 장난처럼 물을 순 있겠으나 그런 말도 강요나 압력으로 느낄 줄은 몰랐다”며 “세상이 변했다는 걸 고위 공무원들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보 떡’ 문화가 공직 사회에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면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감사의 의미로 밥 한번 산다는 의미가 변질·퇴색한 것 같다. 신규 공무원들이 부담을 느낀다면 없어져야 한다”며 “업무 연관성이 있는 선배·상사에게 떡 등을 돌리는 행위는 이른바 ‘김영란법’이나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목적에서는 관계·밀접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할 수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공직자 등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를 넘는 수단 등을 요구하거나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김영란법을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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