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에 불붙는 성과급 논란..기업들이 떨고 있다

김흥순 2021. 2. 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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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정문[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회사의 미래를 늘 강조하면서 구성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버렸다."

성과급 논란이 촉발된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최근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메시지의 일부다. 한 해 이익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직원들간 온도차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올해 산업계 전반에 성과급 이슈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6일 관련업계 관계자는 "성과급 문제를 둘러싼 직원들의 불만은 해마다 있었지만 대개 내부 소통망에서 논란이 들끓고 잦아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번처럼 회사 내 이슈가 외부로 확산되면서 갈등이 부각되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한 중견급 직원도 "젊은 직원이 사장에게 성과급에 대한 불만을 담은 메일을 보내고 이 내용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목돈 기회 제한된 상황서 성과급 기대치 커져"
"성공한 조직의 숙명, 투명한 절차 필요"

앞서 SK하이닉스의 입사 4년차 직원이 지난달 말 사내 성과급 지급에 대한 공지가 나간 뒤 이석희 사장을 포함한 전 구성원들에게 공개적으로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달 1일 자신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하고, 이 사장이 다음날 사과문을 담은 이메일을 전 직원에 보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익명 게시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회사가 지난해 실적에서 전년보다 크게 오른 영업이익 5조원을 달성했지만 성과급은 2019년과 같은 수준인 기본급의 400%로 지급하기로 한 점을 성토했다. 그러면서 경력자 채용을 시작한 다른 회사로 이직을 시도하겠다는 목소리도 줄을 이었다.

이 같은 불만은 근속연수가 길지 않은 저연차나 젊은 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특히 두드러진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부동산이나 주식 열풍 등으로 대출을 안고 있는 젊은 구성원들에게는 성과급이 그나마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며 "회사가 달성한 실적에 비해 성과급이 적으면 돈이 필요한 입장에서 불만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또 다른 대기업 직원은 "과거보다 이직이 활발한 상황에서 경력직으로 갈 경우 연봉은 낮추고 성과급을 높이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들 입장에서 성과급을 적게 받으면 자신의 선택에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문화심리학자인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성공한 쿠데타에서 반혁명이 일어나듯, 목표를 달성하고 이익을 배분해야 하는 조직일수록 갈등은 필연적"이라며 "이제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경쟁사나 해외 사례까지 다양한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납득할만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SK하이닉스는 지난 4일 노사 협의를 통해 기존 성과급 산정 지표로 삼은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폐지하고 성과급을 영업이익과 연동하기로 했다. 또 이사회 승인을 전제로 우리사주를 발행해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혜택이 구성원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사내 복지포인트 300만 포인트도 지급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성과급 공개 연쇄 후폭풍
발표 앞둔 기업들도 고심

이미 성과급 지급 계획을 밝힌 다른 기업들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SK텔레콤은 노조가 전년보다 20% 정도 줄어든 지난해분 성과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을 예고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직원들과의 소통을 약속하고 사측에서 설 명절용 사내 포인트 300만 포인트를 지급하기로 했으나 노조는 이를 임시방편이라고 일축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각 사업부별로 성과급 비율이 달리 책정되자 상대적으로 적은 몫을 받게 되는 사업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 LG그룹에서는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이 기본급의 최대 400%, 생명과학 부문은 300%, 전지 사업 담당 LG에너지솔루션은 200%대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LG화학에서 최근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배터리 부문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것에 비해 보상이 타 사업 부문에 비해 적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추가로 LG전자도 이달 중 성과급 지급안을 공지할 예정이다. LG전자는 각 사업부별로 연초에 수립한 목표치를 기준으로 달성 여부에 비례해 성과급을 배분해 왔다. 이미 다른 기업의 성과급 논란이 워낙 이슈가 된 상황이라 올해 사업부별 지급 비율을 두고 갈등이 점화하지 않을까 고심하는 분위기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정이라는 가치에 민감하고 자기 표현이 뚜렷한 세대가 편입되면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책정해 온 성과급 기준도 문제라고 판단할 수 있다"며 "논란이 불거진 뒤 경영진이 해명을 하고 사과나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은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과급 지급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회사의 현재 상황이나 계획 등을 터놓으며 양해를 구한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열려 있다"며 "현안이 아닌 소소한 일에도 관심을 갖고 평소 직원들과 수시로 공유하는 '공감 경영'을 통해 신뢰 관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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