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둘 중 임성근 사표만 퇴짜..'CJ 뜻' 탄핵거래 의혹 키웠다
이탄희 의원 당초 임성근·이동근 탄핵 주장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22일 이 발언이 여러 의혹을 낳고 있다. 법조계는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법부의 독립을 해쳤다”고 의심한다. 야당은 김 대법원장과 더불어민주당 간 탄핵거래 의혹을 파헤치겠다며 진상조사단까지 꾸렸다.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논란은 왜 '여권 눈치보기'에서 '탄핵거래' 의혹으로까지 번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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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임성근엔 "CJ(대법원장)의 뜻이다. 그냥 있으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문제의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을 들은 뒤에도 대법원에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12월 14일의 일이었다. 임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에게 "2021년 2월 28일이면 임기 만료로 퇴직하는 데 법원 정기 인사는 2월 9일 자이기 때문에 정기인사에 맞춰 사직하면 어떻겠냐"라고 요청했다. "2월 9일부터 자신의 임기 만료일 28일까지 19일간 법원이 후임자를 임명 못 하니 인사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재차 사의를 표한 것이다.
하지만 임 부장판사는 행정처 관계자로부터 “CJ(Chief Justice)의 뜻이다, 사표 내지 말고 그냥 있으라”는 답을 들었다. CJ는 미국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의 영어 줄임말이다. 한국 법원에서도 대법원장을 지칭할 때 자주 쓴다. 임 부장판사는 이를 듣고 “알겠다”라고 답했다고 회고했다. 당시엔 52일 뒤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렇게 속전속결로 이뤄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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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金 지칭한 건 이탄희?
그로부터 7개월 전인 2020년 5월 22일. 김 대법원장은 사의를 표명하는 임 부장판사 면전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라고 말했다. 5월 22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지고 약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21대 국회 개원은 일주일여 뒤였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왜 “탄핵하자고 설치는데”라며 우려한 걸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대 국회에서 처음 나왔다. 2018년 9월 민주당은 ‘사법 농단’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위법 행위가 드러나면 해당 법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법관탄핵 논의가 재등장한 건 2019년 5월 당시 변호사였던 이탄희 의원 인터뷰에서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내부고발자로 2019년 2월 법복을 벗은 그가 국회 밖에서 법관 탄핵론에 다시 불을 지핀 셈이다.
그는 2020년 1월 민주당 4·15 총선 영입 인재 10호로 발탁되자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비위 법관 탄핵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달 뒤인 2월 임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자 언론 인터뷰에서 “징계는 대법원장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10명만 징계처분을 하고 나머지엔 면죄부를 줘버렸다”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법관 탄핵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두 달 뒤 4ㆍ15 총선에서 그는 다른 법관 출신 2명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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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이동근 사표 수리한 날…與 임성근 1인 탄핵 선회
21대 국회 원 구성 전부터 눈치를 봤던 김 대법원장 예상과는 달리 개원하자마자 탄핵 논의가 바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탄핵론을 주도하던 이 의원이 지난해 6~8월 공황장애 등 건강상 이유로 휴직했기 때문이었다.
이 의원이 복귀한 한 달 뒤 10월에 임성근 부장판사가 연임신청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 의원은 12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임성근·이동근 부장판사의 탄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1월 27일 열린 민주당 1차 의원 총회에서 이 의원은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의혹에 연루됐던 두 사람에 대한 탄핵소추안 추진을 설명했다. 하지만 당내 역풍을 우려하는 분위기에 당일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 이 의원은 이동근 부장판사를 빼고 임성근 부장판사 1인만 탄핵소추 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당 지도부는 이를 수용했다.
공교롭게도 1월 28일은 고법 부장판사 정기인사 발표일이었다. 이날 발표로 임 부장판사와 함께 탄핵안에 올랐던 이동근 부장판사가 법원에 낸 사표가 2월 9일 자로 수리해 사직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정기인사 사직 요청은 거부하면서 이동근 부장판사의 사표만 수리한 것이다. 결국 이탄희 의원 등 범여권의원 161명은 2월 1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4일 찬성 179명으로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대법원 측은 임 부장판사와 달리 이 부장판사의 사직서만 수리한 이유에 대해서 “이동근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관련 징계를 받지 않았고, 징계를 받았다 하더라도 정기인사 시즌이었기 때문에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임 부장판사의 경우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에서 '견책' 경징계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줄곳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라고 이유를 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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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명수-여권 탄핵거래' 의혹 본격 제기
야당은 이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거래'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5일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의원 5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도 이 의혹을 추궁하며 자진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다.
장제원 의원은 "여당과 탄핵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하루 이틀 숨는다고 이게 해결이 됩니까"라며 "도대체 왜 작년 5월 국회에서 탄핵이 논의되지도 않은 시점에 어떻게 탄핵을 운운할 수 있었던 건지, 또 국민을 대신해 물은 의원 질의답변서에 (탄핵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한 데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기현 의원은 “후배 법관을 탄핵으로 몰기 위해 고의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거짓말까지 했기 때문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 수장이 자신이 정치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후배 판사를 탄핵 제물로 내놓은 그 모습은 충격 그 자체”라며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 같은 ‘탄핵거래’ 의혹에 대해 “지금으로썬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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